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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Apr 20. 2017

권력에 취한 당신에게

2017.4.19.






  

저 화장실 다녀와도 되나요?
교사, 권력에 취하다.



  이런 원초적인 권리에 관한 질문을 나는 하루에 최소 5번은 듣는다.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직업군은 교사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유치원이나 중 고등학교 교사, 군대 좀 더 나아가면 교도소 정도이다. '네가 화장실을 가는 것을 허하노라' 하고 자비롭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에들에겐 공통점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크고 작은 조직 내에서 꽤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에 취해본 적이 있는가. 학창 시절 껌 좀 씹는 언니도 아니었을뿐더러 조별 과제 리더 자리도 부담스럽기만 했던 나로서는 '권력'이란 나와 상관없는 단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털이 부숭부숭한 햇병아리 같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란 말을 듣기 시작하면서 나는 상당한 권력을 거머쥐게 되었다. 서른 남짓한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나를 일제히 보았다. 숙제를 내는 것부터 급식을 다 먹을지 말지에 대한 아주 사소한 문제까지 내가 결정하면 그것이 곧 학급 내 '법'이 되었다. 서른 명이나 되는 학생이 6시간 동안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어 꼼짝없이 선생님의 믿고 따라야 한다니 이거 정말 실로 대단한 힘이 아닌가? 


  하지만 그 당시 내가 그 권력에 적합한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10년 전 그때를 돌이키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나는 교사로서 '뚜렷한 자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 키워 본 사람이라면 혹시 경험해본 적이 있는지. 내 아이를 야단칠 때 나도 모르게 부모님이 했던 말이 나와서 흠찟 놀란 경험. 나 또한 그저 보고 배운 대로 하는 평범한 사람인지라 나 또한 내가 봐왔던 선생님들이 했던 말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떠드는 학생이 있다면 그 옛날 그 선생님 했던 것처럼 뒤에 나가 서 있으라고 했다.(물론 이것은 '타임 아웃'이란 훈육 방법 중에 하나다. 나쁜 방법이란 뜻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숙제를 안 해오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끝까지 남겼다. (그래야 다음엔 남기 싫어서라도 숙제를 해올 거라 믿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반 선배 선생님들도 많이 그렇게 하고 계셨다) 출처를 알 길 없는 행동지침들이 잔뜩 엉켜서 불쑥불쑥 내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근거 없는' 확신에 찬 나의 입김에 당시 학생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휘날리듯 움직였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
그리고 터닝 포인트 '육아휴직'


돌이켜보면 나의 행동에는 얼마나 모순이 많았던가.


"거기 조용히 안 해?" 


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수업 중 집중을 못하는 학생들과 '두더지 잡기'를 하기도 해봤다. 떠드는 녀석들 모조리 잡아내겠다는 강렬한 눈빛 레이저를 쏘아대면 아이들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긴장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떠들고 있다면 내 수업의 매력도가 바닥을 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을 했어야 했다. 수업에 집중을 안 하는 학생이 많다면 내 수업이 재미가 없다는 신호일 수도 있으니까. 수업에 영 흥미를 못 붙이며 잡담만 하는 학생이 뒤에 서서 있는다고 학습 태도가 좋아질리는 없었다. 그보다 왜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재미를 못 느끼는지 원인에 주목했어야 했다. 


  내 직업에 있어 터닝 포인트를 꼽으라면 단연 '육아 휴직'을 꼽겠다. 아이를 낳아서 기저귀 갈고, 이유식 만들고, 빨래한 옷 입히는 그 흔한 일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되느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달까. (어쩐지 옆머리를 손 등으로 한번 튕기고 싶은 이 느낌적인 느낌)


 육아를 통해서 깨달은 몇 가지는 이러하다.  하루 종일 나와 붙어 있던 자식들에게 나는 '날씨'와 같은 존재였다는 것. 그래서 내가 컨디션이 엉망이라 감정이 널뛰기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고스란히 그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내 마음이 급하고 피곤하면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내가 힘들 때에는 학생들에게 말과 행동을 아끼려고 노력한다. 내 감정조절이 안 돼서 부린 신경질이 아이들에게는 천둥 번개가 되어 꽂힐 수 있으니까. 


 두 번째는 아이들은 스펀지 같아서 내가 하는 모습 그대로 거울처럼 비춰낸다는 것이다. 내가 녀석들을 야단칠 때의 말투와 태도는 서로 티격태격 거릴 때 비슷하게 들을 수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너네 도대체 왜 그래?"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며 야단을 치는데 진이가 가끔 오빠한테 소리치는 그 익숙한 멘트에 매번 경악한다. "오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며 앙칼지게 빽빽거리는 그 소리. 나의 억양과 톤을 모두 닮아있다. (미안하다 진아. 이 어미 탓 이데이) 그래서 최대한 아이들에게 깔끔하고 정돈된 목소리로 말하려고 한다. 실제로 우리 반 몇몇 아이들이 내가 EBS 교육 방송에서 강의하는 사람 같다고 말한 적이 딱 '한 번'이지만 무척 뿌듯했다. (정말 딱 한 번이었지만...)


 이제 복직 2개월 차. 유치원 버스 태우는 동네 아줌마가 되었다 다시 학교로 들어가니 모든 게 새롭다. 가장 달라진 것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현이 7살을 키운 것도 나 자신이 너무도 대견할 지경인데 6학년 짜리로 키워낸 학부모님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수많은 사람들의 공이 들어갔을 아이들을 바라보면 너무나 귀하고 조심스럽다. 그러다 보니 출산 전과는 아이들을 좀 다르게 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결정사항에 대해 아이들이 소리 높여 의견을 말하는 경우이다. 예전에는 아이들 말에 휘둘리는 교사는 별로 인 것 같아서 뭔가 결정했으면 뚝심 있게 밀고 나가곤 했는데, 요즘엔 아이들의 의견을 다 일일이 듣게 된다. 그 아이가 나한테 목소리를 높여할 말이 있는 경우엔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을 수도 있고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의견이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서로 소통이 되는 분위기가 마법처럼 만들어진다. 



 '권력'을 내려놓다.


이렇게 구구절절 써 놓으니 참 내가 좋은 교사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난 부족해도 한참은 부족한 찌질이 교사다. 아직 내일 가르칠 교과 지도서를 제대로 안 보면 마음이 불안하고 부담스럽다. 연차가 무척 오래돼서 이미 교과를 꿰뚫고 있는 경력 선생님들은 단원만 봐도 어떻게 지도를 할지 감이 딱 온다던데 나는 아직 그런 게 없다. 다음 날 수업을 급하게 준비하고 어떻게든 넘기면 또다시 내일 시간표 과목들이 나를 비웃 듯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학교에 출근하는 마음이 가볍다. 그 이유는 내 손아귀에 항상 쥐어져 있던 '권력'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을 놓으니 오히려 학생들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손에 잡힌다는 것은 아이들이 나를 더 믿고 따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권력이란 사실 수직관계를 전제로 하는 힘이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은 사실 수평관계가 더 바람직하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마시게는 할 수 없듯이, 학생들에게도 '권력'이란 힘에 의존해서 억지로 공부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려면 아이를 수직 관계에서 평가하지 말고 대등한 관계에서 지원해주고 응원하라'라고 했다. 권력으로 무엇인가를 억제로 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건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라는 거. 나 또한 어릴 적 경험해보았다. 방을 치우려고 했다가도 엄마가 강압적으로 치우라고 하면 금세 치우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는 그 미스터리 한 패턴은 사실 어른이 된 지금도 유효하지 않은가.




거기 혹시 
권력에 취해계신 건 아닌가요?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누군가의 상사이고, 선배이고, 리더라면 그래서 아주 조금이나마 '권력'을 쥐고 있다면 혹시 당신도 모르게 권력에 취해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보시길. '권력'이란 실로 강력한 힘을 쥐고 있는 듯 하지만 양날의 검과 같아서 잘못 휘두르면 종국엔 권력자마저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도 권력에 취한 인간에 대한 좋은 예이다. 죄수와 간수의 역할을 2주 동안 하기로 했던 피험자들이 너무나 상황에 몰입해서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달아 6일 만에 끝나게 되었다는 실험. 특히 '권력'을 쥔 사람들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일 때는 얼마나 더 비이성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들은 그 어떤 집단보다 더 '권력'에 관해서 더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너무나 어리고 약하고 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애들은 다 큰 척, 센 척은 다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좀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교사 중에서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쌀쌀맞고 신경질적이고 무섭게 소리치며 버럭 하는 교사가 참 많다. 개인적으로 알고 보면 참 괜찮은 사람인데, 왜 유독 아이들 앞에서는 그렇게 변하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상대가 어른이라면 차마 그렇게 대할 수 있을까?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회의 때는 고상하고 우아한데,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은 너무도 '깡패'스러운 경우를 목격하게 되면 놀랍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권력'에 잔뜩 취해 정신 못 차리던 신규교사 시절엔, 오히려 신규스럽지 않고 표독스러웠달까. (반성합니다) 




그래도 가장 어려운 건
모범을 보이는 것


  지난주 수학여행 때 취침 전 점검을 하던 중이었다. 우리 숙소는 중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있는 호텔이라서 객실 간 아이들이 이동하는 것을 금지했었다. 각 방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한 아이가 옆방에서 놀고 싶다고 졸랐다. 눈치를 보아하니 이미 몰래 옆방에서 간식도 먹고 온 모양이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단호하게 말했다.


"가영아, 우리 모두가 지키기로 한 약속이니까 웬만하면 지키자."


하며 나긋나긋하게 설득을 하고 방을 나오려던 찰나였다. 

아까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던 혜원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룸메이트가 물었다.


"쌤, 혜원이가 또 배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322호에 선생님들 다 모여있어. 거기로 와라"


구차하게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 팀과 동행하신 교장선생님과 

델몬트 포도주스를 마시며 담소를 나눠야만 했던 

반 의무적인 상황이었다. 


이유가 어찌되어든간에 아이들이 눈엔 

꽃게가 옆으로 걸으면서 자식에게는 앞으로 똑바로 걸으라는 것과 별반 차이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좀 머쓱해져서 유유히 방안을 빠져나왔다.


정말이지 좋은 교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특히, 솔선수범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요즘 복직 후 주제가 너무 일에 치우친다는 

독자분들의 의견이 있었어요.

네, 눈치채셨다시피 복직 후 집안일은 거의 내려놓았고요.

아이들은 거의 방목하고 있습니다.

(저 잠시 눈물 좀 닦고...)

조만간 현이와 진이 이야기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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