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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Dec 10. 2017

비나이다. 비나이다.

2017.12.7.


오전 9시 40분, 보건실.



"훈아, 눈 떠봐. 아파서 그래?"


"선생님, 눈이 안 떠져요"


새벽에 내린 눈에 아이들이 신난 아침이었다. 지난 첫눈에 이미 눈싸움을 화끈하게 했던 터였다. 저번처럼 체육시간을 1교시에 하자고 했다. 지루하고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학생들에게 눈만큼 좋은 오락거리가 또 있을까. 내린 지 얼마 안 된 따끈 따끈이 아니고 차디찬 눈은 굉장히 보드라웠다. 아이들은 저번 눈싸움 때보다는 눈이 잘 안 뭉쳐진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더 눈덩이를 뭉치는데 더 손에 힘을 줘서 공을 들이는 모양이었다. 하얀 분가루를 뒤집어쓴 운동장은 정말 재미난 '눈' 놀이터였다. 그 끔찍한 순간까지는...


민이가 눈덩이를 훈이에게 던질 때, 조금만 더 손목에 스냅을 줬더라면, 그래서 눈이 날아가는 각도가 조금만 달랐더라면, 아니면 훈이가 반격 따위는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도망쳤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다. 그날 아침 민이는 훈이에게 눈덩이를 던졌고, 반격을 하려고 뭉친 눈을 들고 민이 쪽을 바라보던 훈이는 얼굴에 정통으로 눈덩이를 맞았다.


 아프다고 신음소리를 내는 훈이를 보고 식겁을 해서 바로 달려갔다. 눈을 털어내려고 털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면서도 훈이는 계속 '아.. 아..'하며 낯선 소리를 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바로 보건실로 데리고 갔다. 보건실 의자에 앉히고 보건 선생님은 눈물액을 넣어주셨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것을 보니 몇 분 뒤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눈을 계속 못 뜨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고 나는 참을 수 없이 불안해졌다. 일단 엄마한테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고, 보건 선생님은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며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눈을 못 뜬다고 호소하는 모습에 내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을 쳤다.


이상해. 이상해. 진짜...

이건 정말 예감이 안 좋아.


나는 제부에게 전화를 걸었다.(제부는 안과 전문의)


"우리 반 애가 눈을 맞았는데, 눈을 못 떠요. 눈물은 안 나는데... "


그러자 제부의 말.


"각막 손상이네, 거기에 스크래치 나서 아파서 눈 못 뜨는 거야. 병원 데리고 가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각막이라니. 이건 너무 했다. 차라리 뼈에 금이 가는 게 낫지...(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엔 그랬다) 각막 손상이라는 말은 너무 생소하고 무시무시했다. 이 사실을 안 보건 선생님은 신속하게 아이를 근처 가장 큰 안과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눈 밭을 뛰놀던 천국에서 갑자기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뭔가 일을 굉장히 망쳐놓고 상사에게 이실직고를 해야 하는 말단 사원이 된 기분으로 부모님께 통화버튼을 눌렀다. 정황을 소상하고 죄송스럽게 알리고 심란한 마음으로 2교시 수업을 진행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풍경과 그 안에 있는 우리 반 학생들을 보며 이 무리에 훈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아까 그 일이 그냥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수업은 해야 하니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2교시를 마치자마자 보건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다행히 각막 손상이 아주 심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3 일정 도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고... 나는 물었다.


"다행이네요. 선생님, 그러면 훈이 눈을 좀 떠요?"


"아니요. 아직 애가 아파서 그런지 못 뜨네요"


뭐야, 눈을 못 뜨다니.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해도 나는 아무래도 괜찮아지질 않았다.  눈을 못 뜬다니.... 아들이 눈을 못 뜨고 누워있으면 그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찢어질까. 하루 종일 우울했다. 제부한테 다시 전화를 해서 회복기간에 대해 다시 물어보고, 네이버에서 검색도 해봤다. 괜찮아질 거야. 며칠 후면 괜찮아져.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도


'그런데, 훈이가 아직 눈을 못 떴어'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 한구석이 막 쓰려오면서 어쩐지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 우울해졌다. 그러다가 아냐 괜찮아질 거야 제부도 그랬잖아 그러니까.... 하다가 또 '그런데 눈을 못 떴어' 하며 또다시 기분 급 하강. 이런 악순환이 하루 종일 반복되었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된다는 건


 그러고 보면 우리 반 아이가 다친 건 사실 이번이 아니다. 1학기 때엔 줄넘기 연습을 하던 송군이 운동장 안내판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손가락을 심하게 베여서 수지접합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그 바로 다음날 최군은 발야구를 하다가 넘어져서 손가락 세 개에 금이 갔다. 2학기 들어서 조군은 피구를 하다 맞은 공에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더니 다음날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왔다.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해봤던 사람이면 알 거다. 아이가 다치면 대역죄인이 된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아이에게 잘했고 못했고 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아이가 다치면 무조건 보호자인 선생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다친 날이면 나는 무능한 교사가 된 기분이다.


또 모든 사고가 그렇지만 학교에서 나는 사고는 대부분 예측 불가하고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한들 막을 수 있을까 싶은 경우가 많다. 운동장 안내판에 손을 베인 송군이 운동장에 안 나갈 수 없는 노릇이고, 최군이 발야구를 다시는 안 할 수도 없고, 조군이 피구를 싫어할지언정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훈이가 다쳤다고 앞으로 눈싸움을 절대 못하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아이의 상태를 보러 집으로 문병을 갔다. 아이 엄마는 괜찮다고 애써 말하셨다. 아직 눈을 못 뜨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고 괜찮을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못 하는 스스로가 굉장히 무능하고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 뒷산에서 자살을 한 단원고 교감선생님의 행동은 옳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는 간다. 아이 한명만 다쳐도 이리도 죄책감에 몸서리를 치는데 그분은 어땠을까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그리고 이렇게 무능함을 절절하게 체감한 날엔 어쩔 수 없이 종교를 찾게 된다.


이날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손 좀 다 모아봐.

너네 종교가 뭔지 쌤이 모르겠지만.

부처님이든, 예수님이든, 성모 마리아 님이든

아니면 그 무엇도 좋아.

지훈이 눈 빨리 회복되라고 기도하자."


내심 지훈이를 다들 걱정하던 모양이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도 마음도 아름다운 우리 반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훈이를 위해

다들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물론 나도...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원래 회복될 거였는지, 기도빨인지.

3일 정도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 할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과 달리

바로 그다음 날 훈이는 학교에 등교를 했다.


교실에 들어온 훈이을 보고 한 바터면 엉엉 울 뻔.


애써 "눈 뜬 거야? 괜찮아?" 하면서 요리조리 살펴보는 척을 했지만.

나는 사실 속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있었다


누구 하나 다치면 다시 한번 느낀다.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고 보면 어느 하나 당연한 것은 없었다.


그 교실, 그 시간, 그 자리에

어김없이 앉아있는 아이들은

어쩌면 매일 매일의 기적일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


얘들아,

다치치 좀 말자 좀. 응?

선생님, 제 명에 못 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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