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22.
대학 입학식을 위해 샀던
그 '산뜻한' 옷
'니네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돈 쓰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말하던 아빠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내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이다. 엄마는 고3때 찐 살을 빼려고 매일 수영장에 다니는 나를 보며 이제 너도 대학생이니 같이 옷을 보러 다니자고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엄마와 단 둘이 옷을 사러 다닌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학창시절에는 돈이 좀 생기면 친구들과 주말에 시내에 나가서 지하상가의 보세옷을 사서 입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일년에 손에 꼽을 일이었고 보통은 엄마가 주는 대로 그냥 입었던, 그래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던 말 참 잘 듣던 학생이었으니까.
엄마를 따라 간 백화점의 옷 값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그 당시 유행했던 개념원리와 같은 두툼한 수학 참고서를 만원 남짓 할 때, 샤방샤방한 봄 원피스의 태그에는 20만원을 넘는 가격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히 적혀있었다. 헉 소리가 나는 가격을 보고도 엄마는 태연하게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옷 저 옷을 나에게 대어 보았다. 손사래를 치는 내 손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엄마는 빨리 옷을 입고 나와보라고 했고, 나는 내 사이즈가 66인가 55인가를 속으로 고민하며 매장 언니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일단 큰 걸로 입어 볼께요'
후덥지근한 백화점의 공기 속에서 피팅룸은 뭔가 더 특별한 체취가 남아있었다. 옷을 쌓아두는 창고와도 연결되는 경우도 많아서인지 알 수 없는 섬유와 먼지 냄새, 그리고 누군가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 그리고 미지근한 스팀 다리미의 들큰하고 습한 느낌까지.... 그 좁은 공간안에서 꿈틀꿈틀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 새옷을 입고 나오면 엄마는 나를 앞 뒤로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엄마가 매의 눈으로 몸을 뒤로 뺐다 앞으로 숙였다를 반복했다. 그 동안 나는 거울 속 모습을 모습을 보며 좌절했다. 그토록 숨이 넘어가도록 꼴딱거리며 수영을 했건만, 잡지 속에 나오던 하늘하늘한 모델처럼 원피스를 입기엔 한참 부족하다 못해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도 현실을 직시했는지 우리는 방향을 살짝 바꿨다. 원피스 대신 아주 '산뜻한' 바지를 사기로 했다. 엄마는 봄이니까 '산뜻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몇번을 말했는데, 엄마가 말하는 '산뜻함'이 노골적인 '핑크'일 것이라고는 그 땐 짐작하지 못했다.
우리가 백화점 매장을 몇번 돌고 돌았다. 여러 브랜드를 들락날락 거리다 결국 내가 옷을 입어보게 된 매장은 아주 색감이 선명하다 못해 형광빛 띄던 곳이었다. 그 브랜드의 10평 남짓한 공간은 흡사 동화속에 나올만한 총청연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꽃자수 흰색 블라우스에 분홍 바지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는 그런 곳. 그리고 꽃무늬 자수가 여기저기 곱게 놓아져있어서 좀 '산뜻'하다 못해 좀 부담스러웠던 디자인들이 여기저기에 펼쳐져있었다.
결국 나는 바지 앞 주머니 근처에 앙증스럽게 꽃 자수가 놓인 분홍색 바지를 입었다. 엄마는 매장 직원에게 그 놈의 '산뜻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듯 했고, 나는 분홍색 바지에 흰색 블라우스, 그리고 약간 톤이 다른 핑크 자켓을 입었다. 그렇게 나는 '핑크돌이'로 변신해서 백화점을 유유히 빠져나왔는데 엄마와 나는 대학 입학식 때 입을 옷을 아주 잘 산 것 같다며 뿌듯해하기까지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던가. 나는 주위의 시선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참 열심히 그 꽃분홍색 바지를 잘도 입고 다녔다. 또 다행스러운 점은 그 당시 내가 입학한 대학 특성상 학우들의 패션 감각 또한 매우 '도토리 키재기',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지라 별로 내 패션 테러에 대해 일말의 자극을 줄만한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 옷을 입학식 때 정말 입고 갔는지 어땠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난다. 하지만 그 옷을 입고 벌벌 떨었던 기억은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3월의 쌀쌀함 그리고 봄 옷
학생회관 앞에 5시 즈음이 되면 하나둘씩 모이면서 통학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늘어섰다. 학생회관에서 시간을 보내다 자리가 없을까 봐 할 수 없이 일찌감치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 오곤 했는데, 그 날은 유독 바람이 쌀쌀했던 3월의 봄이었다. 배가 고팠던 것은 둘째치고 뺨에 몰아치는 차디찬 봄바람에 벌벌 떨었던 기억. 아마 속으로 이렇게 투덜거렸던가.
'어휴.. 3월인데 왜 이렇게 추워. 얼어 죽겠다'
그랬다. 3월은 항상 추웠다. 2000년도의 봄에도 그리고 17년이 지난 올해 봄도 마찬가지다. 몇 주전 봄을 맞이해 장만한 얇은 소재의 시폰 드레스를 코트에 받쳐 입었다. 롱 원피스에 롱 코트를 입는 게 요즘 유행이라길래 큰 맘먹고 카키색, 인디핑크색으로 두 벌이나 장만했었다. 옷장에 고이 모셔놓은 옷을 옷걸이채 꺼내서 몸에 대보이고 신랑에게 "아직 좀 그렇지?"하고 몇 번을 물어보았다. 신랑이 "아직은 좀 그렇지"라는 대답을 몇 번 듣고 입맛만 다시기를 몇 주, 참다 참다 결국 이번 주에 첫 개시를 했다. 같이 구입했던 새 스타킹도 뜯어서 신었다. 기모 레깅스 대신 스타킹을 신으니 기분이 참 '산뜻'해졌다.
하지만 어제부터 콧물이 좀 흐르고, 머리도 띵하게 아픈 게 몸살 기운이 느껴졌다. 으슬으슬 춥더니 결국 신호가 온 것이다. 결국 오늘 다시 따뜻한 니트와 모직 옷을 입고 출근했다. 따뜻했다.
시폰 원피스는
아쉽지만 좀 더 기다렸다 입어야겠다.
뭐 어쩌겠나.
아직은 때가 아닌 걸...
멋 부리다 병나겠다.
다 늙어서...
+
그러니까 3월은 봄인 거야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