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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ug 03. 2021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들으며

오늘의 행복 레시피

 분가한 아들이 집으로 들어서는데 달랑 작은 캐리어 하나만 보인다. 반갑다는 사랑의 포옹도 없이 황당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나를 향해 마루를 친구 집에 맡기고 혼자 왔다고 뻘쭘하게 웃는다. "응 엄마가 힘들까 봐 동네 사는 후배에게 맡겼죠. " 순간 실망한 내가 " 왜? 마루 너 일하는 동안 봐주려고 엄마 일주일 일정을 통째로 비워놨는데..." 하고 아쉬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이야기한다. 하얀 털 뭉치에 까만 반짝이는 눈동자의 마루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아른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들이 혹여 서운할까 얼른 아들을 안고 등을 두드린다.

 

 혼자 보내는 밤은 거의 대부분 적막강산이지만,  아들의 방문만으로도 금세 쓸쓸한 집안에 온기가 도는 것이 사람 사는 집 같다.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싶지만, 낼 새벽에 현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아들은 오자마자 잘 준비를 한다. 아쉬움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에 얼른 불을 꺼주고 나는 내방 책상 앞에 앉는다. 시계를 보니 열한 시가 조금 넘었다. 평소에는 이 시간대에 슬슬 잘 준비를 하는데... 아들이 온 설렘 때문인지 아니면 기다리던 마루가 오지 않아 섭섭한 건지 잠이 쉽게 들 것 같지 않다.

 

 새벽에 화들짝 놀라 잠이 깼다. 시간은 4시 45분을 가리키고 있다. 깊은 잠에 취해 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엄마 조금만 더요. 5시에 깨워주세요~" 하고 아들은 얼굴을 이불속에 파묻고 돌아눕는다. 그의 땀띠로 얼룩진 어깨가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아들은 타일 기술자가 된 지 7개월이 됐다. 아니 사실 기술자가 아닌 수습생이다. 팀의 막내. 이 일을 처음 시작한다고, 기술을 배워보고 싶다고 내게 알렸을 때 나는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줬다. 내가 그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에는 아들은 너무 커버렸고 나는 아들을 믿었다. 단지 육체적인 고된 노동이 따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뿐. 직업에 대한 편견은 없었다. 남을 해롭게 해서 버는 돈이 아닌 세상의 모든 직업은 귀천이 없다고 생각했다.

 

 독립해서 자취하는 아들은 이번 주 나와 함께 머문다. 우리 집 근처 외고에서 1주일간 마칠 작업이 있어 어젯밤 내게 왔다. 힘든 내색을 안 하는 아들이지만 미루어 짐작해보아도 그 일이 얼마나 고될지 상상이 갔지만, 어젯밤 잠든 아이의 몸에 난 상처와 온통 땀띠로 얼룩진 몸과 굳은살이 박인 손을 보며 처음 말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지금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믿음과 지지이지 비난과 걱정은 그의 결정과 도전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내게 머무는 이 시간에 내가 할 일은 편안한 잠자리를 살피고, 정성껏 지은 밥과 음식으로 엄마의 따뜻한 품을 느끼게 하는 일일 것이다. 어제 내린 비로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간간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들이 오늘 작업하는데 덜 힘들 것 같아 다행이다.



 어제 미처 마치지 못한 브런치 북을 완성하고 나니 뿌듯하고 대견하다. 어지러 히 널려 있는 글방을 청소하고 정리한 느낌이다. 변명을 하자면 미루고 싶어 내가 쓴 글들을 방치한 것은 아니다. 쓸수록 허점 투성이인 내 글을 책으로 묶는다는 것이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단지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었는데... 그렇게 놔두고 보니 못나고 부족한 자식도 내 자식인데, 내가 내 속으로 낳은 글들을 홀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생각을 조금 바꿨다. 미흡해도 나의 족적이니 수용하기로, 인정하기로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아들이 어떤 상황이던 내 금쪽같은 내 새끼임이 분명하듯 내 글도 모자라고 부족해도 나란 사람의 그림자이고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벌어진 틈은 메꾸고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찬거리를 사러 밖으로 나왔다. 아이가 내 태중에 있을 때 나는 복숭아를 달고 살았다. 아들은 8월에 태어났다. 복숭아가 제철인 한 여름을 고 새콤하고 달콤한 과육을 실컷 맛보며 무거운 막달을 버텼다. 태중에서 맛봤던 그 맛을 기억하는지 아들은 지금도 복숭아를 좋아한다. 단골 과일가게 청과원에 가서 백도와 황도를 주문하고 저녁에 끓여줄 된장찌개 속 재료와 훈제 오리고기를 샀다. 뜨거운 태양 아래로 가끔 마주치는 시원한 바람이 나를 들뜨게 한다. 나를 행복하게 한다.


 다섯 가지 보리를 섞고 서리태를 풍성히 넣어 밥을 지었다.  위에서 해물 된장찌개가 뽀글뽀글 끓고 있고 프라이팬에 오리고기를-아들의 귀가 시간에 맞춰 -굽는다. 6시 반에 집에 먼지투성이로 들어오는 아들 손에 내게 줄 커피가 들려있다. 선물이라고 씩 웃으며 내미는 아들이 고맙고 사랑스러워 그의 투박한 손을 살며시 잡는다. 오랜만에 느끼는 꽉 찬 행복감이 소중하고 감사해 눈가가 촉촉이 젖어온다.


 나의 여름휴가는 이렇게 행복하게 시작되었다. 일주일의 행복한 꿈. 사랑하는 아들의 끼니를 챙기고 얼룩진 작업복을 빨고 깜박 잠이 든 아들의 잠을 방해할까 봐 소리 죽여 그를 바라보는 지금의 순간이 너무 행복해 꿈만 같다. 우리 부디 행복하자던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떠오른다. "아들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



 https://youtu.be/uLUvHUzd4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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