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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Aug 09. 2018

'사라'의 매력

2018.8.9.



"Sarah face dirty"


"Sarah face dirty"


 진이가 사라에게 말했다.

나는 당황했다.


 그때 상황은 이랬다. 진이 현이가 나의 교실에 와 있었다. 사라가 앞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 반 옆 화장실에 다녀오다 아이들 소리가 들려봤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사라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같이 놀고 싶다고 조르면 놀아주는 어른이라는 걸. 아이들이 조르는 통에 사라는 교실에 있던 축구공을 들었다. 서로에게 공을 차서 상대가 공을 놓치면 점수를 따는 게임이라고 사라가 설명을 해줬다. 한창 축구 교실을 손꼽아 기다리는 현이는 이 간단한 교실 공놀이에 열광했고 몸을 아낌없이 날려가며 공을 받았다. 공놀이는 진이 놀이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사라와 현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점수도 세고 공을 주워줬다.


 나는 사라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일을 했다. 그러다 얼핏 본 현이의 얼굴이 정말 거뭇거뭇. 아마 더러워진 손으로 얼굴을 문댄 것 같았다. 내가 현이에게 말했다.


"현, Your face is dirty. You need to wash"


그 말을 듣고 진이가 외쳤다.


"Sarah face dirty!"


 약간의 정적. 어쩌면 나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당황스럽고 미안했다. 조용히 진이를 불렀다. 너 사라한테 왜 더티라고 말했어.라고 묻자 진이는 사라 얼굴을 검애서 그랬다고 했다. 앞뒤 정황상 진이는 아마도 더티를 블랙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진아. 더티는 더럽다는 거야. 그러니까 사라 얼굴색을 말하고 싶으면 더티가 아니라 다크 브라운이라고 해야지.


 미안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에게 사라가 다가와 말했다. 진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앞뒤 맥락을 다 안다고 말했다.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진이가 몰라서 그런 거 다 아니까 걱정 말라고. 사라는 이런 사람이다. 눈치가 빠르고 상대를 배려해주는 사람. 사람 사이에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같은 한국말을 써도 대체 마음도 말도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표현하는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일전에 한 지인이 외국인과는 결혼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너무 불편할 것 같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동감할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통기 위해서는 서로를 위해주는 마음이 있다면 그 것으로 충분하다. 오히려 너무 잘 이해되는 한국말로 나를 외롭게 하는 사림을 그동안 숱하게 봐오지 않았던가. (여보, 그게 여보라는 것은 아니...) 언어라는 것은 정말이지 수단에 불과하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그녀의 장점


  그녀의 장점은 이것뿐이 아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이 몸에 베인 사라는 'Good listener'이다.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내용인지 종종 물어본다. 사실 상대방은 그렇게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건만 나는 또 엄청 열심히 설명해주고 꼭 영어로 찾아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말하는 순간에는 내가 말해주면 상대방이 호기심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어떤 마음속 불씨가 확 피어오른다. 이것도 일종의 병)  어찌 되었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좋아하는지 관심을 적당한 선 안에서 준다. 누군가가 나의 사소한 부분에 관심을 갖아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렇게 관심을 좋아한다고 대놓고 밝히기 좀 망설여진다. 어쩐지 내가 약간 애정결핍이나 아니면 관종 성향이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그렇다고 너무 지나치면 나도 또한 한발 물러났을 터, 적당한 선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서 내가 사라의 관심을 좋아하나 보다. 나는 사라의 관심과 그에 비롯한 대화가 참 좋았다.


  무엇보다 나를 매번 감탄하게 만들었던 점은 아이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아이들에게 쓴다. 그 점이 참 굉장하다. 아이들과 그냥 노는 것을 잘하는 사람. 영화배우 차태현이 아이들과 몸으로 몇 시간을 놀아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달리 보였다. 아이들과 놀아주려면 (특히 정말 어린아이들) 정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이들 수준에 맞춰서 요구를 다 들어주며 난 도무지 재미가 1도 없지만 아이가 재밌어한다면 기꺼이 그것을 반복하며 놀아준다는 것은 내 새끼라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근데 사라는 그것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방학 때 자기 책상에서만 있어도 될 것을 도서관이나 돌봄 교실 아이들과 함께 보드게임 같은 활동을 하며 보내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과 놀거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한다. 필시 사라의 DNA에는 분명 '교사'나 '좋은 엄마'와 같은 유전자가 있음에 틀림없다.



 이런 사라가 이번 달에 영국으로 돌아간다. 이건 우리 가족에게 정말 서운한 일이다. 특히 진이가 사라를 잘 따르고 좋아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사라 선생님을 보고 싶어 했다. 사라를 만나면 에 앉아 있어도 되는지 항상 물었다. 나는 사라를 귀찮게 할까 봐 진이를 좀 자제를 시켰지만, 결국 진이는 사라 선생님 옆에 바퀴 의자를 밀어 넣고 자리를 꿰차 앉아있곤 했다. 그런 진이가 싫지는 않았는지 사라도 진이에게 적당히 할 것을 줘가며 자신의 일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진이와 함께 뭔가를 만들거나 색칠하곤 했다. 그렇게 완성된 미니북이 'Cloud Bread Book'인데 진이가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녀의 피부색에 관련된
또 하나의 이야기


 한 번은 재밌는 일이 있었다. 진이가 사라 선생님과 어울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 내 얼굴도 사라처럼 브라운이면 좋겠어"


"왜?"


"사라가 너무 예뻐서"


실제로 사라는 미인이긴 한데, 아이 눈에 사라의 피부색도 덩달아 매력적으로 보였나 보다. 나도 가끔 그 피부색에 연핑크 티셔츠가 색다른 조화를 이루며 멋진 분위기를 낸다는 것이 신기했었다. (한 가지 더, 동양인에게는 없는 볼륨까지 더해져서) 나는 진이에게 피부색은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설명해줬었다. (사실 진이 얼굴이 별로 뽀얀 편이 아니라 속으로 '지금 네 피부색이라 별 차이도 없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려다 참았었다.)



써 놓고 보니 현이와 진이와 잘 놀아줘서 좋다고 하는 것 같아서 어쩐지 좀 머쓱하다. 하지만 사라의 장점은 이 밖에도 수두룩하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처럼 학교에서 그녀에 대한 미담이 자주 들려온다. 내 학생들도 '친절하고 상냥한' 사라 선생님을 무척 좋아한다. 학교에서 원어민 교사가 칭찬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기에 더욱 대단하다. (내 경우엔 원어민 교사가 존재감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아이들을 대하는 나이스한 태도를 보면 타성에 젖은 내 행동을 가끔 반성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좀 생긴다.



책을 돌려줄 때 즈음,
그녀와 이별이다.


사라가 최근에 빌려준 소설

'How to be good'.

(제목마저도 그녀랑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흑인 공주는 진이가 지난 주 친척집에서 가져온 종이 인형이다.거실에서 굴러다녀 내가 주워서 책갈피로 쓰고 있다.



제목만 보면 처세술 비슷한 실용서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권태기에 빠진 부부에게 일어난 명랑한 이야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 주인공 1인칭 시점' 소설이라 더 잘 읽힌다.


책을 다 읽을 때 즈음 사라와 커피 한 잔 하기로 했다.

그 커피 타임이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좀 마음이 냉냉해진다.


이 나이가 돼서도...

이별이란 녀석은 매번 좀 씁쓸하다.    




+


사라 영국으로 잘 가.

가서도 소식 가끔 전해줘.

카카오톡이 제일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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