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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l 22. 2016

미꾸라지 두마리 처치하기

2016.7.21.


웬 미꾸라지에요?


 참 오랜만에 보는 미꾸라지였다. 응당 아이스라테가 담겨 있어야 할 테이크 아웃 잔에 미꾸라지 두 마리라니. 한바탕 소동을 마친 듯 이미 삶의 의욕은 많이 없어 보였다. 잔에 머리를 슬쩍 비스듬히 대고 물 밖으로 살짝 입을 내놓고 뻐끔거린다. 무섭게 팔딱거리는 생명력이 탐나 그리도 사람들이 탕으로 해 먹건만, 어쩐지 녀석들은 보신용으로는 영 아닌 듯하다. 딸아이 어린이집 신발장 옆에 쭈그리고 앉아 쪼르륵 놓여 있는 미꾸라지 잔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딸아이 신발을 찾아 미리 꺼내놓고 아이를 기다렸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나오시며 말한다.               

"어머님 오셨어요? 아이 불러올게요"               


"선생님, 근데 웬 미꾸라지예요?"               

어림잡아 대여섯 개는 되어 보이는 잔에 시선을 둔 채 물었다.               


"아, 어머님. 오늘 여름 캠프에서 미꾸라지 관찰했어요"               


"그랬구나.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겠어요"               

라고 대답을 하는 순간이었다. 불현듯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테이크 아웃 잔에 아이들 이름 스티커가 보였다.               

'설마...'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어머님, 이거. 아이들 집에서 관찰하라고 두 마리씩 담아두었어요. 자, 여기요!"               

반달눈에 항상 웃는 얼굴인 사슴반 선생님께서 내 손에 테이크 아웃 잔을 쥐어주었다.               


"아.... 저기. 제가 워낙 마이나스 손이라. 하하. 화분도 뭐 제가 키우면... 하하.. 이거 가져가도... 그게.."

라고 어버버 횡설수설을 하는 사이에 선생님이 역시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미꾸라지를 볼 기회가 워낙 없으니까요. 가져가세요"               


선생님이 조금만 덜 상냥하셨다면,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웃지만 않으셨다면 내가 좀 더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을 텐데. 꿀렁꿀렁 대는 녀석들의 움직임이 얇은 플라스틱 잔으로 느껴졌다. 애들은 가져가자고 졸라대고, 뒤에서 아이를 찾으러 온 다른 엄마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결국 잔을 쥐고 일어났다. 선생님께서 큰 눈에 짙은 쌍꺼풀 눈을 깜빡이시며 친절한 조언도 잊지 않으셨다.               


"어머님. 원장님께서 음식물 쓰레기에 버려도 된다고... (하하하) 참고하세요"               



자꾸 신경쓰인다


  아이들이 혹시라도 엎을까 싶어 보조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손이 잘 안 닿는 곳에 두니 녀석들이 컵 쪽으로 손을 자꾸 뻗어 컵을 넘어뜨릴 것 같다. 그래 주방에 두는 건 아무래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야. 엎어지면 냄새도 날 텐데. 차라리 아이들 잘 볼 수 있는 곳에 두자. 마땅히 놓을 곳이 없어 아이들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티브이 앞에 두고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도 아니다 싶다. 엎어지면 가전제품을 망가뜨릴 수 있으니까. 집안 곳곳을 두리번거리다 결국 화장실 세면대 앞에 두니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녀석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틀 동안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내심 긴장이 됐다. 녀석들의 흰 배가 위를 향하고 있을까 봐 가까이 들여다본다. 오늘 미꾸라지 두 마리는 거의 포개어져서 잠을 자는 듯 움직임이 없었다. 입은 조금씩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걸 보니 아직 살아있긴 하다. 저 좁은 곳에 두 마리가 숨쉬기도 힘들어 보인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미꾸라지 두 마리를 보고 있자니 영 딱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토마토나 오이가 냉장고에서 썩어나간 적은 많지만, 동물이 죽어나가는 건 좀 다르다.               


  어항이 있는 이웃에게도 줘보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미꾸라지는 구피와 같은 귀엽고 깜찍한 물고기들을 다 잡아먹는다고 한다. 차라리 하천에 놓아주는 게 어떠냐는 제안에 솔깃하면서도 귀찮아졌다. 덥고 끈적거리는 날씨에 하천까지 가야 한다니 이 녀석들 때문에. 하지만 가야만 했다.                 




몇년전 금붕어를 해먹었던 아픈 기억

   몇 년 전 친구 둘이 집들이 선물이라며 어항과 금붕어를 사 온 적이 있다. 복주머니 모양의 아담한 어항에 자갈과 금붕어를 따로 포장해온 그녀들의 정성은 과히 감복할만했다. S대 수의학과 박사과정을 밟던 그녀에겐 이런 금붕어 몇 마리 관리하는 거야 아침에 머리 감는 수준의 노력이면 되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아이 둘 챙기며 내 머리 한번 감기도 일스런 상황이었다.


  선물 받은 지 며칠 안돼서 어항 벽에 이끼가 끼고 물에 부유물들이 떠다녔다. 물을 갈아줘야겠다 싶었다. 내 작전은 이랬다. 금붕어들은 물속에 있으려 할 테니 내가 살살 물을 따라 내고 새물을 넣어준다. 금붕어가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예상을 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방법이었다. 싱크대에 어항을 놓고 살짝 기울이자 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금붕어 한 마리가 팔딱 거리며 싱크대로 떨어졌고 개수대 거름망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꺄악~" 소리를 지르자 2살 4살이었던 아이들이 나에게 모여들었다. 거름망에서 파닥거리는 오렌지색 생명체를 두고 몇 분간 용기를 내보려 했지만 도저히 손으로 잡을 수 없었다. 내가 한 선택은 거름망을 살짝 빼서 거꾸로 세우고 물을 세개 트는 것이었다. 살짝 아랫배 부분이 찌릿하더니 진저리가 쳐졌다. 입꼬리를 잔뜩 아래로 내리고 머리를 좌우로 계속 흔들었다. 아이들은 왜 그러냐고 계속 물어대고 난 아무말 없이 머리를 좌우로 저어댔다.                  



미꾸라지를 놓아주기


  금붕어와 같은 일은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4시쯤 후끈한 날씨에 비장하게 테이크아웃잔을 들고 나섰다. 아이들은 미꾸라지를 보내고 싶지 않은 눈치다. 차안 컵홀더에 미꾸라지 잔을 끼우고 시동을 켰다. 근처 하천에 차을 세우고 일단 내렸다.                 


"엄마, 그냥 우리가 갖고 있으면 안 돼?"     


"야, 너라면 방안에 계속 갇혀있으면 좋겠냐"     


"아니..."     


"보내주자. 불쌍하잖아. 이렇게 두며 곧 죽어"     


"알았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파트 근처 하천은 산책용이 아니라서 들어가는 길이 없었다. 나무로 죄다 울타리 비슷하게 쳐놔서 들어가기도 어렵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나무가 좀 헐겁게 심어진 틈이 있길래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하천 쪽으로 내려갔다.




 아이들에게는 엄마 따라오지 말고 여기 서있으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천 쪽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은 풀도 없이 흙과 돌만 듬성등성있어 영 미끄럽다. 한 손에 쥔 미꾸라지 잔을 떨어뜨릴까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디뎠다. 결국 하천 근처에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물이 깨끗하다. 멀리 새떼들도 목욕 중이다. 미꾸라지야, 여기 살만한 동네인가보다. 여기에 놓아줄께.

                

"잘 가라!"          





  컵 안의 물과 미꾸라지를 휘릭 쏟아냈다. 한 마리는 어디론가 가버렸고 나머지 한 마리는 가만히 바닥에 잠자코 있다. 움직이는 걸 보고 가야지 싶어 쪼그리고 녀석을 계속 보았다. 바닥 색과 워낙 비슷해서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눈에 잔뜩 힘을 줬다. 뒤에서 아이들이 부른다.

                

"엄마!"     


"알았어. 갈게"               


  결국 바닥에 가만히 있던 미꾸라지에게 시선을 떼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내가 놓아준 미꾸라지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하천에서 신나게 헤엄치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근처에 보였던 새떼들의 먹이가 되었을지도. 테이크아웃 잔에 갇힌 미꾸라지처럼 숨쉬기도 힘들게 더웠던 7월의 오후였다.                          






+

애들이 가져오는 미술작품 몰래 갖다 버리는 것도 지치는 마당에

살아있는 미꾸라지라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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