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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Dec 06. 2016

'채식주의자' 읽으신 분 계세요?

2016.12.5.






요즘 '한강'의 소설 정주행하고 있다.

어제는 '노랑무늬 영원'이라는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한강 소설을 읽다 보면

이분이 참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으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등장인물이 '너 그거 알아?'하며
생소한 지식들을 간간히 쏟아내곤 하는데,
'프랙탈 이론'같은 어려운 용어를 아주 쉽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어제 읽던 단편 소설에 사람을 화장하는 것에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었다.

좀 오래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신랑에게 말해봤다.

"여보 사람을 화장시키면 가장 마지막까지 타는 게 뭔 줄 알아?"

"뭔데?"

"심장이래!  마지막까지 지글지글 타고 있대.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아? 다른 것도 아니고 '심장'이라니"

"야. 누가 그래"

"한강이..." (살짝 주눅)

"그건 진짜 아니다. 그게 상식 적으로 말이 돼? 뇌라면 모르겠다. 뼈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나는 뭔가 재밌게 보거나 읽으면 누군가에게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버릇이 있다.

결혼 전에는 주로 동생들을 타깃으로 삼았다면 이제 당연히 신랑이 내 이야기를 주로 들어준다.

(내 옆에 있는 게 죄라면 죄. 누구든 내 옆에 있으면 걸리는 거다)

그런데 신랑은 '심란하고 복잡하고 오묘하고 섬세한' 이야기를 무척 버거워한다. 심지어 신랑은 티브이에서 부부싸움 장면이 나오면 바로 돌린다. 신랑은 이왕 하는 거 되도록이면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주의다. 그래서 내가 읽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인물들은 나의 자체 검열을 거친다. 다사다난해도 해피엔딩이면 통과. 신랑한테 말해도 된다. 최근엔 '친절한 복희 씨'의 복희의 구수한 사투리 성대모사가 반응이 좋았고. '죽여 마땅한 사람들'과 같이 기똥찬 추리소설 엔딩을 말해주면 좋아한다. 하지만 '채식주의자' 같은 소설은 신랑이 딱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채식주의자를 읽은 날 나는 누군가에게 너무 떠들고 싶어서 신랑에게 사정을 했다.


"오빠, '채식주의자' 내용 딱 5분만 얘기해도 돼?" (대화 상대 구걸... 제가 사는 게 참 이렇습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신랑은 내 이야기를 좀 듣더니 익숙한 표정을 지었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억지로 듣는 신랑의 표정이야말로 무척 복잡 오묘한데,

내가 그 표정을 지금까지 해석한 바로는


'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하나.

얘는 언제까지 또 떠들라나.

내가 중간에 끊으면 또 삐지려나.

일단 더 들어주는 척을 해주자'


대충 이런 식이다. (움찔했나. 신랑?)


'채식주의자'는 꽤 강렬한 여운이 남아서 누군가와 대화로 풀고 싶던 터였다.

그런데 마침 며칠 후 동생 부부와 술 한잔을 할 때 기회가 왔다.

맥주를 들이키며 제부가 '채식주의자'를 전날 다 읽었다고 할 때는 나는 꽤 신이 났었다.

드디어 이 책에 대해서 같이 떠들 동지를 만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부는 채식주의자의 여주인공의 증상을 나열하며 병명을 말했다.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개의 의학용어를 더 보태었다.

치맥에 등장한 갑작스러운 의사들의 대화에

나는 묵묵히 치킨을 입에 넣었다.


나는 또다시 풀이 죽었다.






+


어디 괜찮은 아줌마 독서 클럽 없나요...

레베루가 안 높은 데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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