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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하책방 Sep 25. 2022

이 가을 문장 둘

단상록(斷想錄)


雨從何來 風作何色
비는 어디에서 왔으며 바람은 어떤 빛깔인가





雪竇顯頌 雨從何來 風作何色 (설두현송 우종하래 풍작하색) - 설두현(雪竇顯)이 송하되 비는 어디에서 왔으며 바람은 어떤 빛깔인가*

『禪門三家拈頌集』券21 第857則


雨從何來 (우종하래) - 염송설화에서 운거가, 유우단공(劉禹端公)이 묻되 '비가 어디로부터 옵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단공(端公)의 묻는 곳으로부터 온다. 단공이 드디어 3배(拜)로 작례(作禮)했다. 환희하며 물러나면서 몇 걸음 행했는데 스님이 불러 이르되 단공, 공이 머리를 돌렸다. 스님이 이르되 물음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단공이 말이 없었다. 


風作何色(풍작하색) - 서선동평(西禪東平)이 관원과 앉은 차에 서선이 이르되 바람은 어떤 색을 짓는가. 관원이 말이 없었다. 서선이 도리어 중에게 묻자 중이 납의를 들어 일으키며 이르되 부중(府中)의 점포(店鋪)에 있습니다. 서선이 이르되 다소(多少; 얼마)의 백자(帛子; 子는 조사)를 썼는가. 중이 이르되 교섭이 없습니다. 서선이 말이 없었다. 



비는 비를 묻는 곳에서 온다. 무엇이 더 있겠는가. 비를 물으니 비가 오는 것이고 바람을 부르니 바람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물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침묵한다. 어느 시인은 침묵은 하인에게나 어울린다고 했지만,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성스러운 침묵에서 시작된다. 언어가 그치는 곳에서 침묵은 시작되고 분명해진다. 그리고 다시 침묵으로 충만해진 언어는 존재의 집을 고양한다. 그래서 나는 그 존재의 자리에서 그 물음의 근원을 다시 생각한다. 바람은 어떤 색을 지었는가. 저자거리 가게에 있는 비단의 색이던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바람은 어디에서 색을 가져왔는가. 서선은 침묵으로 관원에게 묻는다. 


* 이 문장은 고려후기 승려 구암이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30권 가운데에서 중국 송대의 선승인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천동 굉지(天童宏智, 1091∼1157)·원오 극근(圜悟克勤, 1063∼1125) 삼가의 염(拈)과 송(頌)을 발췌해 만든 책, <선문삼가염송집(禪門三家拈頌集)> 권21 제857칙에 실린 글이다.







坐中花園 瞻彼夭葉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坐中花園 瞻彼夭葉 (좌중화원 첨피요엽) -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坐中花園 瞻彼夭葉 (좌중화원 첨피요엽)
兮兮美色 云何來矣 (혜혜미색 운하래의)
灼灼其花 何彼矣 (작작기화 하피의)
斯于吉日 吉日于斯 (사우길일 길일우사)
君子之來 云何之樂 (군자지래 운하지락)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그리도 농염한지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臥彼東山 望其天 (와피동산 망기천)
明兮靑兮 云何來矣 (명혜청혜 운하래의)
維靑盈昊 何彼藍矣 (유청영호 하피람의)
吉日于斯 吉日于斯 (길일우사 길일우사)
美人之歸 云何之喜 (미인지귀 운하지희)첨


동산에 누워 하늘을 보네
청명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푸른 하늘이여 풀어놓은 쪽빛이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한경(崔漢卿) 「화원(花園)」 




앞의 설두중현의 拈頌(염송)은 아니지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 닿은 곳엔 철학이 있다. 꽃의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얼굴 맑은 어린 선비의 질문에 서선은 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 지를 물었을 지도 모른다. 꽃이 시작된 곳, 그리고 그 꽃이 색을 가진 곳. 

하루치의 말뚝을 박고 뒤를 돌아보면 주욱 늘어선 지나온 말뚝의 그림자들.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두고 온 것은 아니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때론 사람들이 거기에 그들의 말들과 뜻을 두고 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말뚝에 이어진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며 내가 시작한 곳을 바라본다. 아마 그곳이 바람이 오고 비가 오고 꽃이 오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은 조선전기(세종-세조)대의  첨지중추부사, 이조참의,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언보(彦甫) 최한경(崔漢卿)의 저서『반중일기(泮中日記)』에 실린 한시「화원(花園)」의 구절이다. 관직에 오른 후엔 바람기로 파직과 복직을 거친 인물이지만, 풋풋한 성균관 유생 시절엔 어린시절부터 마음에 간직했던 여인을 그리며 애틋한 마음을 詩로 쓸 순정을 가졌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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