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키우며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다.
우리 아기 똥에 밥 비벼 먹고 싶다
내 팔뚝 만한 아가가 하품을 할 때엔 코를 잽싸게 집어넣곤 했다.
푹 끓인 미역국 냄새 같기도 하고 밥솥에서 김 빠질 때 맡던 밥 냄새도 섞여있었다.
젖 먹일 때 아기가 싼 똥 냄새는 무척 독특하다.
포스터 칼라 느낌의 선명한 황토색에 시큼하면서도 고소한 향이 난다.
한창 젖 먹일 때, 특히 수유 직후에 아이가 그렇게도 예뻤다.
아기 똥에 밥 비벼 먹고 싶다 하며 신랑의 밥맛을 가시게 할 때는 언제고,
사실 나의 짜증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지금 끓여낸 라면에 김치까지 딱 세팅을 했던,
뜨거운 샤워 물로 몸을 데우며 기분 좋게 눈을 감고 있던,
간만의 외식, 석쇠에 스테이크가 '치이익'하며 소리를 내며 방금 나왔던 말던,
아기는 내 사정 따위는 절대 봐주지 않았다.
(쓰다 보니 내가 먹을 때 가장 예민했다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 나란 엄마.. 에혀.)
좋은 엄마가 되어보고자 읽었던 육아서는 온통 파스텔 빛으로 가득했다.
(그중 푸름이 엄마가 쓴 책이 단연 최고였음)
실제로 아이와 함께하는 나의 일상은 신호등 색, 세 가지가 전부였다.
상태 양호한 초록,
뭔가 마음속에 쌓이고 있는 노랑,
그리고 분노의 빨강이었다.
둘째를 아기띠로 매고, 첫째 손을 잡고 길을 가다가.
연세 드신 분들이 무심코 던진 말 중에 내가 정말 듣기 싫었던 말이 있는데,
"그래도 그때가 참 좋을 때'라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힘든데, 어찌 그렇게 심한 말을'하며 속으로 진저리를 치곤 했다.
아이를 키우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다양하게 마주하게 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도 울고 갈 수십 가지의 감정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한다.
신호등의 불빛들은 대중없이 초록에서 빨강으로, 하루 종일 노랑 이기도 했고, 빨강에서 머물러 있기도 했다.
특히 나처럼 내성적이고 잡념이 많은 경우에는 육아가 더 힘들 수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 시작한 지 5년밖에 안되었다.
각종 육아서에 좋은 정보가 가득하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나처럼 변덕이 죽 끓고,
딱히 어려움 없이 자라서 나 밖에 모르고,
나 잘난 맛에 살다가 아이 키우면서 자존감이 확 떨어졌거나
내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이러지 하며 자책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글이 조금 위안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는 느낌은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만 미친 것 같은 건 아니다' 겠지만)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오시면 제가 그동안 써온 글들도 보실 수 있어요.
평범한 아줌마의 소소한 일상의 기록일 뿐이지만,
그래서 당신의 공감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