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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Oct 28. 2016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

2016.10.27.





ATM의 긴급전화로 호출했다


ATM에 붙어있는 긴급전화를 누가 쓰나 싶었는데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

돈을 입금을 했는데 입금완료 대신 '기기 고장'이 뜬 것이다.

돈을 출금하려는데 실패한 거면 몰라도,

하필 돈을 입금했는데 고장이라니...


'설마...'


입금은 되었겠지 싶어 옆 기계로 가서 잔액을 확인했다. 헉, 잔고는 제로. 내 돈 60만 원을 기계가 그냥 먹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수화기를 들고 2번을 눌렀다. 긴급전화의 통화대기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진이 아파서 일찍 데리러 가기로 했는데'

'지하 유료주차장에 주차해서 10분 내로 안 나가면 돈 내야 되는데'

'그나저나 내 돈의 흔적이 ATM기에 남아있긴 한 거야'


조금은 다급해졌다. 통화 연결 후 아저씨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내 돈이 전산상에 확인이 된다고 한다. 기기 확인 직원과 통화, 본사 직원과 통화, 또 무슨 담당자와 통화를 서너 번 한 뒤에 마무리가 되었다. 잘 해결이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아이를 데리러 가려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요금 정산소 아줌마의
기습 공격


주차요금을 정산하는 곳에는 아줌마가 있었다. 나는 주차증을 내면서 혹시나 내 사정을 봐줄까 싶었다.  ATM기기 명세표를 보여주었다. 명세표에는 '기기 고장으로 직원에게 연락을 바랍니다'라고 쓰여있었고, 나는 이 문제로 조금 늦었으니 한 5분 늦은 건 좀 봐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속으로는 아니면 말고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아줌마는 예상 밖으로 무척 과민반응을 보였다.


"저, 여사님! (별안간 내가 왜 여사) 이러시면 안 되죠. 주차증을 안 가져오면 영수증이건 뭐건 돈 내야 돼요."


"아는데요. 제가 몇 분 늦었으니까. 기기 고장은 특수한 상황이니까 좀 참작해주시면 안 되나 하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아줌마의 눈에서는 너 같은 건 열 명도 해치울 수 있다는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아줌마는 머뭇거리는 내 눈빛의 멱살을 움켜쥐어 올렸다. 마치 너 잘 만났다는 듯이.


"아니, 그러니까. 명세표니 뭐니 다 필요 없고, 1000원 내야 된다고. 몇 분도 소용없어요. 게다가 거기 ATM기 있는 곳 청소하는 아줌마들도 다 주차료 내고 간다고요. 참 이상하시네. 주차증 없으면 그냥 내야 된다고. 이건 이유를 불문하고 그런 거라고요. 1000원이요, 1000원!"


그래, 나도 안다.  ATM과 씨름을 마치고 살짝 병든 병아리 눈을 하고 있었으니 아줌마에겐 나 따위 아마 껌이었을 거다. 마구마구 퍼부어대는 아줌마 덕에 나는 입을 다물고 1000원을 줬고, 갑자기 진상 중 진상이 되어버린 나는 도망치듯이 운전을 해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갑자기 세상이 괜히 야속해졌다. 황망한 심정으로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바빠?"


"왜? 괜찮아"


그리고 나는 자초지종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돈은 무사히 되찾았다. 그런데 차를 빼는데 아줌마가 너무 몰아 부쳐서 기분이 나빴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근데, 그 아줌마가 나한테 너무 막 화를 내는 거야. 안 그러면 돈 안 줄 거라고 생각했나... "


그 순간 내 목소리가 점점 맹구 목소리로 변하더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느닷없이 꺼이꺼이 울어대는 통에 신랑은 당황한 것 같았다. 뭐라 위로를 해주려는 것 같았는데, 업무로 누군가가 들어온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전화한다고 하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에 떨어진 물로 버튼이 잘 안 먹혔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자 코스프레
START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도 기분은 여전히 우울했다. 딸에게 감기를 옮아서 콧물이 줄줄 나오고 목도 아프니 더욱 서러워졌다. 오늘도 역시 신랑이 늦는다는 사실에 살짝 절망했다. 안방 침대에 누워 '오늘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여자' 코스프레를 충실하게 하고 있던 찰나였다. 아이들은 이 엄마 심정도 모르고 안방 불을 끄고 천장에 야광 별들을 보며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안방 문이 열렸다.


"여보, 나왔어"


지금부터 염장 주의보. 혹시 노약자 및 냉전 중 커플은 창을 꺼주세요





안방에 갑자기 들어온 건 신랑


아이들이 안방에서 하도 노래를 불러대는 통에 현관 소리도 못 들었나 보다.

신랑은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내가 걱정이 돼서 퇴근하고 스터디 가기 전에 잠깐 들렸다고 했다.

좀 괜찮냐고 물어봤다.

꽃을 주고 나를 꽉 안아줬다.

그리고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자전거 바스켓에 쵸코 케이크 넣어놨어. 애들 자면 먹고 힘내"


줄줄 콧물 손등으로 대충 닦으며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애들은 아빠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물어보며 아빠에게 매달렸다.

나는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꽃다발이 제법 세련된 느낌이다.

고급 진 게 왠지 비쌀 것 같다.

'꽃다발 얼마 주고 샀어?'하고 물어볼까 했지만 참았다.


그냥 지금은 좀 주인공이고 싶었다.



신랑은 다시 나갔다.

나는 쵸코 케이크를 꺼내와 아이들과 나눠먹었다.

생일도 아닌데 갑자기 생긴 '쵸코 가나슈'에 녀석들은 환호했다.



오늘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기 일일 수강생도 받아준대 한번 배워봐" 라고 말해줬다.




아니다.

오늘은 내가 행복한 여자다.







+


죄송합니다.

독자님들....


오글거리긴 하지만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그래서 저도 닭살스럽지만 그냥 닭살 느낌 그대로


...

...

...


그냥

죄송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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