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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an 27. 2022

짧은 재회 긴 여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때문에 며칠 마음이 참으로 행복했다. 강산이 여러 번 바뀐 시간이지만-여전히 곱고 착한 친구들을 마주 대할 수 있는 행운이 감사했다. 순수하고 맑았던 학창 시절의 소녀로는 다시 돌아갈 순 없지만-대신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시련을 견디며 다듬어져 꽃으로 만개했다.

 

 30년이란 세월의 간격을 반나절도 안돼서 허물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한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다시 재회한 만남의 기쁨 뒤로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하며   며칠 마음이 안 좋았다. 나만 힘들었다고 생각하며 내 세계에 갇혀 살았는데... 친구들 역시 나름대로 고단한 인생의 파도를 넘느라 힘들었기에 운명의 가혹함이 원망스러웠다.

 거칠어진 손을 맞잡고-이제부터는, 인생의 후반부는 우리 행복하자고 다짐하며-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왔다.



 퀼트 공방을 운영하는 영주는 요즘 시니어 모델로 활동한다고 한다. 자신의 버킷리스트였던 꿈을 하나하나 이뤄가는 그녀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지영은 가끔씩 자원봉사로 미술관에서 전시물을 설명해 주는 도슨트로 활동하는 자랑스러운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에게 부끄럽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수줍게 말을 했다. 쑥스럽지만 얼마 전 문화일보에 실린 엄마에 대한 글을 보여 주었다. 다들 나의 시작을 축하해 주었다. 우리의 도전이 지금은 미약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후반기로 주어진 인생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영주가 선물한 천연 재료로 만든 샴푸바로 머리를 감고 인증샷을 톡으로 보냈다. 부쩍 빠지는 머리카락으로 자신감이 떨어졌는데 센스 있게 어느새 선물로 준비해 준 영주에게 한결 볼륨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주가 사진을 보냈다.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내가 부케를 받는 모습의 사진이다. 아름다운, 눈부신 젊은 날의 내가 환하게 웃고 있다.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을 다시 만났으니 나는 행운아다.


 늦게 재회한 아쉬움이 크기에 헤어지고 돌아온 밤에도 그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단톡방이 시끄럽다. 전화통이 불이 난다. 서로의 삶을 격려해 줄 수 있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중년으로 나이 든 고운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품위 있게 늙어 참으로 다행이다. 배려심 있는 중년으로 늙어 참 고맙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부는 바람에 봄내음이 묻어나는 따뜻한 날이다. 봄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햇살마저 봄볕을 닮아있다. 집 앞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 한참을 햇볕을 즐기다 명희 씨 카페로 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고요한 침묵 속에 나를 만나는 시간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실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조금은 두려웠다. 떨어진 세월의 간격이 너무도 크기에 우리가 그 간격을 메울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뒤에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기우였다. 세월은 우리에게 진정한 깊이를 더해 주었다. 서로의 아픔은 내 것 인량 보듬고 서로의 기쁨은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마음이 통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자식들이 우리가 헤어질 때의 나이를 훌쩍 넘겼으니 우리가 나이 먹은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꽃 같은 우리의 2세들을 진심으로 서로 축복했다.


 

 지금까지 살다 보니 돈보다 명예보다 귀한 것은 주변에 나와 함께 늙어갈 친구들, 사람이 결국은 재산 같다. 건강한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지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많다는 것은 행운이다. 내게 다시 찾아온 행운에 감사할 뿐이다. 남은 후반기 삶은 마음 맞는 벗들과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따뜻한 시간을 공유하며 살고 싶다.


 포근한 봄을 꿈꾸며 길을 걷는다. 추운 겨울이 깊어갈수록 봄이 가까이 다가오듯 나의 인생의 깊고 어두운 터널도 언젠가는 끝이 보일 것을 믿으며 오늘도 걷는다. 사랑하는, 다정한 벗들을 생각하며 가는 길. 삶은 더불어 사는 삶이기에 나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쏟아지는 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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