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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l 23. 2016

주먹을 부르는 영화 관람 태도

2016.7.22.


누나 제발 쫌


이젠 10년도 지난 기억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영화관 불이 켜질 때였다. 남동생이 나를 슬쩍 보며 한마디 툭 던졌다.

               

"누나, 제발 쫌.... 응?"               


남동생과 나는 자칭 영화 마니아였다. 제 아무리 심란한 김기덕 영화라도 같이 보고 서로 말로 풀어내길 좋아했다. 그땐 아마 조인성의 '비열한 거리'를 보고 나왔을 때였을거다. 처음엔 무척 잔인하다는 말에 보기가 꺼려졌다. 하지만 남동생이 이미 본 영화지만 누나가 본다면 같이 봐준다는 의리를 보여준 이상 안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남동생은 뭔가 단단히 심기가 불편한 듯 극장 밖으로 나갔다.                


"야, 왜 그래?"               


"누나, 영화 좀 그냥 보면 안 돼?"               


"내가 뭘?"               


"아.... 쫌"               



내가 영화 볼 때 좀 이상한가?


  '내가 영화 볼 때 좀 이상한가?'하고 생각한 것은 그때 즈음부터다. 집에서 비디오를 주로 빌려보던 우리가 둘 다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극장에 들락거릴 때였다. 액션 영화나, 드라마, 코미디 영화를 볼 때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좀 잔인한 스릴러나 공포영화였다. 주인공이 살인마와 숨바꼭질을 하는 장면에선 LTE급 감정이입으로 인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효과음이 커지면서 놀라게 하는 장면이 나오면 본능적인 '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혹시라도 남자 친구에게 폭 안길만한 귀여운 애교 수준이라고 오해할까 봐 굳이 비유하자면 그 소리는 놀이동산에서 자이로드롭을 탈 때 내지르는 그것과 비슷하다. 영화감독이 의도한 깜짝 놀라는 장면에 이어 내 비명소리에 관객들이 한번 더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문화인이자 교양인으로서 나는 이런 장면에 나만의 대처법을 터득했다. 일단 영화를 보다 조금이라도 조마조마한 기색이 보이면 슬그머니 양 검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꽉 막고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것이다. 피가 낭자하는 소리가 너무 소름이 끼치기라도 하면 나지막한 소리로 숫자를 세었다. 영화에 몰입한 나머지 긴장이 극에 달하면 가슴이 다리에 닿을 정도로 잔뜩 숙이고 잔인한 장면이 지나길 기다렸다.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지나거나 화면의 빛이 바뀐 것 같으면 슬끔 보고 몸을 일으키곤 했다.          


나름 센스 넘치는 대처법이라 여겼건만 남동생에게는 그 모습이 못내 짜증이 났나 보다. 내가 다급하게 숙이고 있을 때면 나를 항상 일으키며 말했다.              

 

"(작은 소리로) 누나, 누나. 아무도 안 죽었어. 좀 일어나!"               


우리 나갈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의 할리우드 출연작 '닌자 어쌔신'같이 러닝타임 내내 사람을 찌르고 자르고 쪼개는 영화를 보러 갔을 때이다. 영화 보는 내내 귀 막고 숙이고 숫자 세고를 쉴 새 없이 반복하다 보면 육체적으로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더불어 심리상태도 매우 너덜너덜해지면서 나는 옆사람에게 틈틈이 속삭인다.            


"우리 나갈까? 계속 볼 수 있겠어?"               


   그러면 남동생이든 누구든 무척 짜증스러운 상태로 변해가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는데 그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동생이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볼 거면 같이 영화 보러 안 오겠다고 엄포를 놨을 때 나는 절대 기죽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나의 이런 비호감 습관을 인지한 이상 잘 보이고 싶은 사람과는  잔인하거나 무서운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신랑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도 소지섭과 장쯔이가 나왔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첫 영화로 골랐었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신랑과 나는 데이트 기간 중 극장에 갈 일이 별로 없었다. 아마 아이언맨과 같은 액션 영화 몇 편정도 본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결혼하고 영화 '아저씨'를 봤을 때부터 신랑은 이내 이상한 징후를 감지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던가 고개를 숙이며 귀를 막는 자세에 많이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늑대소년'을 볼 때 송중기가 심쿵 하게 등장하는 장면에 '오오아~' 하며 비명에 가까운 감탄을 토해냈을 때 신랑은 진심으로 창피했다고 나에게 두고두고 말했다. 그리고 엑스맨과 비슷한 영화라고 예상한 영화 '데드풀'이 생각보다 잔인한 통에 신랑에게 '나갈까?'를 연발하며 영화를 관람할 때였다. 신랑은 갑자기 싸늘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그래, 나가자 나가' 하며 정색을 했다. 많이 피곤하고 지쳐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회식후 '부산행'을 보러가기로 했다


  오늘 애들은 시댁에 맡기고 신랑과 직원들이랑 뷔페에서 회식을 했다. 식사 후 시간이 되는 사람들만 요즘 핫한 '부산행'을 보기로 했다. 나와 젊은 직원 두 명 이렇게 세명이 보러 가기로 하고 티켓팅도 해두었다. 다들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 며 회식을 마무리하던 분위기였다. 신랑이 말을 꺼낸다.               


"저기. 실장님(나)이랑 영화 보러 가기 전에 좀 말해둘 게 있는데. 영화 시작 전에 앞사람을 발로 차지 마시오. 휴대폰 금지 이런 에티켓 광고 나오잖아. 알지? 근데 저기 실장님이 'ooo(내 이름)처럼 하지 마시오'라는 말이 좀 추가돼야 될 정도니까. 마음에 준비는 좀 하고들 가. 어느 정도냐면.....(잔뜩 설명. 제길...)"               


명색이 실장인데 나름 창피한 마누라가 될 수 없었다. 좀비가 물고 뜯고 해도 나는 눈만 질끈 감고 비명을 삼켰다. 아주 점잖고 위신 있게 영화를 끝까지 얌전하게 보고 나니 묘한 성취감마저 든다. 옆사람으로 하여금 주먹을 부르는 내 영화 관람 태도는 내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영화를 보는 재미 하나를 잃어버린 허전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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