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이번 6개월은 생각보다 유의미하게 길다고 하긴 어렵지만, 전날 밤 많은 걱정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심지어 군대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날에도 8시간 푹 자고 들어갔었기에 잠을 설친 것이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확실히 긴장을 하고 있던 것이다.
적막한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요한 전기차 안, 아들 가는 거 보겠다고 쉬는 날을 반납한 아빠와 함께 어둠을 뚫고 지나가 드디어 인천공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우리를 반겼다. 마침내 회차 지점에 도달했고 간단한 작별 인사를 나눈 뒤 힘차게 공항 청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한항공 이코노미의 경우 일부 노선(중국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셀프 체크인을 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수하물 규정보다 살짝 오버해서 짐을 쌌기에 일부로 승무원이 있는 카운터로 향했는데,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셀프 체크인의 경우 단체로 온 아주머니들 뒤에 줄을 서서 직원 분의 도움을 받았기에 크게 적을 게 없는데, 25kg까지 부칠 수 있어서 24kg으로 수하물은 패스했다.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기에 마티나 라운지로 향했다. 몇 년 전 만든 우리 카드에서 주는 혜택 중 하나인 '라운지 무료이용권'을 언제 써보나 했는데 마침내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평일 오전이라 자리는 한산했으나, 입장객이 많아 줄을 서서 들어갔다.
적당히 놀다가 라운지를 빠져나와서 천천히 게이트로 향했는데, 이날 게이트가 끝쪽인 바람에 엄청나게 걸어야 했다. 비즈니스 승객, 뒤쪽 승객들이 탑승을 마친 뒤 앞쪽 구역(zone 3) 탑승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중간 좌석에 아무도 탑승하지 않아 옆자리 아저씨와 가상의 휴전선(?)을 두고 각자의 물품을 자유로이 둘 수 있었다. 좌석 간격 또한 여유롭였었고 다른 승객들 또한 등받이를 최대로 젖히는 것을 망설이지 않아 나도 좌석을 젖혀놓고 나름 편하게 비행할 수 있었다.
지난 3월에는 이코노미에도 라면 서비스가 되던 때였다. 그때 먹어볼걸...
그동안 코로나 등으로 인해 기내식을 먹을 기회가 없다가 오랜만에 기내식을 맞이했다. 이날 술을 마셔서 그런지 몰라도 마실 음료와 물을 찾아서 갤리를 많이 왔다 갔다 했는데, 승무원 분들이 그때마다 친절히 맞이해 주셨다.
이러한 승무원 분들의 과잉 친절(?)은 아침 식사에서 드러났는데, 처음 받은 식기에 작은 이물질이 있어서 교체 요청을 하고, 새 식기로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갑자기 기내를 책임지는 승무원분께서 내게 오더니 "아까 식기류에 이물질..." 하시면서 연신 사과를 하시며 재발 방지(!)까지 약속하셨다. 그 작은 이물질에 말이다! 솔직히 약간 부담스럽긴 했지만, 재무적 투자자(부모님)께서 굳이 국적기를 예매하라고 했는지는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2시간 정도 길어진 항로를 따라 비행하던 비행기는 예정 시각보다 약간 빠르게 프랑크푸르트 공항 2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비자를 지참한지라 입국 심사는 큰 어려움 없이 통과했고, 세관 신고 할 것도 없어서 '신고 물품 없음'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세관 경찰이 나를 불러 세웠다. 독일의 경우 담배(한보루, 200개비)의 신고 범위가 박하기 때문에 너무 쟁여오지(?) 않도록 해야겠다.
독일에 도착한 후 입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을 나와 첫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 타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 호텔 사이트에 간단한 안내와 메일로 문의하여 미리 안내를 받았지만, 여기가 거기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셔틀 타는 곳이라는 확실한 표시가 없었기 때문.
다행히 구글링을 해보니 공항 홈페이지에서 정확한 위치를 안내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셔틀버스는 예정보단 약간 늦게 운행되었지만 약속된 장소로 왔다. 내가 머문 스테이시티 호텔의 경우 공항에서 호텔로의 픽업은 무료였으며, 호텔에서 공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돈을 받았으나, 케리어가 무거웠기에 금액을 내고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기숙사로 바로 안 간 이유
경유 편을 예매하는 경우 도착 시간이 천차만별이나, 국내 및 독일 항공사의 직항 편을 이용하여 독일에 도착을 하는 경우 도착하면 현지 시간으로 저녁 시간입니다. 한국이였다면 숙직하시는 기숙사 관리인께 미리 부탁하고 입주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이곳 독일의 하우스마이스터, 관리인에게 늦은 밤 키를 달라고 연락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음날 아침, 호텔 직원에게 셔틀을 타겠다고 말하면 토큰을 주는데, 아마 직원이 아침이라 그랬는지 혹은 영어 단어가 잘 안떠올랐는지,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데 애를 먹었다. 내가 "ich spreche ein bissen Deutsch-독일어 조금 할 수 있어요"라고 하자 직원은 표정이 밝아지며 마치 우리가 콩글리시를 쓰듯이, 독일어가 섞인 영어로 설명을 했는데, 대충 잔돈이 없다는 뜻이였는 듯 했다. 다행히 내가 잔돈이 좀 있었고 어차피 사는 김에 일행 표까지 해서 zwolf euro-12 유로를 지불하고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최신형 이체에(ICE) 4, 한국의 KTX-이음과 같은 포지션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뷔르츠부르크까지의 여정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공항 장거리 기차역(Frankfurt (main) Fernbahnhof)에서 이체에(ICE) 열차를 이용하는 방법과, 중앙역(Frankfurt (main) Hbf)까지 S반을 타고 이동하여 레기오날 익스프레스(RE)를 타는 방법이 있다. 후자의 경우 도이칠란트 티켓 이용이 가능하나, 우리 일행은 가깝고 편한 ICE 열차를 선택했다. 이미 대부분 도이칠란트 티켓을 소지했을터이니, 저렴한 레기오날 반을 이용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하다.
6개월의 지연여정의 시작일줄은 몰랐지~
당연히(?) 지연도착한 이체에 고속열차에 탑승했는데, 장거리 여행객이 많은지 캐리어를 보관하는 공간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이체에 기차의 경우 순방향과 역방향 좌석이 중간 중간 바뀌는 형태로 배치되어있는데, 그 좌석 사이에 공간이 조금 있었고, 군데군데 쑤셔 넣은 다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혹시나 도둑이 있을까 노심초사 했는데, 다른 탑승객들도 큰 부피의 짐들을 그런 식으로 방치(?)하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목적지인 뷔르츠부르크로 향했다.
* 독일 국내선의 경우 짐가방 방치해도 분실 위험이 적지만, 국제 노선 특히 국경 부근에서는 매우 조심하셔야 합니다. 주요 위험 구간으로는 벨기에-독일, 오스트리아-체코, 오스트리아-헝가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