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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pr 19. 2021

그대 창가에 서서.

 명희 씨가 선물로 준 식물 모종-꼬마가 많이 자라 오늘 꽃가게에 가서 분갈이를 하였다. 모종을 조금 넓은 화분으로 옮겨 심으면서 꼬마가 외로울까 봐 '나한송'이라는 식물 모종을 같이 심었다. 그동안 꼬마의 진짜 이름이 많이 궁금했는데, 오늘 드디어  궁금증을 풀었다. 친절한 꽃가게 사장님이 꼬마의 이름이 '산호수'이며 어떻게 관리해야 내가 오랜 시간  꼬마와 동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꼼꼼하고 세세하게 일러주셨다. 식물에 대해서는 전혀 상식도 관심도 없는 내가 단지 친구가 내게 준 선물이란 의미만으로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정성을 다했고 다행히 우리 꼬마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무럭무럭 잘 자라 준 것이 전부였다.

 사실 꼬마를 내가 보살펴 주는 것보다는 어찌 보면 꼬마가 나의 마음을 달래주고 살펴주는 것이 맞다. 우연찮게 내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고 힘들 때 녀석이 내 품으로 날아와 내게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다. 무언가에 메이고 길들이는 것, 길들여지는 것 모두 유별나게 싫어하는 나인데... 고 작은 생명에라도 의미를 부여해서 쳐진 마음과 몸에 생기를 부어 넣고 싶었던 것이 나의 진심이었다.

 새집으로 터를 옮긴 꼬마의 얼굴이 반짝 빛이 난다. 덩달아 나도 마음이 환해지며 신이 난다. 이제는 외로워도 슬퍼도 함께 할 식구가 생겼으니 한동안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든든할 것 같다. ㅎㅎ


 

 조심스레 거실 장식장 위에 올려놓고 꽃가게 사장님이 일러준 대로 종이컵으로 한 컵 분량의 물을 화분에 준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참으로 꼬마의 자태가 고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작은 생명체이다. 내게 꼬마를 보내 준 명희 씨에게 감사 인사와 오늘 꼬마의 분갈이 상황을 세세하게 적어 기념사진 한 컷과 함께 휴대폰으로 전송해 주었다. 그녀로부터 금세 답장이 왔다. 일주일 새에 몰라보게 늠름하게 자란 우리 꼬마의 모습에- 그녀도 깜짝 놀란 듯 대견해한다.

 신기하다. 작은 요 녀석이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돌아서면 그립다. 나의 이런 마음을 눈치챈 듯이 여린 잎들이 내 앞에서 재롱을 떤다. 사랑스러운 꼬마의 몸짓에 내가 녀석의 엄마가 되어 활짝 웃는다.  고즈넉한 공간에 따뜻한 온기가 감돈다.


 창가에 서서 어둠이 내린 도시를 바라본다. 잠들지 않은 도시의 불빛이 별빛처럼 아름답다. 내 안에 일렁이는 감정들을 조용히 꺼내본다. 진한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허무함 그리고 꺼지지 않은 희망까지-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감정의 미세한 떨림까지 마주한다.


 

 집 꾸미기가 한참 취미 인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득한 옛날이지만 아이와 아이 아빠가 그나마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할 때는 집안을 반짝반짝 청소하고 내가 좋아하는 꽃을 사다 화병에 꽂아 장식을 하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집안을 꾸미는 것을 좋아했었다.

 요리책을 구입해서 그 레시피를 따라 근사한 음식을 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젤 예쁘고 근사한- 그릇에 담아 식구들에게 대접하는 것이 기쁨이었던 시절. 기억을 왜곡해서 그와 나의 만남이, 결혼 생활이 처음부터 불행했다고 말하고, 좋았던 시간마저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어디서부터 얽혀버린 건지 시간을 돌이켜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해봐도 모르겠다. 혹시 그때의 내가 아니고 지금의 나였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냥 고개를 젓는다. 우리의 인연은 8년 전 그곳에서  끝난 것을 이미 나는 잘 알고 있다.

 다시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화려한 꽃과 장식은  없지만 오래 머물고 싶은,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나를 초대하고 싶다. 소박하지만-내가 가꾸는 포근한 둥지에서 안식을 누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싶다.



 햇살이 눈부셔 잠에서 깼다. 기지개를 켜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꼬마에게 다가가 아침인사를 한다. 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녀석도 꼬물꼬물 기지개를 켠다. 어, 가만히 보니 가지에 달려 있는 빨간 열매가 사랑의 열매를 닮아있다. 탐스럽고 윤이 나는 작은 열매와 막 올라오는 새순들이 참 예쁘다. 분무기로 정성스레 물을 뿌려준다. 녀석이 해맑게 웃는 아침이다. 빵을 굽고 과일을 씻는다. 제일 예쁘고 근사한 접시에 아침을 담고 그 앞에 앉아- 작고 규칙적인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감사기도를 한다.

 새들이 지저귄다. 맑고 푸른 하늘을 창가에 서서 바라본다. 다시 눈을 돌려 연둣빛에서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앞동산을 본다. 어둠을 몰아낸 아침은 다시 꿈을 꾸기에도, 희망을 갖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너무 오랫동안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잊고 살았다.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 물을 주고 싶다. 가지를 치고 새순이 돋기를 기다리고 싶다. 꼬마의 탐스런 열매처럼 나도 내 안에 소담스러운 열매가 맺히는 꿈을 꾸며 나를 가꿀 것이다.


 

 식사를 하고 아침부터 쓸고 닦는다.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로 집을 꾸미는 대신 한참 물건을  뺄셈 작업 중이다. 안 쓰고 필요 없는 것 하나하나 정리해 간다. 그동안 쓸모없는 것들에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끌어안고 살았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로 내 보금자리를 예쁘고 윤이 나게 꾸미고 싶다. 엉클어진 마음의 실타래가 풀린다. 내 옆에 꼬마가 웃고 있다. 다정한 친구 하나- 내게 힘을 준다.

 집을 나선다. 철쭉과 영산홍이 만발한 산책길을 걷는다. 바람이 나의 머리와 뺨을 쓰다듬는다. 살아 있음에 아름다운 생명의 손길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낀다. 모든 자연의 생명들이 나의 앞길을  축복하며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찬란한 햇살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며 내 손을 꼭 잡아준다.  잡은 두 손에 힘을 준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파도 같은 위로가 나를 에워싸는 4월 어느 날의 아침- 다시 이 길의 끝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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