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숑로제 Jan 17. 2020

소재가 신선한 소설들

2020.1.17.



 

별생각 없이 경험했던 것이 작품 속에 있으면 신기하다. 

어벤저스에서 한국 대사가 나오면 와하는 것처럼. 

요즘 읽은 소설이 그렇다.


내 유년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던 것들.

그 누구도 하늘의 색을 보고

'하늘은 왜 파란색일까요, 핑크색이 아니라?'

라고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러게.... 왜 파란색이지?'라고 할만한 

소재와 내용들로 가득하다.


대학시절에 과외했던 남자애가

나한테 스윽 내밀면서 보라고 했던 편지.

한 남학생을 사모하는 한 남학생이 보낸 연애편지였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 자리에 누가 잘못 놓고 갔다면서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자기가 갖고 있다고 했다.

발신자, 수신자도 없는 그 편지를 읽으면서

'헐 별일이네'하고 그냥 수업을 했었다.


근데 사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도 있었다.

여자가 여자 좋아하는 거. 

너무 남자처럼 잘생긴 여자애가 

남자처럼 커트 머리를 하고 

마치 여장을 해서 어색한 미소년처럼 배시시 웃던 애들이 있었다.

그 주변엔 행성처럼 절친인지 팬인지 여친인지 헷갈리던 아이들이 맴돌았고.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항구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읽고,

문득 그 아이들은 어떻게 살까 하고 궁금해졌다.


결혼해서 그냥 아이 낳고 사는 아이도 있겠지.

어쩌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레즈비언으로 사는 사람도 있겠지

아직 사회에서 용인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니까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독신으로 산다고 하며 살 수도 있고.

(동성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친하게 지내는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감정들도

'레이디'라는 단편에 정말 잘 실려있다.)


혹시 학창 시절 소위 좀 까진 애들은 집을 나가서 뭘 했나.

가 궁금하다면 아이유가 인생 책이라고 꼽았던 '최선의 삶'을 권하고 싶다.

학교마다 항상 가출했다는 애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쟤네 문제아네 문제아....

그러면서 그냥 넘겼던 그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맹랑한 대범함이 나왔을까.

그리고 나가서 뭘 하고 돌아다녔을까.

난 범생이고 학원 가기 바빴던 아이라서 몰랐던 그 아이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 시절 분명 존재했었을 것 같은 그런 삶들.


'피구왕 서영'에서는 제목처럼 '피구'하는 모습이 나온다.

(사실 이 소설 말고도 학창시설 회상에 피구가 자주 등장)

나도 했었고 지금도 자주 하는 그 피구를

도망치는 자와 맞추려는 자의 심경까지 

자세히 나누어 밀도 있게 살펴보고 나면,

'하아... 피구가 이렇게 야만적인 놀이였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늘 읽기 시작한 소설은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라는 소설.

요약하면 현대판 지옥도이다.

불구덩이도, 죽음도, 악한 자도 없고,

한 회사원의 회색빛 일상을 담아냈는데, 

그냥 지옥으로 느껴진다.

너무 평범한 모습이라서 

더 소름 끼치고 무섭다.


쓰다 보니 좀 길어졌는데,

사실 집에서 책 읽다 보면 맞은편에서

경제서적을 읽는 신랑 눈치가 보인다.

가끔 지나가는 말로 

"이런 책 읽을 때가 아니야, 여보" 

라고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긴 하는데...

자기 계발서나 경제서는 세상 재미가 없다.



+

그나저나 그림에 글씨가 마음에 안 드는데,

쓰고 지워도 똑같다.



++

여보.

나 그냥 살던 대로 살면 안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