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숑로제 May 09. 2016

그럼 아가씨는 올해 몇살이당가?

2016. 5. 8.


 

시골에서 오토바이 타기


   지난 주말에 시댁 농장에 갔었다. 아버님은 10년전에 양촌이라는 동네에 작은 별장을 지으셔서 밭과 논을 가꾸신다. 우리 가족 먹을 것만 조금씩 하신다고 시작 하셨다는데, 그 동안 사 모으신 각종 농기구와 경운기, 저온창고(대형냉장고). 하우스, 마당 잔디, 집 울타리(시골용어로 '휀스'라고도 합니다)를 찬찬히 보고 있자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린 듯하다.



  늦은 오후에 아버님께서 그릴에 숯을 넣고 불을 피우셨다. 소세지와 고기를 잔뜩 구워 배불리 먹곤 우리는 아쉬움에 쩝쩝거렸다. 그 이유는 최근에 탄산의 맛을 알아버린 아들 녀석 덕분에 콜라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신랑과 나는 동네 공판장에 다녀온다고 말씀드리곤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아버님의 시골 전용 오토바이, 신랑은 대학교 때 타곤해서 운전을 잘한다)  

 


  영화배우 조승우가 유명해지기 전에 이나영과 같이 출연한 '후아유'라는 영화를 본 적 있는지?  영화 보다보면 조승우 친구가 부모님께 오토바이를 부모님께 빼앗기고 담배를 피면서 하는 대사가 있다.


'사나이가 엄마한테 말하면 안되는거 세가지. 첫째, 엄마 나 사람 죽였어. 둘째, 엄마, 나 남자가 좋아, 셋째, 뭔지 아냐?  엄마, 나 오토바이타'


오토바이가 그 만큼 위험하는 뜻일텐데, 막상 타면 그 위험을 상쇄할 만큼 기분이 업된다. 학창시절 반에 한 두명쯤 꼭 있는 방황하는 영혼들이 자전거가 아니라 오토바이를 탔는지 이해가 조금은 될 정도이다. 신랑의 허리에 내 팔을 둘러 꽉 잡고 턱을 신랑의 어깨에 붙인다. 출발과 동시에 살짝 휘청하는 느낌도 잠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만져준다. 커브를 틀 때에 몸을 자연스럽게 기울이는 것도 이젠 제법 잘한다. 약간의 스릴과 함께 탁트인 공기는 청량하다. 차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2D 영화라면, 오토바이를 타며 바라보는 풍경은 3D이다. 직업적으로 오토바이을 타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기분을 업시키는데 가장 좋은 오락거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럼 아가씨는 올해로 몇 살이당가?



  없는 것 빼고 다 팔고 있는 '양촌 공판장'에서 맥콜과, 아이들 간식을 몇개 집어들었다. 신랑은 상큼한게 당긴다며 '감귤 아이스크림'을 집어들곤, 애들도 있고 다 먹고 들어가자고 한다.  공판장 앞, 나무 벤치가 서너개 보이길래 앉아서 시골풍경을 바라본다.


농기계, 농약 파는 상점,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

시골치고는 규모가 제법 커 보이는 '스촨 중국집',

들어간 사람은 있었지만 나온 사람은 못봤다고 할 법한 괴기스러운 정육점,

뜬금없는 '명작 단란주점' (어머, 이런 곳에도 수요가 있나요?)

2층높이의 사다리가 수십개 쌓여있는 대형 철물점

시골의 배경들이 마치 영화 속에 세트장 같이 느껴졌다.     


"오빠, 우리 오토바이타고 이런 데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니까, 시골 동네에서 쫌 노는 애들 같다. 그치?"

"그래?"

"여기 젊은 사람 하나도 안 보이네, 가뜩이나 나 머리에 분홍 삔도 해서 촌티 폴폴이야 (딸내미가 빼놓으거 대충했음)"

"그러네... "



내가 바람을 잡아서인지 신랑도 그냥 그럴 기분이 들었는지,

평소 나의 오버에 호응을 안해주는 신랑이 갑자기 상황극을 시작한다.


"흠...그럼 아가씨는 올해로 몇 살이당가?"

"네?(살짝 당황, 하지만 기분좋음)  저 올해 이제 20살.... "

"내가 이 동네에 투자좀 해볼라고 한당께~"

"어머~ 어빠 돈 좀 있는가봥~"

"이리 좀 가까이 와보랑께~~"

"아잉~오오옵빠!"


진짜 시골 처녀가 보면 콧방귀도 안 뀔 레파토리에

서로 계속 키득 키득.


고기먹다 어머님이 주신 막걸리에 취한건지

오토바이에 취한건지.



담배를 피러 오신 어르신 두분의 등장으로 급히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이 제법 따뜻한 양촌 시골의 저녁 무렵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무라카미 하루키의 반전 매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