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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Oct 30. 2021

엄마의 소원


 이사한 지 나흘째 되는 동생네는 여전히 폭탄 맞은 집 같다. 직장에 다니는 동생 내외의 부재중에 집에 가구가 들어온다 해서 시간에 맞춰 동생네 도착했다. 다행히 설치 기사님 도착 전에 내가 미리 여유 있게 도착해 비대면 수업 중인 조카의 간식을 챙겼다. 기다리는 시간 개수대에 수북이 쌓인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볕이 드는 창가에 서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파란 물빛 하늘이 높고 푸르다. 하늘빛은 사계절 중 가을 하늘이 으뜸인 것 같다. 바라만 봐도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해진다.

 다정한 친구들이랑 이렇게 날 좋은 날 단풍구경이라도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이렇게 투명한 햇살을 맞으며 나의 유일한 기호품 커피와 함께 하니 이런 게 소소한 행복같이 여겨진다.


 가구 조립하는 동안 요양원에 계신 엄마에게 드릴 연시와 증편과 백설기를 드시기 좋게 썰어 1회용 용기에 담았다. 추석에 송편에 맛보신 이후 계속 떡만 생각나신다는 엄마에게 지난주 떡을 갖다 드렸다가 반입이 금지되어 도로 들고 왔었다. 그날 저녁 서러워 눈물을 흘리셨다고 전화로 내게 호소를 하셨다. '사시면 얼마를 사신다고...  '까다롭게 구는 요양원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했다. 엄마의 소원을 들어 드리고 싶었다.


 조카의 점심으로 오므라이스를 준비하여 같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준비한 간식을 들고 요양원으로 출발했다. 거리의 가로수들이 울긋불긋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부른다. 봄의 꽃처럼 푸릇한 생명력은 없지만 가을의 불타는 듯한 단풍은 그 나름대로 절정의 농염한 아름다움 자체이다. 눈부신 그 모습에 내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오른다.


 

 사리분별이 정확하시고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어하시는 엄마.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가진 엄마. 그런 엄마가 점점 아이처럼 변해간다. 그 모습이 안타깝고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자신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엄마에게 식탐은 어쩌면 유일한 삶의 낙 일 것이다. 파킨슨 병을 앓고 계신 분께 삼키는 일은 때로는 아주 위험한 일일수 있는데 엄마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시는 음식들은 환자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 음식이다. 매번 엄마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 못해서 요양원 관리자와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 일의 반복. 어떤 선택이 맞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소원을 들어 드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냉정하게 거절을 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눈물로 간절히 드시고 싶다는 음식을 나는 거절을 못하고 오늘 다시 준비했다.


 

 요양원 1층 로비에 준비해 온 음식을 맡기고 부스터 샷 보호자 동의란에 서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간식 엄마가 드시고 싶어 하는 떡 챙겼어요. 꼭꼭 씹어 드세요~" 하고 여러 번 당부한다. 수화기 너머 엄마의 밝은 목소리에 환한 웃음이 묻어난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 전화를 급하게 끊는다.


 어느새 넓은 품으로 자식들을 품어 주던 든든한 엄마는 사라지고 이젠 자식들이 품어주어야 하는 아가 같은 엄마. 야속한 세월을 원망해 보지만 늙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 사실임을,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임을 확인할 뿐이다. 돌아오는 차 안 차창밖의 거리 풍경이 뿌옇게 안개처럼 보인다. 자꾸만 흐르는 세월이 무심해 서러운 눈물을 쏟는다.


 

 "고맙다. 네가 가져온 떡이 입맛 돌게 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겠다..."하고 저녁 무렵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떡은 위험한데 다른 것 드셔야지. 생각나는 것 없어요? " 하는 나의 말에 엄마는 떡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다음엔 시루떡이 드시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신다. 아무래도 엄마의 고집에 다음에도 엄마의 위험한 소원을 들어드려야 될 것 같다. 나는 나쁜 딸인가 보다...

 저무는 하늘을 바라본다. 늙는다는 서글픔과 인생의 무상함이 나를 슬픔으로 이끈다. 그 슬픔 속으로 스며들지 않으려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그냥 자연의 과정이고 이치라고 나를 타이른다. 길고 긴 시간을 엄마가 우리에게 울타리가 되어 준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엄마의 울타리가 되어 지켜줄 차례임을, 그 시간이 왔음을 받아들일 때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온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엄마가 남은 생을 편히 사시다 주무시듯 하늘나라 가실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엄마의 엄마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루가 간다. 이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하루가 올 것이다. 그 하루하루가 사는 동안 아름답게 빛날 수 있기를 소원하며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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