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초고

서평에 대한 짧고 단순한 생각

by 말로

독후감, 서평, 북 에세이, 북리뷰....


뭐라 불리든 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부담스럽다. 어릴 적 학교 숙제 중 가장 하기 싫었던 것 하나가 독후감이었다. 독후감 제출하기 하루 전날. 미처 읽지 못한 책을 만지작 거리며 머리를 쥐어짜며 괴로워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엔 참고(베낄?)할 만한 자료도 없었다. 앞부분에 추천사가 붙어 있다던지, 번역하신 분이 친절하게 번역 후기를 남기셨다던지, 출판사의 해설 페이지가 존재한다면 운이 매우 좋은 편이다. 단어와 문단 위치를 요리조리 바꿔가면서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끝부분에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보편타당한 인류애적 감상을 적으면 그나마 숙제 체면은 서기 때문이다.


서평이 쓰기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내가 아닌 책이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닌 타자, 내 안의 무엇이 아닌 외부의 무언가에 대해서 말하고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 생각이 주인공인 글은 잘난 척을 하던, 못난 척을 하던, 생각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책이 주인공인 글은 일단 책에 집중해야 한다. 집중만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책의 내용 즉, 저자의 생각을 완전히 내 것으로 품고 나만의 생각을 낳아야 한다. 산고의 고통이다. 창작의 고통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겠지만, 타자의 생각을 내재화하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다. 무작정 받아들여서는 단순한 책 소개에 그친다. 그런 자료는 출판사에서 만드는 마케팅용 카드 뉴스가 훨씬 잘 정돈되어 있다. 내 생각을 어떻게든지 쥐어 짜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평은 어려운 글인 것 같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가치가 생긴다. 서평을 쓰면 책을 제대로 읽게 된다는 것이다. 서평을 쓰는 습관과 함께 책을 읽게 되면, 뷔페식당에서 접시에 담아온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바로 다음 음식을 위해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 좋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음미하듯이 책의 맛을 찬찬히 느끼게 된다. 뭐라도 쓰려면 집중하고, 내면화하고, 새로운 생각을 도출해야 되기 때문이다. 즉, 서평은 독서의 연장선 위에 있고, 읽기가 근육이 되어 이해의 기초대사량을 높이기 위해 쓰기를 운동 삼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서평을 읽는 입장에서는 뭐가 좋을까? 모든 글쓰기가 마찬가지겠지만, 서평도 일기장에 쓰고 나 혼자 볼게 아니라면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서평 쓰기가 책을 제대로 읽고 자기 생각을 갖추기 위한 뚜렷한 이유가 있다면, 서평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을 아직 모르겠다. 책 읽기의 효용성에 기댄 포괄적인 이유 말고는 서평이 주는 특별한 매력을 답하기엔 나 자신이 부족하다. 책의 정보와 호기심은 출판사의 카드 뉴스가 깔끔하고, 공감과 재미는 유튜브와 팟캐스트가 텍스트보다 힘이 세다. 이 고민을 조금이라도 풀어볼 욕심으로 최근에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어 봤다.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이수은/민음사/2020),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한승혜/바틀비/2020), <북킷리스트> (홍지해 외 3명/한빛비즈/2020), <책은 도끼다> (박웅현/북하우스/2011) 등... 다들 책을 주인공으로 다양한 시선과 차별화가 돋보이는 책들이다. 일상 속에서 느낀 감정으로 책을 무대 중앙에 불러오기도 하고, 베스트셀러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이다 같은 서평을 담기도 하고, 중량감과 진지함에 선뜻 덤비지 못한 책들을 기말고사 족보처럼 잘 요약하기도 하고, 책 읽기가 인문학으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생각한 읽고 싶은 서평은 첫째는 솔직한 서평, 허세 없는 서평이다. '난 이런 책도 읽는 사람이야'라고 있어 보이려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그 힘이 실려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단어들이 나열된 글이 아닌 솔직한 감정이 담긴 글을 읽고 싶다. 주인공인 책의 유명세와 평판에 기대어 자신도 있어 보이려 하지 않고, 자신 생각을 진솔하게 담은 글이 읽고 싶다.

둘째는 다양한 시선을 품은 서평이다. 책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연결된 경험과 지식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하고, 무신경하게 지나친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다른 감정으로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며, 읽는 나에게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서평은 주인공인 책을 뛰어넘는 진정한 씬스틸러로서 자격이 있다.

세 번째는 책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전해지는 서평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갖는 순수한 마음.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어 안달 나는 귀여운(?) 마음이 전해지는 서평이 읽고 싶다.

이런 서평이라면, 이런 콘텐츠라면 제각각인 독서 취향을 떠나 지루해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서평은 어렵다. 독자가 소외되지 않는, 독자가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은 몇 배는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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