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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pr 12. 2021

나이 듦 그 불편한 진실 앞에서...

 어제 밤새 두통으로 잠을 설쳤다.  젊은 시절부터 고질병 편두통이 나를 힘들게 했는데... 요즘도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고 나를 애먹이는 두통은- 내게 있어 난치병이다. 요즘 뭉텅뭉텅 빠지는 머리카락과 결리는 어깨 때문에 우울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더니 금세 내   머리가 나의 기분을 읽고 욱신욱신,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노화현상이라고 하기에는 컨디션이 지속적으로 안 좋으니 몸 때문에 마음이 울적한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아프니 몸이 다운되는 것인지 사실 구분이 안 간다.

 마음과 몸이 보조를 맞추며 그렇게 늙어가면 좋으련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기를 알기에 서글퍼진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은 알지만,  인생의 절정기의 육체에서 멈춰 있다 그렇게 죽음으로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하면서도 절실한 소원 하나가 마음속에서 고개를 든다.  남은 삶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신밖에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남은 기간은 몸과 맘이 균형을 이뤄가며  그렇게 삶의 뒤편으로 저물어가고 싶다. 

 몸이 여기저기 시름없이 아프니 혼자라는 사실이 덜컥 무섭고 두려워진다. 혹여  하나뿐인 아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 오늘따라 쓸데없는 걱정거리가 나를 짓누른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지금 현재로 가져와 지레 걱정하고 근심하는 나를 보니 마음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 측은했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추스른다.


 끙끙거리다 겨우 일어났다. 묵직한 머리에 눈이 빠질듯한 통증이-몸을 움직일 때마다-배가 된다. 집안 곳곳에서 두통약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제일 가까운 약국까지는 15분 거리이다. 지금의 나의 컨디션으로는 한발 떼는 것조차 힘겹지만 -할 수 없이 옷을 주섬주섬 입고 외출 준비를 한다.



 담장의 개나리가 진 자리에 연둣빛 잎들이 잔뜩 올라왔다. 그 옆에 빨간 철쭉이 어느새 곱게 피었다. 엊그제만 해도 봉긋하게 봉우리 진 모습이었는데 하루하루 봄 풍경이 무르익는다. 햇살은 따뜻하고 봄 향기 가득한 미풍이 분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바라보고 걷다 보니 찌를 듯 아팠던  머리의 통증이 잠시 사그라진다. 

 이틀을 꼬박 집안에서 앓아누웠다. 씩씩하게 혼자  잘 산다고 내심 기특해했는데 몸이 아플 때나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혼자라는 사실이 못 견디게 아프다. 통증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뒤척이며 온 집안을 서성이는 내게 앞으로의 남은 삶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 시간들을 오롯이 혼자 맞이하며 두려움과 싸워야 하고 번번이 그 싸움에서 나는 패잔병으로 남는다. 의식은 날을 세워 약해지는 나를 일으켜 세우려 애를 쓰는데  의지와는 달리 약한 육신 앞에 마음이 허물어진다.

 조용히, 깊숙이 다가오는 고독의 시간 앞에 나의 약함을 바라본다. 이 곳에는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는 절대 고독만이 존재한다. 오늘도 주저앉으려는 나를 다독여 일으켜 세운다. 내 눈앞에 놓여 있는 길을 향해 계속 앞으로 가라 채찍질한다.


 

 지금의 나는 중년과 노년의 삶의 모호한 경계에 서있다. 살아온 시간과 경험에 의해서 아무것도 자신 있게 확신하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살아온 날들보다는 살아가야 할 시간이 짧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살아온 삶보다는 노년의 삶이 훨씬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사실이다. 몸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쇠약해지는 몸에 깃든 마음도 자칫하면 깨지기 쉬운 유리 같지 않을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과 마음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없는 날이 내게 찾아올까 두렵고 무섭다.

모든 사람의 희망사항은 건강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쉽게 떠올리지 못했던 이 바람이 시름시름 여기저기- 삐걱대며 앓고 있는 내게 절실한 소원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평소보다 천천히 길을 걷는다. 거리 곳곳 눈길을 두는 곳마다 진달래가 웃고 있다. 그녀가 그녀를 바라보는 내게 말을 건다. 고통은 살아있는 증거라고, 모든 생명은 고통 속에서 성장한다고 빙그레 웃으며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을 한다. 주위를 둘러 꽃과 나무와 새들 그리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탄생과 성장과 소멸의 모든 과정이 고통 속에서 잉태되고 자라 갔음을 본다. 뿌옇고 흐린 시야로 웃으며 그녀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약을 삼키고 방안에 누웠다. 편두통이 심한 날에는 약을 먹어도 잘 듣지를 않는다. 이틀 동안 두통과 근육통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픈 관자놀이 부분을 지그시 누르고 모로 누워 잠을 청해 본다. 제발 이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묵상하던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웅크린 채로 기도한다.

 얼마쯤 흘렀을까. 어둑해진 방 안에서 한참을 불을 켜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고개를 돌려본다. 아까의 찌를듯한 통증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오른쪽 머리가 묵직하니 무겁다. 누운 채로 아픈 왼쪽 어깨를 움직여 본다. 여전히, 빈번히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진다. 느껴지는 통증에 이 어두운 방안이 꿈이 아닌 살아있는 나의 공간임을 깨닫는다.

 허기가 진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방안의 불을 켰다. 주방 쪽으로 간다. 쌀을 씻어 불려 놓고 애호박 볶음과 된장찌개를 끓인다. 오랜만에 나를 위해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시장을 반찬삼아 달게 먹는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마음의 걱정과 근심도,   나이를 먹어 허물어져가는 육체의 고통도 잠시 시간 밖으로 사라져 간다.



 일주일째 컨디션이 바닥이다. 이틀 동안은 근육통에 두통까지 겹쳐서 잠도 잘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얼마 전부터 약한 어깨와 팔에 근력을 키울 목적으로 시작한 아령운동이 내게 무리였다. 최소 단위 무게부터 시작했지만 그거 조차 내게 버거웠다. 시작한 지 며칠 지나니 당장 약한 어깨부터 이상 신호가 왔다. 목, 어깨가 아프니 두통은 점점 심해졌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따라 아프고 자연히 우울해졌다.

 난 지금 1인 가구의 가장이다. 아름답고 멋진 몸을 원한 것은 아니다. 남은 삶을 최대한 건강하게 유지해 아들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 시기를 되도록 늦추고 싶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서글프다. 온몸이 기능이 쇠약해지고 마음의 텃밭도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잡초가 무성해져 황폐해지고 제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감정의 탄력도 떨어져 자칫 방심하면 고집불통 노친네, 꼰대 소리 듣기 상이다. 나이는 아직 중년인데 아집으로 가득 차 타인의 말에는 귀를 막아버리는 이른 노령기를 겪는 사람도 나는 주위에서 흔하게 목격한다. 나는 그렇게 서글프게 늙고 싶지 않다. 비록 육신의 쇠락을 막을 순 없더라도 마음만은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찬 -그래서 항상 새가 깃드는 정원이었으면 좋겠다.


 거울 앞에 선다. 그 안에는 당황스럽게도 젊은 날의 모습은 거의 사라진- 웬 낯선 여인이 서있다. 먼저 스트레칭으로 굳어 있는 몸과 마음의 근육을 충분히 이완시킨 후 무게 1kg짜리 아령 대신 500ml 페트병을 들고 다시 근력 운동을 시작한다. 조급함 대신 느긋함으로 하나, 둘, 셋, 넷...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전으로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또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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