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4.
남동생의 방문을 열었던 기억
내가 중학생이었을 거다. 낮잠을 자다 부스스 일어났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 밖을 게슴츠레하게 바라보니 낮잠을 자기엔 아까울 정도로 볕이 뜨겁고 좋은 날이었다. 어쩐지 자는 동안 얼굴이 익은 기분이 들어 볼에 손을 대보았다. 그런데 집이 조용했다.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보리차 한잔을 따라 들이켰다.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반찬을 하던 엄마가 좀 피곤해져서 좀 누워있는 건 아닐까. 안방으로 가보니 침대는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 맞은편 서재방에는 가지런히 꽂힌 책들과 큰 창으로 들어온 노란빛들 뿐이었다. 인기척도 안 느껴지는 고요한 집. 아무래도 나 혼자 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내 방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동생 방 문이 닫혀있는 게 보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방문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돌렸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긴 하다만, 우린 매번 삶의 분기점에 놓여있다. 그날도 그랬다. 만약 내가 그냥 내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실에서 티브이나 봤다면. 아니면 비몽사몽 해서 다시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버렸다면, 그것도 아니면 부엌에서 달끄닥 거리며 라면이라도 끓여 출출한 배를 채웠다면, 내 유년기의 영혼은 좀 더 순백색을 띠고 있을까.
가보지 않은 길은 어찌 되었든 나는 방문을 열었다. 남동생의 상기된 얼굴이 보였다. 방문 바로 옆에 놓인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당시 6학년이었던 동생은 나의 등장 많이 놀란 듯했다. 그리고 내가 방문을 여는 동시에 녀석은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러버렸다. 아무리 '386 알라딘' 컴퓨터였다지만 그 당시에도 '종료' 버튼으로 전원을 끄는 게 정석이었다. 뭔가 수상했다.
"야, 너 뭐했어"
"뭐어... "
남동생은 말을 더듬었다.
"왜 갑자기 컴퓨터 끄는 거야?"
"아, 뭐 좀 봤어"
"그러니까 뭐 봤냐고"
나의 끈질긴 추궁에 진땀을 흘리며 대답을 못하던 남동생은 나에게 결심이라도 한 듯 물었다.
"누나, 그럼 엄마 아빠한테 말 안 한다고 약속해"
비장하게 말하는 남동생은 나의 호기심을 더욱 당겼다.
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 대답했다.
"알았어. 이제 말해"
남동생은 컴퓨터를 다시 부팅시켰고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남동생은 플로피 디스켓에 저장되어있던 파일을 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과성숙한' 여성들의 터질 듯한 수영복 사진에 압도되고 말았다. 보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남동생이 다음 화면으로 넘기는 스페이스바를 눌러대는 만큼 내 심장도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소설을 읽으며 상상한 파스텔톤의 그것과는 질감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내가 '수영복'이라고 칭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몸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천 쪼가리였다. 수십 장의 사진들은 온통 갈색, 분홍색, 고동색의 향연이었다. (너무 표현이 적나라했나요. 그러니까 그게 서양인들이었거든요...) 나는 한숨을 쉬듯 보는 내내 중얼거렸다.
"미쳤다. 미쳤어. 이런 걸 보냐"
거부감을 표현했지만 사실 그 날 나는 남동생과 은밀한 협정을 맺었다. 내가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는 대신 이런 것들을 공유하는 걸로. 사실 딱히 그런 사진이 좋았다기보다 호기심이 더 발동했다. 금기된 것에 대한 본능적인 당김이었다. 맘 졸이며 내 눈치를 살피는 남동생은 그 이후로도 한두 번 나에게 재물을 바치듯 디스켓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또래 여자애들이 아직 구경도 못한 그런 것을 먼저 봤다는 묘한 특권 의식마저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부모님 몰래 TV를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묵직한 죄책감이 슬그머니 자리 잡았다. 또 은근히 내 깨끗한(?) 영혼에 그을음이 생긴 것 같았다.
어제 'S군의 동영상'을 보았다.
이런 해묵은 기억이 떠오른 것은 어제 오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얼굴이 벌게진 한복 아가씨(옆 동료)가 내 옷을 잡아끌었다. 나한테 조심스럽게 들이민 핸드폰엔 동영상 하나가 떠있었다.
'이거 봤어요? 완전 충격이에요. 저도 지금 친구한테 방금 받았어요'
신사적인 외모로 드라마에서 인기몰이를 했던 남자 연예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거기엔 멀끔하게 생긴 그의 아주 '개인적이고 개인적인' 사생활이 담겨있었다. '헤액' 나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끝까지 보지 않고 껐지만 기분은 영 찝찝해졌다. 마치 맛없는 음식으로 입을 버린 것 마냥 눈을 버린 기분이었다.
이젠 남동생 수영복 사진에 경악을 하는 중학생은 아니지만 'S군 동영상' 같은 건 또 다른 이슈로 다가온다.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연예인이지만 진짜든 연출이든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송두리째 뒤집히는 기분은 유쾌하지 않다. 씁쓸해진 이유는 뭘까. 아마 사람 사이의 적당 거리를 유지하는 선을 넘어서인 것 같다. '적당한 거리감'은 우리 만물의 법칙 아니던가. 크게는 각 행성들이 일정한 궤도로 거리를 유지하고 작게는 원자의 핵 주위를 전자들이 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S군도 내가 그 영상을 보길 바라지 않았을 테고, 나는'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보고야 만 것이다. 그렇게 S군과 나의 거리두기는 실패했다.
누구나 에덴동산의 '사과'를 따 먹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려는 본능이 있다. 똑똑한 누군가의 그 본능 덕분에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알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호기심에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가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한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호기심은 '독'이다. 누군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에 선을 넘어 뻗치는 시선은 음란하다. 우리는 그것을 '관음증'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인터넷 전사로 거듭나고 있다
16년 전, 초롱초롱한 신입생이었던 나에게 강의가 무척 지루했던 교수님 한분이 느릿하게 말했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정보를 잘 선별해서 쓰는 것이 우리의 능력이 될 것이라고.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식상하기 짝이 없는 요즘은 과연 어떤가. 나에겐 정보를 선별할 만한 시간은 주어지는지 의문이다. 인터넷을 키는 동시에 시야에 치고 올라오는 엄청난 광고와 선정적인 기사 제목들. (한 번은 청문회에 출석한 삼성'이재용'이 바른 립밤이 외국 이마트에서 3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는 기사가 '많이 본 기사' 3위에 떠있는 것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엄청난 원색적인 정보에 잡아 먹히고 만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무차별적인 공격에서 싸워야 하는 '전사'로 거듭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젠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누군가의 동영상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나오면 궁금하다고.
+
'S군 동영상' 봐놓고 이렇게 장황하게 쓰기는 좀 멋쩍지만...
다 안 봤습니다.
중간에 분명히 껐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