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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Oct 16. 2016

꽃게 손질

2016.10.16.




홈쇼핑에서 나온  김수미표  '간장 게장'


한창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보면 탤런트 김수미의 '간장 게장'이 자주 나올 때가 있었다.

게장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카리스마 넘치는 그분이 게장을 판다고 홈쇼핑에 나온 것이 좀 의아해서

'그래 저 사람이 뭐라고 말하나 보자' 하는 호기심으로 한참을 들여다봤다.


왠지 저 아줌마가 맛있다고 하면 정말 그럴 것만 같았다. 쇼호스트가 거의 상품 설명은 다하고 김수미는 도도하게 앉아있다가 거드는 편이었다. 그러다 김수미는 벌떡 일어나더니 직접 간장게장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커먼 꽃게 한 마리를 들어 올리더니 엄지로 꾸욱 눌렀다. 그러자 게장 안에서 알과 살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것 좀 보세요. 이렇게 실한 거. 아효.. 침이다. (호호) 밥도둑이에요. 밥도둑"


꽃게 내용물이 주르륵 흘러나오는 모습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줌인을 했다. 간장 게장이 화면 가득 찼다. 나는 그게 왠지 음식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음식이 아니라 짓눌린 꽃게로 보였다. 화면을 급히 돌렸다.


그렇다고 내가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음식에 대한 특별한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육점에 가지런하게 선홍색으로 진열되어있는 고기들은 나에게 돼지의 '살'이 아니라, 그냥 '돼지고기'이고, 튀김옷이 바삭하게 잘 입혀진 치킨도 닭의 머리를 자르고 토막을 낸 것이 아니라 '하림'과 같은 회사에서 납품하는 그냥 '닭고기'인 것이다. 다만 나는 가끔 시골에서 꼬꼬댁하며 부산하게 머리를 앞뒤로 흔들어대는 빨갛고 까만 수탉을 보며 군침이 도는 사람은 아닐 뿐이다.   



맛있는 꽃게탕을 위한 포인트,
'신선한' 꽃게 손질 하기


간장게장은 안 좋아해도 꽃게탕은 무척 좋아한다. 꽃게를 넣고 끓인 탕의 감칠맛은 그 어떤 것과도 대체할 수 없는 비범함이 있다. 요즘 장 볼 때 살아있는 꽃게가 자주 보였다. 손질은 안 해주길래 몇 번을 그냥 지나쳤는데, 그래도 제철음식인데 한 번은 해먹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결국 꽃게 3마리를 사 오고야 말았다. 팩에 넣고 랩으로 돌돌 말아 포장한 상태에서는 그냥 다리만 좀 까닥까닥하나 싶었는데, 랩을 찢자마자 마치 관에서 강시가 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격렬하게 집게발을 흔들어대는 것이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아악~"


거실에서 놀던 아들, 딸이 달려오더니 움직이는 꽃게에 광분했다. 아들은 종이를 가져와 집게발에 넣었고, 딸은 일 미터 정도 떨어져서 무서운 척(?)하며 소리 지르는데 맛 들린 것 같았다. 나는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종이 백에다가 꽃게 세 마리를 털어 넣었다. 냉동실에 욱여넣은 꽃게 쇼핑백에서 톱밥이 흘러나오진 않는지 보고 얼른 문을 닫았다. 마음 같아서는 확실한 꽃게 실신을 위해 2시간은 넉넉히 얼리고 싶었으나, 곧 신랑 퇴근시간이라 마음이 급했다. 40분 정도 지나 꺼내보니 꽃게의 움직임이 없었다. 이제 손질을 해야 할 시간. 꽃게 세 마리를 다 싱크대에 확 쏟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톱밥이 지저분하게 묻어있어서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꺼내기로 했다.(어차피 손질도 해야 하지만 최대한 덜 만지고 싶었다) 한 마리, 두 마리를 옮기고 물을 틀었다.


그래.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니, 물을 틀었던 것이 나의 실수였다. 마치 실신한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어 의식을 불러오듯, 꽃게에게 물은 그런 의미였나 보다. 시원하게 찬물을 끼얹은 꽃게가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집게발과 눈알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내 손에는 얼마 전에 산 잘 듣는 3M 가위가 들려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꽃게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위로 녀석의 살이 없는 납작한 다리 끝부분을 잘라야 하고, 등딱지를 떼어내야 한다는 사실에 진저리가 쳐졌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 엄마는 이깟 식재료에 벌벌 떨면 안 되는 거다.


이미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꽃게 손질을 관람하는 두 녀석들이 있었다. 양쪽에서 아들은 집게발을 빨리 달라고 재촉을 했고, 딸내미는 꽃게가 너무 불쌍하다고 울려고 했다. 나는 집게발을 과감하게 잘라 씻어 아들에게 주었다. 다리는 손질을 했는데, 본격적인 등딱지 분리 전에 꽃게 눈을 자르는 차례였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안 되겠다. 너 보지 마. 저리 가있어"


꽃게가 살아서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꽃게는 '식재료'와 '동물' 사이에서 애매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자꾸 옆에서 진이가 "꽃게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는 것도 내 마음이 동요된 이유 중에 하나다. 딸내미는 냅다 장난감 방으로 달려가고,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눈을 잘랐다. 아무리 봐도 꽃게는 정말 무섭게 생겼다. 오밀조밀한 눈과 입부분은 흡사 영화 '에얼리언'의 외계 생명체와 교집합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등딱지 사이로 날카로운 가위 날을 쑥 내리 꼽았다. 그리고 엄지에 바짝 힘을 줘서 등딱지를 분리해냈다. 노란 내장이 나오고 모래집도 보인다. 식은땀이 났다. 물을 세게 틀었다. 그리고 누렇고 검은 부분은 물로 다 씻어냈다. 그리고 반으로 두 동강이를 내어 냄비 속에 넣었다. 나머지 두 마리는 조금 수월하게 빨리 해치웠지만, 그래도 자꾸 어깨가 움츠려 들고 소름이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람 먹고사는 게 뭐,
다 그렇지만



그날 저녁 식탁에 오른 꽃게탕은 인기 만점이었다. 신랑은 "역시 꽃게탕" 하며 꽃게를 입에 물고 후루룩 쭉쭉 빨아먹었고, 손질 과정을 모두 지켜본 두 아이들도 예상과 달리 발라준 살을 꿀떡꿀떡 잘 넘겼다. 정작 요리를 한 당사자인 나는 다리에 힘이 살짝 풀려서 좀 심드렁하게 밥을 먹었다.


좀 오바라는 것도 알지만,

사람 먹고사는 게 참.... 그렇다.


며칠 전 딸내미랑 치즈 체험하러 목장으로 견학을 갔을 때에도 그랬다.

젖소들의 큼지막한 젖꼭지를 가리키며


'진아, 저기서 우유가 나오는 거야'


하고 딸에게 말할 때에도,

속으로 '사람 먹고사는 게 참' 하는 느낌이 불현듯 스쳤는데,

꽃게 손질하면서도 비슷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오늘 저녁으로도 돼지고기 목살을 그릴에 구워

야무지게 쌈을 싸서 배불리 먹었지만,

그리고 채식주의자가 될 계획도 없지만,


가끔은 그저


 '사람 먹고사는 게 참'


하며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다.




다음엔 꽃게는 꼭 손질해주는 곳에서 사야겠다.(근처 백화점에서는 손질해준다)

좀 비싸도, 그 편이 훨씬 낫겠다.





+


그리고 꽃게에 대한 글을 쓰다

예전에 읽었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출산 한지 얼마 안돼서 읽고

괜히 눈물이 픽 떨어졌던 시.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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