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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Oct 21. 2021

영원한 설렘, 삶의 동력 그 사랑 이야기.


 사랑의 길(시인 이창훈)


 

 너를 보내는 것이

 내 사랑이어야 한다면

 그 길을 걷겠다.


 지워졌지만 가슴에 새겨진 그 번호

 전화 걸지 않겠다.

 보고 싶어 찾아가던 그 집 앞

 아직도 서성거리던 모든 발걸음을 거두겠다.


 나여야만 한다고 믿었던 네 곁에

 나 아닌 누군가가 있어

 나에게 기댔던 것처럼 네가 기대고

 나를 보던 것처럼 네가 그윽이 바라본다면

 그 사람 그 사랑 기꺼이 축복하겠다.


 너를 보내는 것이

 너를 사랑하는 길이라면


 너를 진정  사랑하는 길이

 너에게서 떠나가는 것이라면

 그 길을 가겠다.



 언제부턴지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았다. 흔하게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처럼 내 몸의 연애세포는 이혼과 더불어 그리고 갱년기를 견디며 남김없이 사멸되어 버렸다고 믿었었다.  메말라서 박제가 돼버린 사랑.  아니 전설처럼 아득히 느껴지던 사랑의 떨림을 작은 시집 한 권이 기억하게 해 주었다.

 

 평소 브런치 작가이자 시인이신 이창훈 님의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는 시집을 오늘 오후에 등기로 받아 보았다. 팬으로서 작가의 사인이 든 시집을 갖고 싶었는데... 흔쾌히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고 우체국을 통해 부쳐주셨다.

 그의 시를 한편 한편 읽으며 신기했던 것은 냉소적인 강퍅한 마음이 어느새 녹아 흘러 가슴에 눈물이 흐르는 강을 이루고 그 강은 흘러넘쳐 연가를 부르는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랑의 길'은 시집 전체에 흐르는 시인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화자가 추구하는 사랑의 세계는 상대에 대한 지순함과 절절함이 묻어나는 이타의 사랑이다. 떠나가는 연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 너의 집 앞을 서성이던 발걸음조차 거두겠다는 시인의 깊은 사랑에 눈물이 왈칵 났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본질은 영원하다. 진정한 에로스는 건강한 생명력이다. 허무와 쾌락, 이기를 현명한 이 시대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그는 한줄기 빛 같은 사랑, 그 고귀한 진실을 언어로 풀어놓았다.

 이창훈 시인의 글은 현란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담담하게 담백하게 물 흐르듯 리듬을 탄다. 그리고 순수하고 한결같은 주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그의 언어는 사랑의 노래가 되어서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을 진정한 사랑의 빛으로 물들인다.


 이혼 후 8년째이다. 순수한 사랑을 위선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이기적으로 살고 싶었다. 사랑도 이기적으로 영리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이기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자기 기만이라는 것을...  사랑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은 어쩌면 더 큰 사랑을 갈망하는 역설이었음을 이제 깨닫는다.

 

 깊어 가는 가을밤. 나는 사랑의 시를 읽는다. 앞으로 얼마나 이 아름다운 가을의 하늘과 밤을 보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생의 끝나는 날까지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읽으며 내게 찾아 올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며 꿈을 꿀 것이다. 살아 있는 자의 용기와 열정과 특권으로 고대할 것이다. 설령 내게 사랑이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 부여된 의무 아닐까. 열심히 그리고 후회 없이 뜨겁게 하얀 연탄재처럼 남을 수 있는 사랑을 이 밤 간절히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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