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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Feb 24. 2022

다시 되새기는 꺼지지 않는 삶의 각오.


 국민 내일 배움 카드를 지역고용센터에  가서 신청하면 수월할 터인데, 뭔 용기와 오기(?)가 났는지 익숙지 않는 컴퓨터를 붙들고 씨름했는데- 다행히 헛수고로 그치지 않고 정상적인 신청 처리가 완료되었음을 오늘 낮에 확인했다. 이것으로 나의 컴퓨터, 근본적인 기계에 대한 두려움은 나도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급상승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사실 가장인 나에게 할 만한 일은 많지  않다. 오랜 세월 전업주부로 살아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대부분인데, 몸은 평균 체력보다 약하게 타고났으니 먹고사는 문제가 지금 내 걱정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조카들을 돌보는 일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새로운 직업교육과 취업이 필요한 내게 내일 배움 카드가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거라 희망을 품어본다.

 

 오래전 이혼에 대비해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실제 일터로 나가 사람들을 접해보니 낯선 사람에게 낯을 많이 가리는 수줍은 성격이 이 일과는 내가 맞지 않음을 알고 시작 단계에서 일을 접었다. 작년엔 베이비시터 자격증까지 취득했는데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많아져 실제 센터에서 구직으로 연결을 못해 주었으니 이 자격증도 앞서 딴 공인 중개사 자격증과 더불어 장롱 면허가 되고 말았다.



 앞서의 경험들로 급하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배울 수는 없으니 직업 훈련 과정을 이번에는 꼼꼼히 살펴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과연 오십 대 중반인 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갑자기 자신감이 뚝 떨어지면서 앞날에 대한 염려가 큰 파도처럼 나를 덮친다. 능숙하게 프로그램을 다루지 못하니 훈련과정 검색에도 적절한 키워드를 입력치 못해-원하는 궁금한 검색이 이루어지지 못하니-침침한 눈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피로하다.


 "카톡" , "카톡" 생각지도 않은 선물이 도착했다. 브런치 작가 J의 올리브 영 모바일 상품권과 조카의 깜짝 선물, 케이크가 축하 카드와 함께 톡으로 왔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 하루 종일 동료 브런치 작가님들의 축하 인사를 받고 행복한 생일날을 만끽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선물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J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조카에게는 대견하고 기특한 마음이 나를 행복하게도, 쑥스럽고, 미안하게도 만들었다. 정말 깜짝 놀란 것은 곰살맞은 작은 조카와는 달리 무뚝뚝하고 둔한 여고생, 큰 조카의 선물이었다. 며칠 전 동생이 지나가는 말로 이모 생일이라고 한 말을 귀담아듣고 있다가 오늘 축하 카드와 선물을 보내왔으니... 귀여운 꼬마로 돌봄을 받던 조카가 어엿하게 이모를 챙기는 소녀로 성장한 것이 너무 고마워 코끝이 찡해졌다. 답장으로 사랑한다고 이모 감동 먹었다고 전화를 하니 말 수 없는 조카가 까르르 웃는다.



 전화벨이 울린다. 늦은 밤이다.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다 작년에 우연히 연락이 닿은 여고 동창생 S의 전화다 늦은 시간이고 의외라 멈칫하다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다던 그녀의 목소리에 술기운이 묻어있다. 나의 힘든 생활을 다른 친구에게 들었는지 목소리에 잔뜩 연민이 묻어 있다. 그녀의 기억 속의 나는 아름다운 꽃이었다고, 내가 학창 시절 좋아했던 노래 제목 'Time in a bottle'까지 기억하는 그녀. 그녀의 우상이었다고 나의 몰락이 슬프다고 주정 아닌 주정을 하는 그녀를 씁쓸한 마음으로 괜찮다고 달래며 겨우 전화를 끊었다.


 왜 그런지 초등, 중학교 친구들 이외의 여고, 대학시절의 친구들은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삶에 부침이 많았던 내가 나의 리즈시절을 기억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씁쓸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누구를 만나든지 덤덤히 내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것이 내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궁색함과 구질함이 싫었다. 위로 뒤에 자신의 우월함을 다행으로 여기는 얄팍한 우정이 보여 싫었다. 멀어지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을 닫았다.



 지금 나는 마음이 가장 편하다. 삶의 고단한 여정이 나를 낮아지게 만들었다. 쓸데없는  욕심과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이제는 안다.  고난과 고통은 아픔만 주지 않았고 삶의 지혜도 함께 주었다. 지금 주위에 나를 여전히 아끼고 나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내 인생이 실패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끝이 아님을-또 다른 시작점일 수 있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짧지만 긴 하루. 이 세상에 던져진 의미를 생각해 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그리는 깊은 밤. 잠 못 들고 깨어있는 이 순간조차도 귀하고 감사하다. 내일도 해는 다시 떠오를 테고 나는 다시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후회도 미련도 접어두고 갈 것이다. 이 땅에 잠시 소풍 온 삶이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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