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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n 17. 2016

우리 딸의 '거절하는 방법'

2016.6.16.





   엄마는 나를 8월에 낳고 다음 해 12월에 내 동생을 낳았다. 4킬로 넘는 우량아를 두 번씩이나 자연 분만하고 6개월 동안 걷지를 못했다. 할 수 없이 두 돌도 채 안된 나는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몇 달 만에 다시 돌아온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한참을 울었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여자 애 얼굴을 이렇게 태우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내 얼굴은 어디 가서 밭이라도 매고 온 것 마냥 까맸다고 한다. 내가 유독 까맣게 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외할머니는 아침을 먹고 나를 포대기로 엎어 동네 마실을 항상 다녔는데, 평상 위에서 할머니들이 가락을 뽑기라도 하면 내가 그렇게 춤을 잘 췄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손녀 재롱도 뽐낼 겸 시골 뙤약볕에서 나를 들쳐 엎고 여기저기 많이 다니신 모양이다. 


   지금은 어디 가서 주목받는 것이 참 부담스럽다. 그래도 어릴 적 얘기를 들으면 나한테 저런 면이 있나 싶어 놀랍다. (내 안에 '보아'있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내 성격을 아이를 통해서 보게 된다. 예를 들면 4살짜리 딸아이가 별것도 아닌 일에 갑자기 삐지거나 울면 신랑은 괜히 나를 보며 쿡쿡 찌른다. '너 닮아서 그래' 하면서...(여자의 본능이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해봅니다만) 난 그래도 어릴 때 좀 명랑했던 것 같은데, 우리 애들은 얌전해도 너무 얌전하다. 나와 둘이 있을 때는 노래도 부르고 춤추고 말도 잘하는데, 나를 제외한 제삼자가 끼면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애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동영상을 찍어 자랑을 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조카는 노래시키면 거침없이 잘도 불러 분위기도 띄우는데 우리 집 애들 한텐 어림도 없는 소리다.

아무래도 신랑의 전매특허 '수줍은 유전자'가 우성인 모양이다. 


   딸아이가 감기에 된통 걸려 하루 종일 집에 같이 있었다. 예고도 없이 친정 부모님이 불쑥 오셨다. 엄마와 단둘이 심심했는지 녀석이 아주 신이 났다. 평소와 다르게 할머니한테 말도 많이 하고 할아버지한테 잘 웃어주고 신났다. 외할머니는 항상 수줍어하던 손녀가 말을 많이 하니 이때다 싶었나 보다. 


"우리 진이 뭐 먹고 싶어? 할머니가 다 사줄게"


"과자"


"겨우 과자? 또 먹고 싶은 거 없어?"


"사탕" 


"그래 할머니가 다 사줄게. 근데... 엄마가 찍은 동영상 보니까. 너 춤을 엄청 잘 추던데, 할머니 한 번만 보여줘 응?"


"......."


"에이. 우리 이쁜 유진이 할머니가 사탕 꼭 사줄게. 보여줘"


"......."


옆에서 보던 외할아버지도 거든다.


"그래 진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은데. 한 번만 춰봐. 이따 사탕 사준다잖아."


그러자  

계속 난처해하던 우리 딸이 하는 말.


"사탕은 몸에 안 좋은 건데... 먹으면 안 되는데"




결국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오늘도 역시 손녀의 공연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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