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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pr 15. 2021

이모표 오므라이스 완성!

"얘들아 이모 왔다." 하며 동생네 집에 들어선다. 예쁜 조카들이 방긋 웃으며 반긴다. 작은놈은 꾸벅 배꼽인사로, 큰 놈은 팔만 치켜든다. "오늘 저녁은 뭐  먹고 싶어? 메뉴 뭘로 할까?"하고 조카들과 동생에게 묻는다. 평소 음식을 가리고 잘 먹지 않는 작은애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큰 조카가 냉큼 "오므라이스!"하고 소리친다. 동생과 작은조카도 별 이견이 없는 걸 보니 메뉴가 맘에 드는 눈치다.

 별 솜씨는 없지만 아이들이 다행히 내가 해주는 음식을 잘 먹어 예쁘다. 한동안 애들이 계란말이와 김치볶음밥에 꽂혀 나를 보면 그것들만 해달라고 졸라대더니 요즘에는 시들해져 다른 메뉴를 종종 찾는다. 최근 아이들이 선호하는 가장 핫한 메뉴는 불고기 전골과 월남쌈과 오므라이스이다. 야채를 싫어하는 작은 조카를 생각해서 선택한 메뉴다.

 예상외로 작은 녀석이 좋아한다. 야채를 좋아하는 동생과 큰 조카의 반응은 당연 폭발적이다.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많이 드는 음식이지만 일품요리로는 제격이다. 쉬 인기가 사그라질 것 같지 않으니 저녁 메뉴 고민은 당분간 안 해도 되겠다.

 일주일에 두 번 조카들의 저녁을 책임지는 내게 메뉴 고민은 큰 숙제이다. 한참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건강한 식탁. 거기다 맛까지 더하려니 예전의 아들 키울 때 잘해주었던 메뉴까지 떠올려 보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입맛 당길 수 있는 메뉴의 레시피를 따라 하기도 한다. 오늘 아이들의 저녁 식사로 선택한 오므라이스는 친구의 레시피를  귀동냥하여 시험 삼아 선 보였는데 기존에 내가 해주던 오므라이스보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음식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먹는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뿌듯하고 더 정성을 다하게 된다.



 자취하는 아들 생각이 났다. 알아서 잘 챙겨 먹는다고 말은 하지만 거의 바깥에서 끼니를 해결할 아들이 안쓰러웠다. 한 끼 불러다 좋아하는 음식으로 해 먹이려 해도 사는 게 바쁜지 좀처럼 얼굴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부모한테 자식은 항상 등에 진 무거운 바위돌 같은 존재이고 죽을 때까지 짝사랑의 대상인 것 같아 씁쓸했지만 어디 나만의 문제이겠는가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이제 생각이 난다. 나도 별 수없는 자식이다. 이런 걸 보면 내가 아들에게 섭섭해하는 것이 민망한 일이다.

 "엄마, 나야. 잘 지내셨어요?"하고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다. 엄마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난다.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 드시고 싶은 음식은 없으신지... 물으며 목소리로 전해지는 엄마의 현재  몸과 마음의 상태를 살핀다. 엄마의 나를 향한 걱정과 한숨이 대부분이다. 괜찮다고 잘 지낸다고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한다. 요양원에서 자식들 전화만 기다리실 텐데 무심한 나는 그 마음을 종종 잊는다. 내가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자주 보고 싶은 것처럼 엄마의 마음도 똑같을 텐데... 엄마에게 미안했다.



 냉장고를 열고 재료를 살핀다. 파프리카, 당근, 양파 그리고 애호박이 냉장고 야채칸에 있다. 야채는 충분하고 햄보다는 다진 돼지고기가 전체적으로 깊은 맛을 내는데 없다. 망설이고 있는데 동생이 다진 고기를 사러 정육점으로 갔다 온다고 한다. 그 사이 야채를 흐르는 물에 잘 씻어 놓고 쌀을 씻어 살짝 불려 놓았다. 밥은 질지 않게,  좀 되게 고슬고슬한 느낌으로 지어야 해서 쌀을 오래 담그지 않았다. 솜씨는 없지만 동생과 조카들의 맛있게 먹을 모습을 떠올리며 정성을 다한다. 내 경험상 요리는 레시피 못지않게 진심을 담은 수고와 사랑이 그 맛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준비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즐겁게 저녁을 먹기를 고대하는 조카들에게 작은 기쁨을 주고 싶었다.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미리 맛술을 살짝 뿌려 둔  돼지고기를 풀어지게 잘 볶는다. 다진 고기가 잘게 풀어지면 썰어 놓은 양파, 파프리카, 당근, 애호박을 넣고 볶다가 우스타 소스와 케쳡을 1대 1 비율로 넣고(취향에 따라 비율은 약간 조정할 수 있다.) 물을 조금 넣고 졸인다. 거의 물기가 사라질 무렵 밥을 넣고 잘 섞어준다. 이제 계란을 씌우는 게 문제인데 원래는 지단을 얇게 부친 뒤 그 위에 밥을 얹어 잘 감싸 모양을 잡아 뒤집는데, 오늘은 애들이 배가 고프다 성화여서 급하게 지단을 부쳐 밥 위에 얹었다. ㅎ 모양은 어설프지만 맛은 최고인 오므라이스가 탄생했다.


 내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고 행복하다. 입이 짧은 작은 녀석까지 폭풍 흡입한다. 오늘의 오므라이스는 대성공이다.


 오늘따라 엄마와 아들이 유난히 그립다. 엄마의 손맛과 나를 향한 사랑의 밥상. 내가 엄마의 손맛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듯 아들도 나의 손맛과 그 안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기억할 수 있을까. 뒤늦게 철이 드는 딸이 엄마에게 따뜻한 밥과 찬을 대접할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이모 다음에 또 해줘~" 하고 무뚝뚝한 조카가 씩 웃으며 말한다. "그럼 또 해주고 말고~~"하고 조카의 어깨를 감싼다. 예쁜 조카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보니 밥은 사랑이었다. 아이들에게 내 사랑이 전달되어 훗날 이모를 기억하면 이모의 푸근한 손맛과 사랑을 기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조카들과 동생의 따뜻한 배웅인사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눕는다. 오늘 하루가 눈 앞에 스쳐 지나간다. 잔잔하지만 따뜻한 일상이 감사한 하루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꿈꾸듯 사모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대하며 잠이 든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충만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 밤 평안하기를 소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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