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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영 Jan 17. 2023

명절 제사와 차례를 없앴다.

차례 없는 설을 준비하며..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성들에게 명절은 힘든 날이다. 가족이 모인다는 것은 좋지만 그 모임에 여성이자 며느리인 나의 절대적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은 절대 기쁘지 않다. 이런 명절 문화를 바꾸어 보자며 남동생이 친정의 제사와 차례를 없애자고 했다. 결혼한 딸이 명절에 친정 차례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니니 뭐라 할 말도 없고, 지내는 사람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번 설부터 친정의 설 차례는 없다. 




  우리 가정은 어릴 때부터 명절을 지내본 적이 없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명절에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가는 일도 없었다. 명절이라고 해도 하루종일 티브이가 나오는 날이라는 것 말고는 별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명절 음식을 하고 아버지 제사를 지낼 형편이 되어서는 일이 손에 익숙하지 않은 딸이라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기만 했다. 가족들이 모여 같이 전도 붙이고 음식 준비를 하는 삶을 기대했었지만 결혼 전까지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혼해서는 명절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시아버지가 장손인 시댁은 하루종일 전을 부쳤고 기름 냄새에 질려 밥이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했다. 남자들은 도움이 안 된다며 주방에 오지 말라고 하니, 남편은 나만 시댁에 두고 동네 친구들과 술 마시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야 들어왔다. 며느리들은 하루 종일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고 남자들 밥상을 차려 줬으며, 치웠다. 밥을 먹다가도 남자들이 밥을 다 먹으면 후식을 준비해야 하니 끝까지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신참 막내며느리에게는 끝까지 밥 먹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나의 환상을 완전 빗겨나간 명절. 결혼하면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음식을 준비하고 같이 먹고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건 드라마 속의 이야기일 뿐. 결혼 후 14년이 지난 지금 명절 차례와 제사를 없애자는 남동생의 의견에 동의한다. 


  한 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있다. 단순히 차례와 제사가 없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행사의 의미 때문이다. 명절 차례의 의미는 가족이 모인다는 것과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족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차례와 제사가 없으니 지금보다 가족이 모이기는 더 힘들 것이고 (적어도 우리 형제는 명절과 제사에만 얼굴을 봤다. 남동생이 바빠서 친정에 잘 안 옴). 존경하는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사 대신 아버지 제사가 있는 달에는 가족 모임을 한 번 하기로 했다. 


  이 모임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벌써 회의적이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이다. 결론은 제사든 차례든 하는 사람 맘이다. 남동생이 안 한다고 하니 조금 서운할 수는 있어도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다.


 제사나 차례 이런 형식이 뭐가 중요해? 없어도 되잖아? 생각할 수 있지만 형식이 있어야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잘 생기기도 한다.  인사를 해야 상대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것처럼.  단, 그 형식이 누구의 희생만 강요되는 형식이어서는 안된다. 


  서로를 힘들게 하는 형식을 모두 기쁘게 받아들이는 형식과 의식으로 바꾸는데 찬성이다. 아직은 익숙지 않은 과정이지만 가족이니까 우리는 갈등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설부터 명절 설 차례는 없지만 우리는 아빠를 기억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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