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숑로제 Jul 27. 2016

편하게 살 팔자가 못된다.

2016.7.26.




아이들의 뜻깊은 방학을 위해 이모네 집으로 1박2일 캠프를 왔다. 우리집 애들은 먹을 것도 풍성하고 신기한 책도 많은 이모네 집을 굉장히 좋아한다. 더군다나 세련된 북유럽 스타일로 리모델링을 싹 마친 집의 쾌적함은 녀석들에게도 매력적인가보다.


  여동생집은 평일엔 항상 일해주시는 아줌마가 상주하신다. 아침 일찍 오셔서 식사준비, 정리, 청소, 다림질, 빨래등 온갖 살림을 도맡아 하신다. 그래서 행주를 직접 삶아 본적도 없는 동생의 집에  살림 9단의 냄새가 난다. 평일에 동생집에 온적은 없어서 아줌마도 처음 뵙고 인사를 드렸다.


  아침 먹고 바로 출발했지만 애들 좀 놀리니까 금방 점심 때다. 아줌마가 한 상 차려주신 장어구이를 거하게 먹고 일어났다. 아이들은 어울려 잘 놀길래 소파에 앉아 여유를 부려봤다. 베프 정은이가 읽어보라고 추천해준 사노요코의 '사는게 뭐라고'를 펼쳤다. '뭐야 할머니. 정말 골때리네' 하며 킥킥거리며 읽어나갔다. 그러다 책커버 바로 뒤에 적힌 저자 약력에 이미 몇 년전에 작고하셨다는 걸 알고선 괜히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그런데 사실 그 때문에 컨디션이 나빠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은 아줌마가 수박을 잘라 거실로 내왔을 때였다. 이 집에 들어오면서 몇시간째 손가락 까닥을 안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더니 몸이 한없이 축축 쳐졌다. 마치 늦은 일요일 오전 '더 이상 늦잠을 자면 허리가 아프고 머리가 아플 것 같아' 하는 상태로 누워있는 기분이랄까.


어제까지. 아니 오늘 아침까지 빨래 개고, 널고, 식탁치우고 설거지하고 집정리 하고를 무한 반복하던 하녀 생활에 리듬이 깨지면서 몸이 부적응 현상을 보이는 듯했다. 두통이 오고 속도 미식거릴 정도가 되었다. 눈도 괜히 쾡하니 침침하니 피곤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움직였다.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장난감을 치웠다.


"아이고, 그냥 둬요. 내가 하면 돼"


하루 종일 있는 듯 없는 듯 계속 바지런히 집안일을 하시던 아줌마 목소리가 별안간 들렸다. 그리고 내가 이내 대답했다.


"네..."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마음 상태는 '아줌마, 제발 제가 치우게 해주세요. 네?' 하고 통사정을 할 판국이었다. 그리고 묵묵히 거실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자 거짓말처럼 두통이 좀 가셨다.


난 당최 편하게 살 팔자는 못 되나보다.


작가의 이전글 주먹을 부르는 영화 관람 태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