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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Jan 28. 2023

일본 여행 2일 차(2)_시라카와고에 오길 잘했다

낯선 산마을에서 누린 아름다운 설경과 따뜻한 동지

기후 현 북부 히다 지방에 오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먼저 아름다운 자연, 고즈넉한 거리 등 많은 부분이 내 취향과 맞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특히 시라카와고의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꼭 보고 싶었다. 다카야마노히 버스센터에서 조금 기다리다 8시 50분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별도로 예약 없이 줄을 섰는데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다카야마에는 비가 와 내심 눈이 많이 녹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50분 정도 달려 걱정과 달리 흰 눈에 둘러싸인 시라카와고에 도착했다.

이곳은 산간에 위치한 마을이라 일본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폭설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무겁게 쌓이는 눈을 견디기 위해 특유의 지붕 양식이 발달했다. 억새로 만든 지붕이 마치 합장할 때 손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갓쇼즈쿠리 양식이라고 부른단다. 시라카와고 합장촌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마친 다른 세상 같은 풍광에 감탄하며 시라카와고 전망대에 올랐다. 다 오르니 중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많았다. 조금 북적였지만 위에서 천천히 내려다본 마을은 아름다웠다. 다만 오가는 길이 경사가 있는 편이라 눈이 쌓이거나 얼면 꽤 위험할 것 같다.

날은 그렇게 춥지 않은 가운데 이전에 온 눈이 아직 남아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운이 좋았다. 걸음마다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순간이 이어졌다. 

몇몇 건물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게 꾸며져 있다. 나는 그중 가장 크다는 와다 가문의 집, 와다케에 들어가 그네들의 삶을 엿보고 나왔다. 가족이 대를 이어 사용해 온 여러 도구와 집이 잘 보존되어 있다. 독특한 구조의 목조 건물은 여기저기 참 실용적이었다. 누에를 기르는 양잠업의 흔적까지 살뜰하게 전시해 두었다.

시라카와고 옛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나오니 그새 하늘이 꽤 맑아졌다. 거의 마을 끝까지 걷고 돌아왔다. 골목 하나하나 모두 충분히 아름다워 그렇게 욕심내지 않아도 곳곳에서 기대 이상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기념품과 선물을 샀다. 늘 그렇듯 자석을 사고, 밋밋하게 생긴 캐릭터가 여러 상품으로 있어 찾아보니 사루보보라는 히다 지역 전통 인형이었다. 사루는 원숭이, 보보는 지역 사투리로 아기를 뜻해 아기 원숭이란 뜻이었다. 색깔 별로 각기 다른 염원을 담았는데 빨강은 가정운, 노랑은 재물운, 녹색은 건강운 등을 기원한다고 한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마음은 시대를 초월해 한결같다.

언제 날이 흐렸나는 듯 맑은 하늘 아래 지붕 위 눈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이른 아침에 부지런을 떨길 정말 잘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오치우도에 갔다. 카레라이스, 젠사이, 아이스 카페라테로 구성된 세트를 주문했다. 젠사이는 팥을 졸인 일본식 디저트였다. 주문 후 앉아 있는데 점원 중 한 분이 다른 고객과 일본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셨다. 일상적인 대화인가 보다 했는데 갑자기 그 고객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번역기를 보여주셨다. 오늘이 'solstice'라 일본에선 호박을 먹는다는 내용이었다. 읽고 나니 점원이 웃으며 카레 위 호박을 가리키셨다. solstice라는 단어의 뜻은 몰랐지만 눈치껏 절기 중 하나인가 보다 생각하며 오늘이 동지인가 싶었다. 나중에 보니 '하지'와 '동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의미를 이해하고 한국에선 오늘 팥을 먹는다며 젠사이를 가리키니 역으로 거꾸로 놀라며 웃으셨다. 거의 동시에 서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가슴이 따듯해졌다. 처음으로 나온 젠사이는 차가웠는데, 셀프로 더 먹을 수 있는 젠사이는 따뜻했다. 음식뿐 아니라 마음의 온도도 그러했다. 차가운 커피에도 왠지 모를 온기가 묻어나 나도 모르게 혼자 실없이 헤실헤실 웃으며 밥을 먹었다. 물론 맛도 훌륭했고, 먼저 다가와 카레를 추가해 주시는 마음도 넉넉했다. 손에 꼽히게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나니 남자 사장님이 방명록 작성을 요청하셔 기분 좋게 성심성의껏 쓰고 엽서까지 선물로 받고 나왔다.


오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설국이었는데 식사 뒤엔 비가 오고 있었다. 눈이 더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달라진 날씨와 거리를 걸었다.


오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설국이었는데 식사 뒤엔 비가 오고 있었다. 눈이 더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달라진 날씨와 거리를 마저 걸었다. 시라카와고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고 다카야마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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