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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Feb 01. 2022

새해 첫날의 일기


 밤새 소담스러운 큰 눈이 온 세상을 덮었다. 새해 첫날을 축복하는 눈 같아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한참을 창가에 서서 온통 하얗게 변한 겨울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와 하룻밤을 묵은 아들은 어제 오후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갔다. 명절 때면 엄마에게, 아빠에게 따로 인사를 해야 하는 아들한테 늘 미안했지만-별다른 티를 내지 않고 아빠 집으로 향하는 아들을 배웅했다. 이것저것 자취하는 아들을 생각해서 양념한 고기와 과일  꾸러미를 챙겨 들려 보냈는데도 아쉬움과 미안함이 자꾸 고개를 든다.

 

 타일 기술자 밑에서 허드레 일을 시작하며 수습 일꾼으로 일한 지 1년이 된 아들은 그새 10kg이 빠져 핼쑥한 모습이라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노동의 강도와 고됨을 아들의 모습에서 발견하고 아무 말 못 하고 굳은살 박인 손을 쓰다듬고 등을 토닥였다.

 늘 혼자 있는 내게 아들이랑 함께한 하루는 야속하게도 쏜살같이 지나갔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갑자기 무기력감이 몰려와 일거리를 미뤄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 사이에 달라진 눈 덮인 세상, 자연의 아름다움이 나를 위로하며 다시 마음의 평정심을 찾게 해 준다. 신발장에서 방한 부츠를 꺼내 신고 습관대로 아침 산책길에 올랐다. 집 앞동산의 설경이 그림 같다. 요즘 부쩍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나를 힘들게 했는데 역시 자연만 한 위로자이자 친구가 없다. 어느새 마음이 흰 눈을 닮아간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툭툭 흔든다. 쌓인 눈이 탐스럽게 허공으로 날린다. 길 위의 참새들이 뽀로롱 날아간다.

 

 시작한다는 것. 떨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기대를 품어본다.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나의 지금의 하루하루가 모여 내일의 내가 될 것이라고 내게 속삭인다. 어제 같은 오늘. 이 단조로운 일상이 어쩌면 축복일 수 있지만 오늘은 이 완벽한 고립감과 적막감이 낯설어 걷고 또 걸었다. 오래 함께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기엔 힘든 외로움이 나를 삼키지 않도록 의식의 날을 세운다.

 



  발그레한 뺨으로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다. 가족들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차를 마시는 사이사이로 나와 같이 혼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받는-내가 우습고 안쓰러워 피식 웃음이 났다. 명절, 연말, 생일... 난 이런 날이 싫다. 걸릴 것 없는 혼자라고 자유롭다고 노래를 부르다가도 가족 단위로 단란하게(?)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게 모르게 위축되고 초라한 싱글의 민낯이 드러난다. 혼자라는 홀가분함 대신 그 자리엔 내가 가지지 못한, 이루지 못한 행복한 가정에 대한 열등감만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자기 연민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를 붙잡기 위해, 통제불능의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람의 숲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외롭고 마음이 공허하다.



 차가운 겨울 길에 서있다. 목적지 없는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린다. 다시 어둠의 터널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발버둥 치다 엄마와 아들을 떠올렸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또 내일이면 힘들지 않은 척 살아가겠지.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살아내다 보면 지금의 슬픔도 웃으며 말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때까지 살아보고 싶다. 인디언 기우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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