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14.
나이가 들면서 겸손해 지는 이유.
자신감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살다보니 나도 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결코 난 그러지 말아야지 했던 것들을
나도 결국은 그러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때...
살짝은 죄책감이 들다가
조금 의기소침해지다
그리고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도 해보았다가
그러다 그냥 또 잊게 된다.
지루한 수업을 꾸역꾸역 해 나갈 때 그렇고
현이에게 조용히 타일러도 될 것을
감정적으로 버럭하며 소리지를 때도 그렇다.
나란 사람도 정말 별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
그 누구의 실수에도
자신만만하게 '거 바라. 내가 머랬니'
라고 말할 자신이 없어지나보다.
내 실수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말 실수'.
어딜가나 '이 놈의 주둥이'가 문제.
수학여행 때 조쌤한테 '애는 누구한테 맡기고 오셨어요?'
라고 물었을때, 그 몇 초간의 적막과 어색함.
정말 딱 10초만 되돌릴 수 있다면.
어제 집에서 저녁 먹을 때도 그랬다.
밥을 다 먹고 식탁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신랑이
어쩐지 굉장히 태만해 보이고
그날 따라 아이 교육상 안 좋을 것 같아서 나는 그만
'핸드폰 그만 봐 좀."
라고 쏘아부치고 말았다.
사실 내용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그 말을 하는 어조, 억양, 말투, 표정은
아마도
"자, 용돈이야 100만원!"
이라고 말했어도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었을거다.
어릴 때부터 가볍게 꾸중을 하셔도
내 기분을 더 이상 나쁠 수가 없게 만드는
아주 남다른 재주가 있으셨던
우리 석드래곤님(우리 아버지 애칭)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을 터.
(아버지, 혹시 보신다면 죄송. 하지만 이거슨 어쩔 수없는..진실...)
어찌되었든
신랑은 굉장히 빈정이 상한 듯 했지만,
이미 말을 주어담을 수도 없는 노릇.
좀 머쓱해진 내가 한 말이라곤 겨우.
"내가 좀 세게 말한 건 미안한데...
내 뜻에는 굽힘이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분노에 기름을 붓는 이 얄미운 언행은
다시 생각해도 좀 아니다 싶으나
이 또한 다시 주어담을 수 없는 노릇.
다행히도,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우를만한
넓은 마음을 품고 있는 신랑님이 먼저
"알았어, 여보 내가 좀 조심할께"
하며 체념한 표정을 비추었을때,
나는 그제서야 나의 실수를 통감했다.
나른하고도 평범한 금요일 밤 저녁식사 중
이런 갑작스러운 냉전 분위기라니...
머 이런 아닌밤중에 홍두깨란 말인가.
정말 내 자신이 '비호감'으로 느껴지는 순간.
요즘 너무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다.
어릴 때 갑자기 버럭하던 우리 아빠가 그리도 싫었건만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내가 똑같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저 '쩝'.
하게 된다.
이런 나를 쿨하게 받아들인 것도 ,
그렇다고 절대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개선하려는 것도
머 그렇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아닌
굉장히 어중간하게 '쩝' 하게 되는 이 마음.
'나란 인간도 별 수 없구나'
라는 마음이 쌓이다 쌓이다 보면
약간의 이해심이 생기나 싶기도 하다.
어릴 적 아빠의 버럭도 좀 이해가 갈라하고,
그 옛날 엄마가 사들인 온 갖 잡다한 인테리어 소품도
내 씀씀이를 살펴보면 이제는 다 이해가 간다.
(나는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주로 먹는 걸로 충동구매)
지루한 수업을 했었던 고등학교 문학선생님도,
그 긴 지문을 한 시간에 소화할라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며,
나라도 그 상황에는 별 수 없었을 것이란 것이
지금은 너무 이해가 간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를 비난할 때엔
예전 만큼 맹렬히 얄짤없이
비판하기가 굉장히 망설여진다.
어쩐지 그 화살이 나에게도
언젠가 나에게도 돌아올 것 같아서
그냥 좀 말을 아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머 이렇게 쓰면서도
좀 전에 현이에게 앙칼지게 한번 버럭했다.
"야, 양치질 하라고 몇번 얘기해!"
이런 잔소리 같은 것들이
이를테면 이것은 역사의 반복 내지는
비극의 되물림일 수도 있는 것인데,
어찌보면 또 필요악이라서
딱 끊을 수도 그렇다고 막 남발할 수도 없고
애매하게 그렇다.
어찌되었든...
지금 심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마디로
'쩝'
이다.
+
조쌤,
정말 미안해요.
내가 그럴려고 한게 아닌데,
어쩌다보니 말실수를...
제가 본의 아니게 쌤에게
'비호감'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게다가 우리 반 아이들은
하필 그 타이밍에
말인지 방구인지도 모를
그런 말을 해댔는지도 정말 미스테리에요.
아무튼 쌤과 함께 수학여행 다녀와서
편하고 좋았어요.
++
저만 편했는지도 모르겠네요.
다시한번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