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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Oct 12. 2016

엘리베이터 앞 거울

2016.10.12.





1층 엘리베이터 앞 거울


내가 결혼하기 직전까지 살던 부모님 아파트 1층에 큰 거울이 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벽에 붙어있는데 웬만한 전신 거울 서너 개는 붙여놓은 듯한 크기다.

데이트가 있는 날, 1층에 사람이 없으면 화장이나 옷매무새를 확인하곤 했다.  



신발과 가방이 옷과 어울리는지,

머리를 뒤로 넘기는 게 나은지 한쪽은 내리는 게 좋은지,

비스듬하게 본 내 옆모습은 괜찮은지,

치마가 너무 짧지는 않은지 뒷모습을 비춰보기도 했다. 



1층 엘리베이터 앞 거울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 거울은 뭐든 아주 티 안 나게 길쭉하게 비추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1층 조명이 대부분 그렇듯 다소 어두워서

자질구레한 잡티는 가려졌다.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친 내 모습은 하이라이트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부기도 쪽 빠졌겠다, 

살짝 달뜬 얼굴엔 생기가 있어 보여서 

집으로 그냥 돌아가는 게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때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는 집에 데려다 줄 때 

굳이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 타는 것까지 보며 손을 흔들어주곤 했다. 

그냥 혼자 들어가겠다고 해도 세상은 여자에게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둘이 천천히 같이 들어가면

거울 속 우리 모습이 참 근사하기까지 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핸드폰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남자친구는 파란색 롤리팝 폴더를 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어색한 우리 모습을 쑥스럽게 담았다. 



신혼초에 산 인테리어 전신 거울



어제 계절 옷 정리를 하면서 드레스 룸에 있던 거울을 거실에 꺼내 두었다.

신혼초에 안방 인테리어를 완성한답시고 어렵게 구한 거울인데,

지금은 마땅히 둘 데가 없어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어제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직사광선에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곤 깜짝 놀랐다.



내가 이 거울을 별로 안 좋아했던 이유가 생각났다. 

내 모습 그대로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거울보다

아직은 괜찮다는 격려를 해주는 거울이 절실하다. 


친정집 1층에 벽에 있는 거울을 진심 떼어오고 싶다.   







위에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는 

지금은 늦은 밤 쓰레기 버리러 나간다고 하면,

들어올 때 먹을 것 좀 사 오라고 부탁하는 


네, 그분이십니다. 


남편.            





++ 


남자 친구 생일 선물로 스크랩북을 준 적이 있는데,

그동안 보러 간 공연 티켓, 함께 찍은 사진, 좋아하는 장난감 설명서(?)

같은 자질구레한 추억의 흔적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에혀.. 그때니까 했다. 이런 거)


혹시나 하고 스크랩북을 봤더니 

있다! 

엘리베이터 옆에서 찍었다던 그 사진.







스크랩북을 다시 보니 

유치한 스티커가 덕지덕지.

소름 끼치게 귀여운 척하는 메모들로 가득했다.


"이건 오빠와 함께한 어쩌고저쩌고, 너무 행복해서 어쩌고저쩌고"

("꺄.." 이런 말은 왜 이렇게 많아. 토할 것...)


내가 만든 거 아닌 것 같다.

누가 볼까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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