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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n 12. 2016

다이어트를 위한 특단의 조치

2016. 6.11.


                  늙으면 좋아                  


내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서 한 손으로 쥐어본 사람은 나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와!" 또는 "어우"


손의 어림을 짐작하는 말초신경이 뇌까지 정보를 전달하여 나온 반응이 아니라, 뜨거운 냄비를 만졌을 때처럼, 매우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감탄이었다. 모발이 남달리 건강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었던 엄마를 닮아 나는 머리숱이 많다. 이전에 글에도 밝힌 적이 있듯이 고등학교 때 내 많은 별명 중 '밧줄'이 있었다. 웬만한 머리핀은 다 튕겨버리는 머리숱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용실에 가서 '여자의 방'의 고현정 단발머리를 해달라고 수줍게 얘기했을 때도 그랬다. 아줌마는 내 말 따위는 안 들린다는 듯이 "야, 너 머리숱 많아 좋겠다!"라는 동문서답을 했다. 그 이후로 염색과 파마를 할 때마다 '손님은 돈 더 받아야 되는데...'라는 진담 반 정도 섞인 농담을 듣곤 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모든 미용사들은 나 몰래 미리 만나 짠 마냥, '머리숱 많으면 늙어서 좋아'라고 입을 맞춰 말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징한 머리숱으로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왔다. 샴푸를 2-3번 펌핑을 해도 거품을 골고루 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뭔가 왕성한 두피도 빡빡 문질러야 기름기가 가셨다. 목욕탕에서 머리를 말리기라도 하면 나이 드신 아줌마한테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십상이었다. 차분하게 착 가라앉아 야리야리한 긴 머리가 찰랑거리는 스타일은 나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내 현실은 포카혼타스처럼 광활한 대지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칠흑같이 검고 굵은 머리였다. 출산을 하고 나서야 결국 '늙으면 좋다'라는 말을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첫아이 출산 후 내 머리카락은 '나 혹시 암인가?'라고 내심 걱정할 정도로 빠져나갔다. 둘째 낳고서도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머리숱을 갖고 있다. 물론 여전히 미용실에 가면 머리숱이 많다는 말을 듣지만, 전처럼 부담스러운 반응이 아닌 것에 나름 만족하고 있다.




 독특한 나의 체형,
그리고 다이어트


   나한테 또 '늙으면 좋은'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내 독특한 '체형'이다. 나는 상체보다 하체가 무척 튼튼하다. 팔과 배에는 웬만하여서 살이 붙지 않지만, 모든 지방은 엉덩이와 허벅지에 집중적으로 모인다. 반대로 다이어트를 하면, 상체부터 빠지고, 찌는 건 하체부터 쪄서 당최 답이 없다. 수영장이나, 목욕탕에서 아줌마랑 가끔 말이라도 트면 위아래로 내 몸을 훑으시곤, '늙으면 다리가 튼튼한 게 최고야'라는 위로를 했다. 다리가 가늘면 나중에 늙여서 지탱을 못한다나 머라나. 하지만 상체가 통통하고 다리에 군살 하나 없는 몸매를 보면 부럽기 짝이 없었다. (위아래 다 마른 건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밤늦게 글을 쓰면서 맥주, 과자를 자주 먹었더니, 급격히 살이 쪘다. 가만히 앉아서 그림 그리고, 글 쓰고를 매일 반복하니 살이 찌는 건 당연하다. 여름이 오기 전에 빼야겠다고 생각했건만, 6월인데 푹푹 찐다. 이를 어쩌지?  

다이어트가 시급하다.


나도 내 성격 중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살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누가 '살쪘다'라고 지적하는 건 싫어한다는 것이다. 웬만큼 친한 사람이 아니면 내가 살을 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건 별로 상관하지 않아'하는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자기 비하를 하는 사람이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으니까. 인터넷에서 다이어트를 위한 조언을 검색해 몇 개 읽어보니, '내가 다이어트 중임을 모두에게 알려서 도움을 받아라'라는 부분이 있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다이어트 중이) 아닌 척 슬그머니 먹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여러 가지 조언 중에 이 부분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걸 보면 분명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조언임에는 틀림없다.


내일부터 신랑에게도, 자주 보는 지인들에게 모두 나의 다이어트 사실을 알려야겠다.

신랑이 모임 끝나고 오는 길에 사 온

'대한민국 제과기능장이 72시간 숙성한  단팥빵'까지만 먹고,

진짜 내일부터 시작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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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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