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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Apr 15. 2018

이 놈의 주둥이가 문제

2018.4.14.


 

나이가 들면서 겸손해 지는 이유.

자신감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살다보니 나도 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결코 난 그러지 말아야지 했던 것들을

나도 결국은 그러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때...

살짝은 죄책감이 들다가

조금 의기소침해지다

그리고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도 해보았다가

그러다 그냥 또 잊게 된다.


지루한 수업을 꾸역꾸역 해 나갈 때 그렇고

현이에게 조용히 타일러도 될 것을 

감정적으로 버럭하며 소리지를 때도 그렇다.

나란 사람도 정말 별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

그 누구의 실수에도 

자신만만하게 '거 바라. 내가 머랬니'

라고 말할 자신이 없어지나보다.


내 실수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말 실수'.


어딜가나 '이 놈의 주둥이'가 문제.

수학여행 때 조쌤한테 '애는 누구한테 맡기고 오셨어요?'

라고 물었을때, 그 몇 초간의 적막과 어색함.

정말 딱 10초만 되돌릴 수 있다면.


어제 집에서 저녁 먹을 때도 그랬다.


밥을 다 먹고 식탁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신랑이

어쩐지 굉장히 태만해 보이고 

그날 따라 아이 교육상 안 좋을 것 같아서 나는 그만


'핸드폰 그만 봐 좀."


라고 쏘아부치고 말았다.


사실  내용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그 말을 하는 어조, 억양, 말투, 표정은

아마도 


 "자, 용돈이야 100만원!"


이라고 말했어도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었을거다.


어릴 때부터 가볍게 꾸중을 하셔도

내 기분을 더 이상 나쁠 수가 없게 만드는 

아주 남다른 재주가 있으셨던

우리 석드래곤님(우리 아버지 애칭)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을 터.

(아버지, 혹시 보신다면 죄송. 하지만 이거슨 어쩔 수없는..진실...)


어찌되었든

신랑은 굉장히 빈정이 상한 듯 했지만,

이미 말을 주어담을 수도 없는 노릇.

좀 머쓱해진 내가 한 말이라곤 겨우.


"내가 좀 세게 말한 건 미안한데...

내 뜻에는 굽힘이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분노에 기름을 붓는 이 얄미운 언행은

다시 생각해도 좀 아니다 싶으나 

이 또한 다시 주어담을 수 없는 노릇.


다행히도,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우를만한

넓은 마음을 품고 있는 신랑님이 먼저 


"알았어, 여보 내가 좀 조심할께"


하며 체념한 표정을 비추었을때,

나는 그제서야 나의 실수를 통감했다.


나른하고도 평범한 금요일 밤 저녁식사 중 

이런 갑작스러운 냉전 분위기라니...

머 이런 아닌밤중에 홍두깨란 말인가.


정말 내 자신이 '비호감'으로 느껴지는 순간.

요즘 너무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다.


어릴 때 갑자기 버럭하던 우리 아빠가 그리도 싫었건만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내가 똑같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저 '쩝'.

하게 된다.


이런 나를 쿨하게 받아들인 것도 ,

그렇다고 절대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개선하려는 것도

머 그렇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아닌

굉장히 어중간하게 '쩝' 하게 되는 이 마음.


'나란 인간도 별 수 없구나'

라는 마음이 쌓이다 쌓이다 보면

약간의 이해심이 생기나 싶기도 하다.


어릴 적 아빠의 버럭도 좀 이해가 갈라하고,

그 옛날 엄마가 사들인 온 갖 잡다한 인테리어 소품도 

내 씀씀이를 살펴보면 이제는 다 이해가 간다.

(나는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주로 먹는 걸로 충동구매)

지루한 수업을 했었던 고등학교 문학선생님도,

그 긴 지문을 한 시간에 소화할라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며,

나라도 그 상황에는 별 수 없었을 것이란 것이

지금은 너무 이해가 간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를 비난할 때엔

예전 만큼 맹렬히 얄짤없이 

비판하기가 굉장히 망설여진다.


어쩐지 그 화살이 나에게도 

언젠가 나에게도 돌아올 것 같아서 

그냥 좀 말을 아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머 이렇게 쓰면서도

좀 전에 현이에게 앙칼지게 한번 버럭했다.


"야, 양치질 하라고 몇번 얘기해!"


이런 잔소리 같은 것들이

이를테면 이것은 역사의 반복 내지는 

비극의 되물림일 수도 있는 것인데,

어찌보면 또 필요악이라서

딱 끊을 수도 그렇다고 막 남발할 수도 없고 

애매하게 그렇다.


어찌되었든...

지금 심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마디로 


'쩝' 


이다.






조쌤,

정말 미안해요.

내가 그럴려고 한게 아닌데,

어쩌다보니 말실수를...


제가 본의 아니게 쌤에게 

'비호감'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게다가 우리 반 아이들은

하필 그 타이밍에  

말인지 방구인지도 모를

그런 말을 해댔는지도 정말 미스테리에요.


아무튼 쌤과 함께 수학여행 다녀와서 

편하고 좋았어요.



++


저만 편했는지도 모르겠네요.

다시한번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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