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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Oct 27. 2021

소녀는 노을을 좋아해요.


 오늘 동생이 이사하는 날이라 혹시 손이 필요할까 해서 일찍 일어났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은 쾌청한 날씨라 한시름 놓았다. 요즘 이사가 다 포장이사라 거드는 손길이 따로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청소라도 거들어 줄까 서둘러 아침을 먹고 대기 중에 전화가 왔다.  "언니 점심 먹고 짐 풀 때 와서 청소 좀 도와줘~ 지금  오면 고생만 하니 알았지? 내가 오후에 연락 다시 할게. "하며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급하게 끊는다.

 

 시간을 보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창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니 맑고 푸른 가을 하늘과 투명한 햇살이 나를 유혹한다. 산책하기에 좋은 날씨이다. 산책도, 명희 씨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도 한 잔 하러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내의 나무들이 갈색으로 물들어 간다. 보도를 걸으며 떨어진 낙엽을 밟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발끝에 부서지는 느낌, 대기를 감싸는 부드러운 공기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렇게 또 다른 하루를 기쁨과 충만함으로 시작할 수 있으니 매 순간이 축복임을 고백한다.


 풍경소리를 울리며 카페 안으로 들어선다. 명희 씨가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따뜻한 햇살이 머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밖 정원으로 무르익는 가을의 풍경을 바라보며 깊고 진한 커피를 마신다. 이 순간은 긴 하루 중 나를 만나는 시간, 나를 채우는 시간. 그리고 위로받는 귀한 시간이다. 오롯이 나를 대면하는 이 고독의 시간이 나는 좋다.

 


 

 명희 씨가 챙겨준 오븐에 구운 고구마로 점심을 대신하고 오늘 이삿짐 나르느라 고생하시는 분들을 위해 빵집에 들러 간식을 사고 마트에 들러 음료를 사서 동생이 새로 이사하는 곳에 도착했다. 이제 막 새집에 짐을 풀기 시작한 집에 일하시는 분들이 분주하게 짐을 나르시고 아침 일찍부터 고생한 동생이 창백한 표정으로 나를 반갑게 반긴다. "안녕하세요? 수고들 많으세요~~" 하는 나의 인사에 분주하게 일하시는 분들이 가볍게 목례를 하신다.

 제부가 급한 볼일로 잠시 자리를 비운 탓에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녀 지쳐 있는 터에 나를 보니 긴장이 풀린 듯 집 앞 비상계단에 털썩 주저앉는다. 안쓰러운 마음에 등을 토닥이고 준비해온 간식을 건넨다.


점심 식사를 하지 못한 동생의 등을 떠밀어 인근 식당으로 보내고 가방에서 챙겨 온 목장갑과 고무장갑을 꺼냈다. 먼저 주방으로 가 정리하시는 아주머니를 도와 동생이 살림하기 편하게 냉장고와  수납장에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하였다. 워낙 동생네 부부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 두는 성격이라 이삿짐센터에서 여러분이 나오셨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무거운 짐들이야 도와드릴 수 없지만 주방 살림살이와 아이들 방의 정리는 내가 할 수 있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들어 설 사랑하는 조카들을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기운다. 막 정리가 끝난 집안으로 큰 조카가 들어선다. 고1 여학생인 조카는 하늘을 보고 노을 진 하늘을 사진으로 찍는 것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소녀이다. 집안으로 들어서며 먼저 창가에 비치는 노을을 보고 먼저 제 방보다 창가로 걸어가 사진을 찍는다. 이전 집에서 보다 더 가까이 보이는 노을 진 풍경이 마음에 드는 듯 내게 찍은 사진을 여러 컷 전송해 주었다.

 조카의 고운 마음이 사랑스럽다. 자연과 노을 진 하늘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그곳에서 위로받는 고운 심성이 잘 커준 것 같아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학교에서 귀가한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 성화다.

동생네 가족들과 이사 때면 공식적으로 먹는 중국집 음식을 온 가족이 만장일치로 주문했다. 자장면을 좋아하지만 평소 건강을 생각해서 일 년에 한, 두 번 먹는 나도 마음 편히 자장면을 주문했다.

 고단함도 왁자지껄 식구들의 웃음소리와 나누는 대화에 말끔히 사라진다. 조카들의 웃음 뒤로 하루가 저물어 간다.



  까만 어둠이 내린 집으로 들어선다. 반겨줄 식구는 없지만 편안하고 아늑한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와 쉴 곳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하루이다. 하루 종일 뒤집어쓴 먼지를 말끔히 씻고 책상 앞에 앉아 조카가 보내 준 노을 사진을 바라본다. 내 얼굴이 미소로 번진다. 생명의 빛, 자연의 빛이 마음에 충만하게 차오른다. 오늘의 수고도, 불 꺼진 집으로 돌아온 허전함과 외로움도 그 빛이 따뜻하게 나를 감싸 어둠을 몰아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고 나를 항상 위로해 주는 자연이 있으니 삶은 살만한 가치로 넘쳐난다.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쉼을 허락한 나의 신께 감사를 드리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가을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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