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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Sep 15. 2016

꼬치전을 부치는 새로운 방법

2016.9.14.




명절 때면 집안 회관에 모인다. 이 곳에 신랑집안의 8촌까지 모두 모인다. 대략 60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누가 누구의 남편인지 부인인지 잘 파악이 안된다. 나보다 10년 먼저 시집온 며느리분도 아직도 헷갈린다고 했다.

일년에 딱 두번,추석과 설에만 모여도 그나마 친해진 그룹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며느리' 그룹이다. 스무명이 넘는 며느리들의 연령대는 30-50대로 나보다 어린 며느리는 작년에 시집온 애 한명 뿐이니, 나름 여기선 젊은 축에 속한다.
 
우린 명절 음식 새내기로서 어르신들의 지휘하에 움직인다. 여기서 어르신들이란 며느리들의 시어머니 그룹을 말한다. 단순히 계란을 풀거나, 고구마를 썰거나 껍질을 깎는 것 들은 우리 담당이다. 식혜 만들기, 국 간맞추기, 김치 같은 고난이도는 어르신들이 하신다. 몇 십년을 세월을 거친 그들은 뭐든 '슥슥' 한다. 부추를 다듬어 바로 슥슥 무쳐서 김치로 만들고,  조미김을 먹어보곤 대번 '묵은' 김을 잘못 사왔다고 아쉬워한다.(그러고보니 오래된 맛이 난다는걸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사회에서 한 몫하는 며느리들도 회관에는 좀 수동적이다. 시키는대로 해오던대로 누가되지 않도록 맡은바 최선을 다하는게 며느리들의 기본 자세다. 거실에 가스버너가 7개가 셋팅되면 다들 군말 없이 버너 하나에 2명씩 붙어 전을 부친다. 오늘 며느리분이 알려준 아이디어는 정말 신선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래요? 우리 해보자!"라고 하지 않았다. 다들 솔깃했지만 자칫 일을 좀 쉽게 하려는 며느리로 비춰질까 또 괜히 튀어보일까봐 잠자코 있는 분위기였다.

30년 후 추석에 난 회관에서 뭘 하고 있을까. 지금의 어르신들처럼 내공을 뿜으며 명절 음식 준비를 하고 있을라나. 어찌되었든 지금보다는 좀 더 편하고 일이 덜하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전 부치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것 조차 눈치가 보인다.

한창 며느리들이 동그랑땡을 부치는데 집안 총무인 우리 시아버지께서 큰소리로 물으셨다.

"다들 수고가 많네. 지금 마트가니까 음료수나 먹고싶은 것들 말해봐들"

콜라, 커피, 주스, 아이스크림 ...

주문이 작은 목소리로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때 나랑 비슷한 또래의 젊은 며느리가 말했다.

"저기, 캔 맥주 돼요? 시원하게"

"헛, 맥주? 맥주는 또 처음이네. 알았다. 허허 "


아버님이 사오신 마트봉투에는 주스, 커피, 맥주가 있었다. 6개 짜리 캔맥주는 단숨에 반토막이 났다.
캔맥주를 땄다.


 '딱~'


소리도 청량하다. 달궈진 후라이팬 사이에서 첫 모금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뭐야 이렇게 맛있어? 뜨끈한 고구마튀김이 안주로 딱이다.


에헤라디야~

다음 명절엔 긴 꼬치 한번 시험삼아 몇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맥주를 시원하게 넘겼다.

캬. 바로 이거다.



+

해피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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