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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Nov 22. 2017

우리반 '귀요미들'

2017.11.21.


우리반 귀요미들



우리 반 여학생들은 굉장한 '귀요미'들이다. 이마에 여드름도 한 두 개씩 나기 시작하는 이 녀석들에게 굳이 '귀요미'라는 소름 끼칠 정도로 앙증맞은 비유를 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일단 생김새가 굉장히 다들 귀엽다. (우리 반 남학생들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하겠지만) 나의 장점이자 단점으로서 누구나 오래 보면 다 그 사람 나름의 이쁨을 발견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나의 미에 대한 기준은 그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고도 다양하다. 그래서 여태껏 살면서 눈이 낮은 것 같다. 아니면 취향이 독특하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 여학생들은 유독 다른 반에 비해 귀여운 얼굴이 차고 넘친다. 관상학적으로 동물로 비유하자면 다람쥐, 토끼, 강아지, 고양이들이 있다. 특히 어떤 종인지 디테일하게 구분을 해야 할 정도로 강아지 상이 많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극히 개인적으로 주관적인... )


 치명적인 매력이 비단 외모뿐만은 아니다. 녀석들은 여태껏 본적 없는 '똑똑한 평화주의자'이다.  6학년 말이 되면 각자 친한 친구끼리 일종의 '파'를 형성해서 서로 뭉치고 은근히 서로 욕하는 경우가 많은데 2학기가 다 되었지만 그런 분위기는 요만큼도 없다. 원래 됨됨이가 착한 것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똑똑하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선생님한테 걸리고 상담하고 그러다 보면 일이 안 좋게 흘러갈 것이라는 것까지 이미 다 생각해내는 아주 영리한 아이들이다. 예를 들면, 조별 과제 팀을 원하는 사람끼리 팀을 구성하기 위해서 자기들끼리 알맞게 분쟁 없이 친구들의 합의 하에 다 착착 팀을 딱 짜 놓는다. 누군가 소외되면 선생님한테 딱 걸리니까 그런 아이 하나 없도록 모두를 잘 배치해서 팀을 짠다. 매번 느끼지만 진정한 '착함'에는 '똑똑함'이 분명히 깔려 있어야 된다.(멍청하게 착한 경우는 상대를 악인으로 만드니까. 그 좋은 예로 신데렐라, 콩쥐가 있다. 혼자 우직하게 착한 척 다 하는 동생이 더 얄미워서 언니들의 악행에 더 탄력이 생겼을 것)


 요즘 우리 반 '귀요미'들 사이에서 나의 그림일기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1년 전에 썼던 글까지 읽은 학생부터 내 그림일기를 모조리 다 읽었다는 아이도 있다. P양은 내 그림일기에 자주 언급된 장난꾸러기들을 글에 나온 별명으로 (P양, 최군, 혁, L군 등등) 불러달라고 하기도 했다. 심지어 내 글에 달린 댓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도 한다. 한 번은 '그런 댓글이 있었어? 기억이 안 나네' 하고 대답했더니, 우리 반 똘기 넘치는 O양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댓글 몇 개 달리지도 않던데 왜 기억 안 나요?" (이것은 진정한 팩트 폭력)


 또, 코믹한 상황이 벌어지면 누군가가 "썜, 이거 일기로 써요!"하며 내 그림일기 주제 코치를 하기 시작한다. 반에서 벌어지는 재밌는 에피소드를 일일이 올리면 아마 하루에 서너 개를 올려도 다 못 올릴 거다. 학기 초에는 이 재밌는 이야기를 그때 그때 다 올려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워낙 우리 반 장난꾸러기 멤버는 정해져 있어서 관두었다. (이미 나의 일기에 자주 나오는 아이들) 


어찌 되었든 이런 보잘것없는 아줌마 선생님의 그림일기에 관심과 사랑을 주는 아이들에게 고맙다. 사실 우리 반 '귀요미'들은 나에게 항상 과분한 사랑과 관심을 준다. 나를 놀려먹는데 혈안이 된 녀석들이지만 그 마저도 녀석들의 관심이라는 것을 잘 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내 곁에 와서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 학교 끝나고 학원가기도 바쁠 텐데 나의 글을 재밌게 읽어주는 녀석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식와 학생과 비슷한 점



얼마 전 친한 이웃님께서 나의 글에 이렇게 댓글을 달아 준 적이 있었다.


'아이든 학생이든 이쁜데 말 안 듣는 건 똑같나 봐요'


사실 학생과 자식 사이에는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다. 서로가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매일 서로의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관계. 나의 하루 컨디션이 녀석들의 하루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굉장하고 좀 겁나기도 한 것은, 녀석들의 영원히 남을 '유년기'의 기억에 일정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자식이든 학생이든 이 둘은 나에게 항상 무한한 사랑을 준다. 지극히 평범하고 뛰어난 매력도 없는 아줌마에게 매일 같이 다가오고 조잘거리고 대화하고 또 같이 웃는다. 나도 완벽한 인간이 아닌지라 녀석들에게 알게 모르게 실수할 때가 많을 텐데 자식이든, 학생이든 나보다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에게 용서를 먼저 구하고 손을 내민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매번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


이제 11월의 끝자락. 

이제 곧 12월이 올 테고 

그러면 겨울방학이 금방 다가올 것이고, 

그러다 아이들은 졸업과 동시에 학교를 떠날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나는 이미 취해버렸다.

매일 우리 반 '귀요미'들이 툭툭 던지는 농담과 웃음에

그리고 거기에 수줍게 담긴 사랑에 

흠뻑 취한 것 같다.


그래서'졸업'이라는 

당연한 수순의 이별식이

두렵기도 하다.


흔히 교사라는 직업은 

학생들에게 사랑을 주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사실 '사랑'에 대한 최대의 수혜자는 선생님이다.




+


그래도 졸업식 때엔 울지 말아야지.

울면 진짜 못 생겨진다.

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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