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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l 06. 2016

부부싸움의 전말

2016. 7.6.



불륜 영화 ,
그리고 사소한 말다툼


  

일요일 밤,

시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창 수다에 물이 오른 내가 말했다.


"오빠, 나 불륜의 핵심 코드를 알아냈어"


"무슨 소리야?"


"얼마 전에 오빠한테 다운받아 달라고 했던 영화. 그거 보고 알았어"


"뭐, 전도연이랑 공유 나오는 거? 그게 그런 영화였어, 불륜?"


"응, 그런 영화야.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불륜하는 사람이 상대방이 잘생긴 공유라서 마음이 움직이는 게 아냐"


"...." (신랑은 이런 심란한 주제의 드라마건 영화건 딱 싫어함)


"중요한 건 '자신을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마음' 인 거지."


"무슨 말이야?" (무관심한 말투)


"아니... 그러니까 괜찮은 누군가가 나를 간절히 원한다는 게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야" (조금 당황)


"난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완전 당황) 내 말은... 오빠가 나를... 간절히 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뭐 가족끼리 힘들 수도 있지만..."


"오늘도 하루 종일 같이 있었잖아. 같이 쇼핑도 하고.... 그걸로 모자라?"


"그게 다 날 위해 봉사한 거란 말이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

.

.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게 됨)



부부싸움의 전말


주말을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거 좋아한다. 항상 쉼 없이 떠드는 건 아니지만, 꼭 말이 술술 잘 나오는 날이 있다. 말이 잘 나오는 거에 걸맞게 옆에 있는 사람의 반응도 괜찮을 때 더 흥이 붙는다.(내 안의 0.0005%는 개그맨의 피가 분명) 그날 차 안에서 내 유머가 좀 먹히는 날이었다. 예를 들어, 운전하던 신랑이 애들이 잠들 거 같으니까 카시트를 비스듬하게 조정해주라고 할 때에도


 "아, 내가 제가 조수석에 앉아있는 거였죠? 조. 수. 석! 네 해야죠. 알겠습니다. 아 허리야 "


라고 살짝 비꼬는 농담을 했을 때에도 반응이 괜찮았다. 오면서 이런저런 시답잖은 내 수다들은 몇 시간 남지 않은 주말에 대한 우울함을 잊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집에 거의 다 와서 일이 터졌다.


최근에 '남과 여'라는 공유와 전도연이 나온 영화를 봤다. 그냥 리모컨 누르다 나오니까 스쳐 지나가듯 우연히 본 게 아니라. 신랑에게 한 1주일 동안 다운받아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해서 파일을 받았다. 젖은 휴지처럼 아주 폭 잠겨버리고 싶은 멜로를 검색하던 중에, 불륜에 믿고 보는 전도연 언니가 나온다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극 중 공유가 시도 때도 없이 전도연을 찾아오는 모습에 내 마음이 콩닥거렸다. (신랑도 연애할 땐 갑자기 밤에 찾아와서 얼굴만 보고 가고 그랬는데, 아 옛날.) 내 주제에 평소 공유가 잘 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더 영화가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공유 팬 분들께 정말 죄송. 저의 개인의 취향입니다. 공유는 누군가에겐 매력 넘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그냥 그런 사람의 구애가 더 현실에서 있을 법하니까. 만약에 공유가 아니라 조인성이나 원빈이었다면 영화가 좀 이상해질 거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가장 특별한 일주일" 같은 영화 제목이 나와야 옳다) 어찌 되었든 영화의 잔잔한 OST도 핀란드의 설경도 불륜을 짙고 세련되게 포장했다. 영화가 끝나고 OST를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할 정도로 영화가 괜찮았다. 그래 나는 거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그간 바쁜 신랑과 얘기할 틈이 없었던 내가 못다한 한을 풀듯 수다를 떨었으니, 결국 신랑이 싫어하는 심란한 영화 얘기를 꺼내고 만 것이다. (그런 주제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심란한 내용보다는 내 감상을 말할 참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를 딱 듣기 싫다는 웃음기 가신 반응에 갑자기 싸대기를 얼얼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신랑이 '넌 지금 이게 재미있냐?'라고 말하는 어느 영화의 잔인한 조폭 두목처럼 느껴졌다. 왜 그 옆에 항상 있지 않은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실실거리다가 한 대 맞는 녀석. 내가 딱 그 녀석 심정이었다. 심지어 '당신이 나를 간절히 원했으면 한다'는 고백 아닌 고백마저 어설프게 내뱉은 상황이었으니 당장 차 트렁크에 걸어 들어가 숨고 싶었다. 그런 무안과 창피함은 잠깐, 곧바로 그 신랑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정말 미웠다.



냉전에 임하는 나의 자세


일요일 밤 이후로 나는 온몸에 냉소가 무관심이란 아우라로 무장했다. 신랑이 나에게 하는 말은 튕겨 나갔다. 잠깐 앉아서 얘기 좀 해보자는 신랑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난 오빠가 낯설고 무서워. 나 기분 풀릴 때까지 말도 걸지마"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릴수록 사건은 재구성되고 더욱 나쁘게 느껴졌다. 원망도 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너무 화가 나면, 장문의 카톡을 신랑에게 보냈다. 내가 그날 얼마나 굴욕적이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신랑이 나쁜지 자세하게 써서 보냈다. 그래도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뭔가 창피함이 심하게 가시지 않은 기분이랄까.


 "언제까지 그럴 거야, 계속 말 안 할 거야?"


라는 그의 말은 마음을 더 싸늘하게 만들었다.




화해의 시간


  결국 이틀간의 냉전에 마침표를 찍은 건 신랑이었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연 것은 신랑이 내 마음을 헤아려줬을 때였다. 진심이 담긴 그 얼굴로 내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니 자기가 나빴던 것 같다고 말하자 내 마음은 사르르 녹았다. 한 쇼프로에서 "그랬구나"라는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는데, 그건 정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얼마나 무안하고 창피했을지 진심으로 알아주니 그걸로 족했다. 살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여자의 마음이란 별거 없다. (이 맴 하나 알아주는 것. 그게 전부임)


뻔하지만 꼭 필요한 화해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내가 도리어 신랑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신랑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이유로 나는 더 신랑을 많이 괴롭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긴 카톡으로, 나의 싸늘한 눈빛으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제스처, 그리고 가장 무서운 '침묵'. 갖은 방법으로 내가 얼마나 그날 속상했는지 열렬하게 표현했다. (나 정말 피곤한 여자 인정. 하지만 세상엔 피곤한 여자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안 비밀) 신랑이 잘못한 건 맞지만 좀 더 현명하게 단기전으로 끝내도 좋을 뻔했다.(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내 성격에 똑같을 것 같지만. 네.. 눈치챘다시피 지금은 상태 무지 좋습니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더 상처 주는 어리석은 짓이다. 다음엔 이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까 다소 분위기 심각했던 화해의 시간에

분위기상 내 허벅지를 몰래 꼬집어가며 웃음을 참아야 했던

신랑의 한마디가 있다.


" 여보가 말 안 하고 이렇게 하는 상황이 정말 괴로웠어.

알잖아, 나 이런 거에 무척 취약한 거...

여보가 원하는 간절한 사랑이 만들어진 것 같아"



흠...

그러고 보면, 이틀 동안의 냉전이 헛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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