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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l 02. 2016

비오는 날 유치원에서

2016.7.1.





녀석이 원래 좀 예민한 건 알고 있었다.


저번 주 아들이 다른 사람이 입던 옷은 입기 싫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작년에 옆집에서 준 옷이 새 것 같아서 새로 산 거라고 한 적이 있었다. (아이를 위한 엄마의 하얀 거짓말)

하지만 그 당시 5 살이었던 아들은 옷에 코를 묻고,

"흐음. 옆집 냄새"

하며 나에게 거짓말 치지 말란 듯이 비웃었다.

(사실 옆집이 주는 옷에는 아주 맘에 드는 섬유유연제 향이 강하게 나곤 했었다)


올해 여름옷으로 교체한 이후 어떻게 새로 산 바지 2벌만 용케 알고 그것만 입으려고 한다.

물려받은 옷도 좀 입어보라고 채근을 하다가 워낙 아들이 완강해서 포기했다.

돈이 궁한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했나 싶었다. 쇼핑만큼은 추진력이 넘치는 관계로 저번 주 백화점 브랜드 바지를 4벌이나 너끈하게 샀다.

 

그런데 문제는 녀석이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신상 바지 4개를 모두 거부한다.

한 번만 입어보라고 해도 소용없다. 딱 좋아하는 바지 2벌만 고집한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어제 입던 바지를 입겠다며 세탁바구니에서 꺼내오는 바람에

기어이 엄마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피곤한 비 오는 오후,
그리고 아이의 하원 시간

아침부터 한바탕 했더니 피곤했다.

게다가 이번 주는 신랑이 스터디 릴레이 중이라서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어제오늘 연타로 아침에 옷으로 야단을 치고 보내고 나니 마음도 안 좋다.

비가 와서 그런지 마음도 멜랑꼴리.

신랑일 도와주러 어김없이 나가 있는 내 모습이 오늘따라 억울하다.

(내 인생은 왜 항상 신랑 위주인가... 서글픈 여자의 일생. 이것도 내 선택인걸 머 누굴 탓하나)


곧 아이들 하원 시간에 다가왔다.

비가 오전보다 좀 덜 오긴 했지만 그래도 추적추적.

우산이 딱 하나 있어서 집에 가서 우산을 가져와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유치원에서 집이 가까우니까)

결국 그냥 대충 빨리 가는 걸로. (언제 집에 또 들러 귀찮아)



내가 너무 무심한가



가는 길에 횡단보도에 아이 장화를 봉지에 넣어가는 엄마가 보인다.


'어머, 저건 오버다. 비 오면 애들이 신발도 좀 젖고 그런 거지 멀'


그렇게 쿨한 엄마인 척하고 유치원에 도착했는데,

장화를 들고 온 엄마도 꽤 보이고, 우비를 갖고 온 사람도 있다.

당연히 아이 우산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너무 신경 안 쓰는 엄마가 된 기분에 벌써부터 아이한테 미안하다.

아이 우산 정도는 챙겨 오는 거였다.

안 그래도 우리 아들 예민한데...


'다음엔 우산이라도 꼭 챙겨 와야지. 에효. 내가 너무 무심했네'


그렇게 자책하며 5분 남짓 기다리자 곧 아이가 나온다.


"현아. 유치원 재미있었어? 자! 엄마랑 우산 같이 쓰자."


미안한 마음에 우산을 아들 쪽으로 바짝 기울여 들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 나 우산 안 써도 되는데"


하며 비 맞겠다며 저만치 뛰어간다.


"야! 너 일로 안 와! 이거다 산성비야. 너 대머리 된다.

 이리와. 안 와? 엄마 말 정말 안 들을 거야?"


정말이지 우산에 장화까지 가져왔으면

또 한번 뒷목 잡을 뻔했다.


그냥 하던 대로 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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