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28.
산해 진미가 다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라도 '뷔페'면 사양하고 싶다. 그 이유는 내 성격 때문이다. 일단 가면 맛있어 보이는 것들은 하나씩 다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평소에 잘 못 먹는 킹크랩이나 캐비어 같은 음식 나오는 급 레스토랑으로 갈수록 아주 고역이다. 그럼 누군가가 적당히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시크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게 본능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주 저렴한 뷔페식당은 먹을 게 없어서 싫고, 음식이 맛있으면 배가 터질 지경이 되어 버린다. 한 번은 정말 단단히 결심을 하고 딱 적당히 먹고 나왔는데 돈이 너무 아까웠다. 나에게 기회가 무한으로 열려있는 음식들이 곳곳에서 널려있는 것이 정말 부담스럽다. (그냥 따지지 말고 적게 먹으면 될 것을... 쓰고 보니 난 피곤한 성격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사는 것도 비슷하다. 클릭 몇 번이면 들어갈 수 있는 온라인 몰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구하기란 너무 어렵다. 예쁜 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옷들이 있어서다. 괜찮은 가격에 맘에 드는 옷이 많을수록 더 혼란스럽다. 한정된 공간에서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건 자신 있는데 무한대로 있는 온라인 매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란 어렵다. 그럼 적당한 옷을 사면 되지 않냐고 말하면, 그럴 수 없다. 단 돈 만원 짜리라도, 집에서 입을 것이라도, 사는 순간만큼은 마음에 아주 꼭 들어야 사는 게 옷이니까. (과연 피곤한 성격)
지난 주말에 신랑과 단둘이 데이트를 했다. (아이는 시댁에 맡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자주 놀러 가던 시내로 오랜만에 가보았더니 그곳은 여전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다 손금처럼 꿰고 있는 지하상가들도 그대로고, 유명한 빵집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자주 가던 식당에서 자주 먹던 왕돈가스와 필라프를 시키곤 배불리 먹었다. 그 옛날 살 거 없어도 한번씩 들리던 '문구 펜시점'에서 어슬렁 거리며 구경했다.
ZARA나 유니클로 같은 매장도 있었지만 학생 때 자주 가던 보세 옷 가게로 갔다. 가격도 저렴하지만 어느 보세 가게나 옷 스타일은 비슷비슷해서 고르기 편하다. 단돈 5만 원에 위아래 새 옷으로 쫙 빼입고 내친김에 신발도 사보자 했다. 지하상가 신발가게에서 가니 아저씨가 요즘에 이런 게 인기라며 몇 가지 골라준다. 나는 그중에 맘에 드는 거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내 입이 기억하고 있는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저씨 좀 깎아주세요"
값을 흥정할 수 있는 신발을 사본 게 얼마만인지. 예전에는 뻔뻔하게도 잘 나왔던 그 말이 그 날은 참 낯설었다. 현금이면 2만 원만 달라는 말에 룰루 라라 바로 신고 또다시 시내를 활보했다. 양 손에 내가 입던 옷과 신발이 든 쇼핑백을 가득 들고...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가 쇼핑을 마치고 우아하게 변신한 것처럼 제대로 신바람이 났다. 쇼윈도에 언뜻 비치는 내 모습이 새롭고 풋풋했다(고 하면 실례일까요.)
내가 그 날 산 셔츠와 바지, 신발을 인터넷 쇼핑몰로 샀다면 어땠을까. 클릭하며 눈 빠지게 고르고, 상품 후기 읽어보고, 카드 결제하고, 배송까지. 길고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맘만 먹으면 뭐든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뭐든 나가서 사 와야 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선택의 폭이 좁을 수는 있겠지만, 방금 산 옷과 신발을 신고 신바람 나게 걷는 기분까지는 배송이 안되니 말이다.
매일같이 스마트폰을 쓰고 종종 해외직구를 하지만, 어쩌면 나는 뼛속 깊이 아날로그적인 인간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