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만 3세, 4살이 된 첫째는 부쩍 짜증이 늘었습니다.
블록을 쌓다가 넘어지면
“왜 자꾸 쓰러져?" (짜증)
책을 많이 읽어주었다 생각하고 잠깐 일어섰는데
“훈이는 책 보고 싶은데 왜 안 보는 거예요?"(짜증)
한참 놀아주고 잠깐 집안일하러 자리를 비우면
“왜 안 놀아주는 거예요?”(짜증)
나는 충분히 안아주었다 생각했는데 쪼르르 달려와서는
“왜 안 안아주는 거예요? 안아주세요."(짜증)
25분에 양치하자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양치하러 가지 않아 양치하러 가자고 했더니
“그림 그리고 싶은데 왜 양치하러 가자 해?"(짜증)
자기 전에 쉬 한 번만 하고 자자고 했더니
“쉬 안 마려운데 왜 쉬하자고 해?”(짜증)
말을 받아주다가 지쳐서 얼굴이라도 굳으면
“아빠 얼굴이 왜 그렇게 됐어? 그렇게 하지 마.”(짜증)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간혹 화창한 날도 있지만 첫째가 피곤한 날이면 폭풍우가 몰아치곤 합니다. 비바람을 흠뻑 맞고 나면 녹초가 되곤 합니다.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고 대답해 주고 훈육하는 일에는 참 많은 에너지가 쓰입니다.
저도 피곤해 지치는 날이면 아이에게 까칠하게 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죠. 아이에게 질 수 없다며 아이와 짜증배틀을 시작하면 끝없는 평행선을 달립니다.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됩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화재를 돌리면서 아이의 감정을 다독여주곤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뒤끝 없이 잘 놉니다. 저만 괜히 찝찝한 뒤끝이 남을 뿐이죠.
<1-2-3 매직>(토머스 W. 펠런, 에듀니티, 2018)이란 책을 보면 ‘아이는 작은 어른이다.'라는 가정이 훈육을 망치는 주된 생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작은 어른 가정은 아이들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이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이를 어른의 축소판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녀와 논리적인 대화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 <1-2-3 매직> p.49
아이를 작은 어른이라고 가정하는 순간 많은 부분이 꼬이게 됩니다. 말을 해도 도무지 잘 듣지 않는 아이를 보면 부모의 감정만 격해지게 되지요.
만약 양치를 하러 가기 싫어하다고 떼쓰고 짜증을 부리는 아이에게 “양치를 하면 이가 썩는단다. 양치하러 가자. “고 이야기를 하면 ”아빠 말이 맞아요. 양치를 하면 이가 썩으니 얼른 양치하러 가야겠어요.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할 아이가 있을까요?
아이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화가 통하는 작은 어른이 아니라, 오히려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고,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게 당연한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는데 왜 말을 듣지 않는 거지'에서 '아직은 아이니까 계속해서 가르쳐주어야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짜증을 낸다고 해서 아이 마음대로 하도록 놔두어선 안 되겠지요. 부모는 아이가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훈육을 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으니까요.
<1-2-3 매직> 책에서는 아이는 작은 어른이라고 생각하기보단 아이들이 아직 야생동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고 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동물을 조련하는 조련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아이를 아이를 동물처럼 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육사가 동물들을 조련하듯이 일관된 방법을 반복해서 계속 가르쳐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아이가 올바른 습관이 형성될 때까지 일관된 방법으로 꾸준히 반복하는 것.'
말은 쉽지만 저도 쉽지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울컥하거든요.
아이도 감정조절을 배워야 하지만 저도 감정조절을 배워야 할 듯합니다. 그래도 어른인 제가 아이보단 더 감정조절을 잘할 수 있으니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계속 가르쳐주는 수 밖에는 없겠지요.
오늘도 폭풍우가 무사히 지나가고 또다시 화창한 날이 오길 고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