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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ug 07. 2021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존재의 아름다움

 오늘 아들의 생일이다. 그의 스물아홉 번째 생일. 자정을 넘기자마자 생일 축하한다고, 사랑한다고 꼬옥 안아주었다. 내 품에 안기기에는 너무 커버린 아들이 대견해서 엉덩이를 토닥이고 손을 잡아본다. 이른 아침 현장으로 나가는 아들을 배웅해 주며 한번 더 엄마한테 와 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을 했다. 아들은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는 멀어져 갔다. 오전 5시 반이다. 

 오늘 저녁 친구들과 생일 모임이 있는 아들과는 어젯밤 조촐하게 파티를 했다. 야근하고 9시 넘어 들어온 아들과 샴페인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씩 들고 케이크를 잘랐다. 둘 다 술을 못해 맥주 한 잔이 주량인데, 커피는 또 둘 다  엄청 좋아한다. 축하주 대신 아메리카노가 든 유리잔을 가볍게 부딪치며 아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꼬물꼬물 어릴 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스물다섯. 친구들 중 뭐가 급했는지 제일 먼저 결혼을 했고 이듬해 아들을 출산했다. 결혼하고 남편이 학업을 위해 3년을 프랑스에서 체류했기에 육아를 도와줄 어른들이 내 주위에 안 계셨다. 오직 한국에서 공수해 온 육아책 한 권이 나의 육아 스승이었다. 아이가 보채고 울 때면 난감해서 쩔쩔매는 초보 엄마. 어느 때는 아이가 왜 우는지 몰라 같이 소리 내어 운 적도 있었다. 갑자기 그때가 떠오른다. 초보 엄마의 우왕좌왕하던 시기였지만 매일매일 뽀얗게 물오르는 아기를 보며 행복했다. 엄마란 존재로 태어난 것이 뿌듯하고 감사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오전 10시면 명희 씨 카페에 첫 손님으로 창가 옆 내 자리에 앉아 브런치의 최신 글들을 살펴보고 다른 작가님들의 삶의 지혜, 식견 그리고 그들만의 세상을 보는 안목을 배운다. 무지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이 빛나는 글들을 찾아내 읽는 재미도 솔솔 하다. 갇힌 나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매일 다른 세계와 조우한다.

  

 어제 문득 글 쓰는 일에 부담이 몰려왔다. 나는 무얼 위해 어디로 달려가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 나를 순간 혼란스럽게 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이 크게 확대되어 보이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심호흡을 크게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프고 상처 받은 나를 꺼내 들여다보는 일. 나의 상처를 거름 삼아 또 다른 상처 받은 영혼의 고통을 쓰다듬는 일. 내가 글을 쓰는 이유였다. 사람은 가장 나다울 때 행복하다. 나는 이제 그 행복을 찾았다. 불안하고 어지러운 마음이 잔잔해진다.

 


 

 나도 한때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에고이즘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적도 있었다. 나의 아픔의 깊이가 너무 커서-다른 사람의 눈물을 그냥 지나쳐 버린 냉정의 시기도 있었다. 불안과 원망과 불만이 나의 삶을 지배하던 이기의 시절. 이 땅에 태어난 존재만으로도 사랑받기 충분하다는 사실을 난 몰랐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노력이란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고 믿었었다. 젊은 시절 나는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웠고 나는 어리석었다.


 아장아장 아이가 걷는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달려온다. 혹시 넘어질까 내게 달려오는 아이의 앞으로 성큼 마중을 나가 팔을 벌린다. 열에 들떠 축 쳐진 아이의 온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 주며 어둠을 하얗게 밝힌 숱한 날들. 헐렁한 교복 속에 어설픈 미소를 띠던 아들이-중학교 입학하던 날. 고2 겨울 신종플루로 고생하던 아들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시간. 입대 후 훈련소 훈련기간 처음 받아 본-아들의 눈물 자욱이 앉은-편지. 그 모든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아이의 성장을 통해 나도 자라 갔다. 철없고 이기적인 여인에서 들에 핀 이름 모를 들풀 조차도 귀히 여길 줄 아는 여인으로 그렇게 변해갔다. 흙 한 줌, 바람 한점, 하늘과 우주 아래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을 향한 경외감을 나는 비로소 엄마가 되면서 배울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담장 밑에 어느새 코스모스가 하나, 둘 피었다. 하늘하늘 여리고 수줍은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이의 생일. 내가 어른으로 거듭난 나의 생일이기도 하다.  근처 화원에 들러 나를 위한 선물로 장미꽃 한 다발을 샀다. 곱고, 그윽한 자태와 향기에 내 마음이 설렌다. 이제는 나를 사랑하는 법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도 어렴풋이 알겠다. 그렇게 매해 아이와 더불어 진짜 어른으로 자라 갈 것이다.

 

 주홍빛 노을이 낮게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황혼 녁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제의 내가 아니듯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날마다 사랑으로 풍성하게 자라 가는 나를 상상해 본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임을 가슴으로 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그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


https://youtu.be/aRl3PT5Qbwg


  

         ( 커버사진출처-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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