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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May 23. 2016

인생 2막을 시작하신 부모님

2016. 5.22.





내 인생 2막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일요일 오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중국 가서 잠깐 바람 좀 쐬고 오늘 아침에 도착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평소 맘 내키면 소리 소문도 없이 여행을 훌쩍 다녀오는 스타일이심) 애들 옷도 줄 겸 점심 먹으러 잠깐 놀러 오라고 했다. 콧바람이 잔뜩 들어간 엄마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엄마 아빠는 요즘 제 2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하신다. 그 이유는 내 여동생 식구가 얼마 전 분가를 했기 때분이다 


 사건의 발단은 3년 전 여동생이 큰 애를 출산하면서 시작된다. 제왕절개 날짜를 며칠 앞두고, 내 여동생은 멀쩡했던 신혼집을 신속하게 처분하고 부모님 집으로 밀고 들어왔다. 일로 바쁜 자기 대신 육아를 든든하게 책임져 줄 적임자는 친정엄마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 당시 주말부부). 냉장고와 같이 겹치는 가전제품은 할아버지 집 창고에 보관을 하고 아직 2년도 채 못 넘긴 신혼 가구들은 빈 공간에 욱여넣는 식으로 급하게 이사는 마무리되었다. 평소 인테리어에 무척 열을 올리셨던 엄마 입장에서 각 방에 빈 벽을 찾을 수 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살림살이는 견디기 힘든 부분이었다. 게다가 주중 티타임은 물론이고 주말에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새벽 두세 시까지 '주꾸미 파티, 급벙개, 스포츠 댄스 모임'등 각가지 명목으로 사교생활을 즐기시는 부모님에겐 더욱더 힘들었다. 자식 위하는 마음으로 당분간만 참자고 버틴 8개월째만에 내 여동생은 보란 듯이 둘째를 임신했다. 내 여동생이 둘째를 출산 한 날, 조여사님은 병원에 누워있는 내 여동생과 갓 태어난 외손녀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 한동안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 나 이제 앞으로 힘 들어서 어떻게 해. 이렇게는 못 살아. 아흑..."


  그렇다. 조여사님은 끝이 보이지 않는 육아의 망망대해에서 겁을 먹고 울고 있었다. 퉁퉁 빨갛게 부어오른 외커풀 눈에 도톰한 입술도 더욱더 부루퉁해 보였다. 나는 아이의 탄생에 흘리는 할머니의 눈물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딱하기도 해서 할 말을 잃었었다. 





엄마 아빠는 방금 이사를 온 신혼부부 같았다

  그런데 여동생의 큰애가 만 3살이 되는 이번 달에 드디어 분가를 했다. 친정에 놀러 가 보니 여백의 미가 한껏 돋보이는 가구 배치와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가구들이 보기 좋게 놓여있었다. 옷으로만 꽉 찼던 방이 아빠의 서재로 꾸며져 있었고, 여동생이 쓰던 침실 방은 더블 침대와 침실 탁자만 단출하게 놓여 있어 게스트룸 느낌이 물씬 났다. 아이들 장난 감방으로 썼던 방은 소파만 두 개, 그리고 장식장에 각 종 도자기들만 전시되어 있어서 마치 손님 대기실 같다. 거실은 깔끔해진 것은 물론이고, 창고처럼 잔뜩 짐만 쌓아놨던 가장 큰 방은 엄마만의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래 봤자 죄다 성당 활동 관련된 물건들) "얘, 우리 집 이제 깔끔하지?" 하고 물어보는데, 내가 괜히 울컥했다. 아빠는 얼마 전 흰색 페인트를 한 통 사서 간간히 벗겨지거나 패인 곳에 보수작업을 하신다고 한다. 엄마는 자꾸 불러 내가 이미 다 본 방을 재차 설명했다. "싹 치웠어"라는 말을 5분에 한번 꼴로 계속 들었던 오후였다.


엄마 아빠는 방금 이사를 온 신혼부부처럼 들떠 있었다.

정성껏 힘들게 고생하며 손주들을 돌봐준 만큼, 그 해방감도 대단한 모양이다.

내 자식들 중 하나가 내 여동생처럼 아이를 낳자마자 우리 집에 쳐들어오는 상상을 잠시 해봤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이민이나 가야겠다.




   

+

참 내가 중요한 내용을 빼먹었는데,

내 여동생이 이사한 곳은 우리 부모님 아파트 바로 앞동이다. 

걸어서 5분, 뛰면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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