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散文集

by 초하책방




책을 펼치면 끝없는 지평선과 들판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강이 흘러들고 산이 날아와 쌓인다. 하얀 종이 위에 풍경들, 그 풍경 속에서 펑펑 눈이 내린다. 끝없이 하얀, 눈이 부시게 희부윰한 고요가 함께 부유한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기억들 사이 눈발이 날리는 풍경 속 눈 앞을 가리는 눈과 바람. 가야할 곳이 저 풍경 너머일텐데 아무리 책장(冊張)을 넘겨도 풍경 속의 길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당신이 남겨준 책갈피를 발견한다. 당신을 생각하면 고요 속에 떠오르는 기억들. 기억은 쌓이는 순서가 아니라 기억의 무게에 따라 각인된다. 삶의 한없는 무게와 반비례하는 순간들, 책갈피를 집어든 순간 당신과 걸었던 골목과 찻집들의 불이 켜지고 겨울의 빛이 곳곳에서 반짝인다. 나에게 겨울의 의미를 가르쳐준 당신, 내 삶의 틈과 틈 사이, 갈피를 만들어준 당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꽂혀있는 당신의 그림자, 그 겨울의 기억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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