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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May 20. 2016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2016. 5. 20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강남역 묻지 마 사건도 그렇고, 우연히 신랑의 학교 후배 중 하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나랑 동갑이고 어린 딸이 있는데 어찌 그렇게) 죽음의 흔적들이 잔뜩 드리워진 하루였다. 남의 불행을 보고 나의 안위를 찾는 것만큼 옹졸하고 본능적인 감정도 없으리라. 저번에 가습기 사건 글을 쓰고서 다시는 일기장에 무거운 소재의 글을 다시는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최저 댓글 수를 기록함. 나름 반응을 의식하는 작가입니다) 일을 하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아직 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을 거다. 자다가 새벽에 깼는데, 가만히 누워있는 가족들을 보고 어쩐지 무서워졌다.  '설마 다들 죽은 건 아니겠지?' 소리 내어 울기는 뭐하고 그냥 차분히 아빠의 코에 얼굴을 들이댔다. 숨결이 느껴졌다. 엄마는 코 고는 소리가 확실해서 확인할 필요가 없었고 동생들의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잠시 응시했었다. 그리곤 조금 마음이 놓여 잠을 청했던 아득하지만 또렷한 기억.




8만 년이 지나면,
너도 나도 먼지가 되어있겠지


나의 그런 시기를 떠올리게 된 것은 아들 녀석 때문이다. 6살 아들이 요즘 동화 속이나 위인전에 나오는 죽음에 예민하게 굴곤 한다. 특히 위인전의 결말은 항상 그 사람이 생을 어떻게 마감했는지로 마무리가 되어 골머리를 썩는다. 말을 안 해주기도 그렇다고 그대로 읽기도 애매한 상황이지만, 죽음이란 어차피 당면해야 하는 '인간의 순리'이라는 생각에 지금은 읽어주는 편이다. (예전이는 너무 울어서 일부러 한동안 위인전을 일부러 책장 맨 윗칸으로 옮겨두었다)


"엄마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거야?"

"사람이 늙고 병들면 죽는 거야. 모든 생물이 그래."

"그럼 할아버지도 늙었으니까 죽어?"

"아니 할아버지는 젊으신 편이야"

"할아버지는 늙었잖아. 왜 엄마 거짓말해!"

"어쨌든 할아버지는 한참 오래 사실 거야" (진땀)


이런 식의 대화가 챗바퀴처럼 돌게 되면 나도 모르게 머쓱해져서 대화를 급히 마무리한다.


우주에 관련된 책을 읽는 중이었다. '보이저호'에 지구에 관련된 정보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외계인들에게 보내고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 보이저 호가 우주에 메시지를 다 쏘고 지구에 돌아오려면 8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엄마 8만 년만 지나면 다시 와? 그럼 그 우주선 볼 수 있어?"

8만 년이 지나면, 너도 나도 없어. 이 세상에 없는 거야. 하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너와 내가 다 먼지로 되어있을 텐데, 새삼스럽게 괜히 허망했다. 당연한 사실인데 막상 피부에 와 닿는 순간에는 기분이 묘해진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어릴 적에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계속 마음속에 묻어두는 연습을 끊이없이 해왔는지도 모른다. 어린 아들이 지금은 조금 무뎌진 것처럼 말이다. 막상 꺼내어보면 무섭고 싫은 감정에 계속 모른 척 뒤로 덮어두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예전에 티브이에서 죽음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EBS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많이 떠올린 실험군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양보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결과가 인상적이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죽음'은 삶을 좀 더 귀중하게 느끼게 만든다. 죽음 앞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이 기적이다. 건강한 가족들, 무사히 직장에 모이는 동료들,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일상들이 참 놀랍고 감사하다. (갑자기 예배당에 온 기분) 죽음을 '공포'가 아닌 '삶의 소중함'으로 기억한다면 일상이 조금 더 너그러워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강남 묻지 마 사건을 접하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이 험한 세상 우리 아이들이 그저 오래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 아들 딸. 엄마는 바라는 거 없어. 오래오래 살아야 돼"

"응 알았어."


말하고 나니 더욱더 애틋해지는 마음에 한술 더 떠본다.


"너희는 엄마한테 기적이야"

"내가 왜 기저귀야?"

"아니... 기적이라고. 기적"

"내가 왜 기저귀냐고..."

"아니..... 그게 아니라.. 기적은.."



정말 오늘 하루도 기적 같은 날이다.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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