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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Oct 04. 2022

막국수 데이트와 카나페 답례.


 주말에 사랑하는 조카 유주와 점심 데이트를 했다. 조카가 여럿 있지만 직장 다니는 동생을 대신해 어릴 적부터 돌본 동생네 두 아이가 가장 내게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오늘은 입시 준비에 지친 고2짜리 큰 조카와 특별히 시간을 내서 막국수 맛집을 찾았다. 투박하고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입맛조차 닮은 유주와 정오에 만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집을 떠난 외출이었다. 같이 다니기에 자랑스러운 이모가 되려고 안 하던 화장도  곱게 하고 한껏 멋을 냈다. 요즘 아이들 말대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멋 내기) 스타일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멋 내기 포인트이다.

 집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막국수 파는 식당이 있는데 맛집으로 사람들이 늘 북적인다. 혹 자리가 없을까 걱정했는데 아직 몇 테이블이 남아 있어 유주와 자리를 잡고 들기름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를 주문했다. 늘 동생네서 조카를 보지만 단둘이 오랜만에 밖에서 데이트를 하니 새롭고 흐뭇하기만 하다. 조카가 예뻐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았다.



 진한 들기름 향기가 입안 가득 침을 고이게 한다. 일부러 비빔과 들기름 막국수를 주문하여 유주와 서로 나눠 먹었다. 김가루와 잘게 다진 곤드레 나물이 풍성하게 들어있는 고소한 들기름 막국수를 먹을 때엔 신경을 써도 자꾸만 입가에 김가루가 묻는다. 그 모습을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냅킨으로 조카의 입가를 닦아준다. 구르는 낙엽만 보아도 까르르 웃는 소녀가 내 입가에 묻은 김가루를 보고 손짓하며 빵 웃음을 터트린다.


 햇살이 눈부셔 준비한 양산을 펼치니 유주가 내 손에서 양산을 낚아채서 받아 들고 그늘을 만들어 준다. 몇 달 전만 해도 나보다 약간 키가 작아 내가 조카를 내려다보았는데 오늘 같이 나란히 걷다 눈을 맞추니 내가 조카를 살짝 올려다보게 된다.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커버렸는지 갑자기 코끝이 시큰하다.

 날씨가 좋아 카페에서 음료를 테이크 아웃해 인근 생활근린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잎에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푸르고 푸른 녹음도 이제는 하나, 둘 갈색으로 물들 것이다. 천천히 어깨를 맞대고 한참을 걷다 벤치에 앉았다. 입시에 꿈과 낭만보다는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조카가 안쓰러워 어깨를 가만히 감싸고 푸른 하늘을 보라고 하늘을 가리켰다. 노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열여덟 소녀의 눈에 파란 가을빛이 고인다. 하얀 구름이 머문다.



 짧은 주말의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카가 이모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한다. 버스에서 먼저 내린 나를 향해 차 창가에서 열심히 손을 흔든다. 행복한 하루가 풍성하게 여물어 간다. 떠나는 버스를 한참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고즈넉한 공간으로 다시 돌아와 꼬마 친구인 나의 화분에 물을 주고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장영주의 연주로 듣는다. 행복해지고 싶을 때 듣는 곡. 가슴에 생명의 빛, 초록빛이 차오른다.


  알림이 울린다. "이모 잘 먹었어. 이모 낼 1시쯤 오세요. 이모 맛있는 간식 먹어요. 내가 해줄게." 조카의 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마음이 예뻐서 미소가 저절로 입가에 지어진다. 언제 어느새 이렇게 사랑스러운 어른으로 자랐는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동생네 주방으로 들어서니 조카가 분주하게 주방에서 움직인다.  나를 위해 오늘 준비한 메뉴는 카나페와 카프레제라고 한다. 마요네즈에 버무린 참치를 크림치즈를 바른 크래커 위에 얹고 그 위에  옥수수를 얹고 또 그 위에 방울토마토를 올려 근사한 카나페를 뚝딱 완성하더니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 루꼴라 야채를 가지런히 접시에 담아 발사믹 소스와 올리브 오일, 소금을 졸여 만든 소스를 뿌린 카프리제를 식탁  위에 준비해서 나를 식탁으로 부른다.



 정성과 사랑이 담긴 조카의 서프라이즈 요리에 왈칵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이 어떤 부귀영화보다 귀하고 값진 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내 곁에 서 있는 조카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린다.


 사랑하는 유주야, 너희가 살아갈 세상은 빛이 충만하고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이 이모가 날마다 기도한다. 가을을 타는 이모에게 너는 아주 귀한 웃음과 눈물과 그리고 희망을 선물했구나.

사랑한다. 늘 네 곁에서 너를 축복한다.


 감사하고 귀한 하루가 가을볕에 잘 익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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