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12.
스칼렛 vs 엘리사
내가 그 영화를 처음 본 곳은 할아버지네 집이다.
명절이라 사촌들이 모두 모인 그날.
할아버지 방안에서 우연히 보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커다란 종 모양으로 부푼 치마를 입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는 한 손에 잡힐 것 같았다.
요염하고 오만한 눈빛의 여자 주인공.
아름다운 드레스와 파티 장면에 반해서 보기 시작하다가
스칼렛 오하라라는 캐릭터에 푹 빠졌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씩씩하고 생활력 넘치는 여자 주인공이 좋았다.
어떤 역경이 와도 꾿꾿이 이겨내면서도,
그 와중에 로맨스를 잃지 않는 캐릭터에 항상 매력을 느꼈다.
주말에 '운명의 딸'이란 라틴아메리카 소설을 읽었다.
주인공은 '엘리사'
칠레 소녀 엘리사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첫사랑을 찾기위해
개척시대의 미국 땅에 상경한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불모지에서 온갖 역경을 다 겪으며 성장한다.
나는 어쩐지 스칼렛이 떠올랐다.
하지만 스칼렛보다 훨씬 더 능동적이고, 모험심이 강하고, 대범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하고 절망속에서 희망을 막연하게 찾는다면,
엘리사는 마지막 장에 '나는 이제 자유에요' 라고 외치는 캐릭터다.
아까 여성 군입대 청원에 관련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주말내내 엘리사가 서부 개척시대에서 온갖 수난을 겪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여성 군입대'가 어이없게도 좀 당연하게 다가왔다.
언제든 전쟁이 터질 수 있는 나라인데
여자 남자를 가리는게 그리 중요할까.
오히려 국방에 대해서 뭐라도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니까 내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총 쏘기, 수류탄 던지는 방법 같은 건 좀 알고 싶다.
그리고 여자가 군입대 하면
오히려 여성에 대한 처우나 육아에 대한 시스템이
더 확실해 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다.
어찌되었든
스칼렛처럼 의지할 든든한 남자(레트 버틀러)를 찾는 것보다
엘리사처럼 남장을 하고서라도 함께 일을 하며 혼자 독립한 여자가
훨씬 더 멋지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여자도 군입대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