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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영 Feb 02. 2023

엄마의 말뚝. 박완서 단편소설을 읽고


엄마의 말뚝 2를 20대에 읽고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이기도 하고 어머니를 많이 안쓰럽게 여겼던 마음도 있던 까닭이다. 20여 년이 세월이 지나 다시 읽는 엄마의 말뚝 시리즈.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번엔 엄마의 말뚝 1과 3에서 느끼는 먹먹한 감동과 여운이 있다. 편안한 문체로 주변의 별다를 것 없는 것 같은 일상을 소설로 만드는 박완서 작가의 글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어린 시절 박완서 님의 글을 읽고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강사라는 직업병 때문일까 소설에도 의미를 찾고 어떤 의미를 남기는지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려고 한다. 사실 소설, 미술 작품 등 예술을 접할 때 작가의 의도는 감상하는 독자와 관객이 자신의 감동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린다고 글의 구석구석 뒤진다. 박완서 작가의 글은 그런 해체 없이 마음으로 읽고 감동을 간직해도 좋을 글이다.







엄마의 말뚝 1,2,3을 다시 읽은 이유는 지역 독서 모임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만들고 싶었던 독서 모임이 드디어 결성되었고 다음 주 월요일 첫 모임이다. 지난 명절도 있고 해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의미로 선정했다.


다시 읽어 보아도 엄마는 대단하다.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이 다시금 떠오르는 글이다.




엄마의 말뚝을 읽고 다음 주 이야기 나눌 토론 질문을 선정해 보았다.







함께 하는 질문



1. 엄마의 말뚝 1,2,3에서 상징하는 말뚝은 무엇일까?




2. 엄마는 자신이 살아 보지 못한 미래를 내가 살아가기를 기대하며 신여성이 돼라 강조했다.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미래를 강조하셨는가?




3. 나는 나의 자식들에게 어떤 미래를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있는가? 그 기대를 위해 어떤 말뚝을 심고 있는가?




4. 엄마가 되어보니 이해할 수 있는 엄마의 마음이 있다면?





시간 관계상 아마도 2개 정도의 질문으로 모임이 진행될 것이다.






엄마의 말뚝을 읽고 마음 뭉클했던 문구




삼우날 다시 찾은 산소에서 나는 엄마의 성함이 한 개의 말뚝이 되어 꽂혀 있는 걸 보았다. 정식 비석은 달포쯤 있어야 된다고 했다. 말뚝에 적힌 한자로 된 어머니의 성함에 나는 빨려들 듯이 이끌렸다. 엄마는 부드럽고 나직하게 속삭이며 아직도 내 의식 밑바닥에 응어리진 자책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딸아, 괜찮다 괜찮아. 그까짓 몸 아무 데 누우면 어떠냐. 너희들이 마련해 준 데가 곧 내 잠자리인 것을...



* 나의 해석


어머니의 유언을 지켜드리지 못한 딸에게 엄마는 저승 가는 길에서도 자식을 달래어 주는구나.


엄마는 그랬다. 너희가 마련해 준 곳이 내가 갈 길이고 나의 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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