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초고

햇반에서 냄비밥으로

by 말로

"아빠는 햇반 밖에 할 줄 몰라?"


아내가 부재 중일 때, 딸과 단둘이 끼니를 해결할 때가 있다. 대개는 치킨, 피자, 떡볶이 등 배달 음식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배민과 쿠팡 앱을 번갈아 보며 음식을 고르다 보면, 가끔은 배달 음식이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스크롤하며 음식을 보는 것 자체가 피곤할 때가 있다. '오늘은 이거야' 하고 당기는 음식이 없을 때는 고민만 하다 시간이 흐른다. 그럴 때는 찬장에 쌓아둔 햇반을 꺼낸다. 햇반 뚜껑을 살짝 열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 정도 돌려 데운다. 나름 격식을 차린다고 햇반 플라스틱 용기 채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 밥공기에 다시 정성껏 담는다.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정성이다. 그러나 딸아이는 즉석밥 특유의 향과 점성을 귀신 같이 알아챈다. "또 햇반이야?" 딸아이의 힐난이 섞인 무시를 당할 때마다 밥에 대한 오기가 올라온다. 하지만 밥을 오기로 해결할 수는 없다.


나는 요리에 자신이 없다. 전 국민이 모두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라면 끓이기 조차도 자신이 없다. 라면 물이 어떤 때는 폭우 속 한강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가랑비 속 논바닥 마냥 자작자작하다. '밥을 한다'가 '요리를 한다'와 동급이 되긴엔 쑥스럽긴 하다. 어떻게 보면 라면 보다 손이 덜 가긴 한다. 적당량의 쌀을 씻고 물의 양만 잘 맞추고 전기밥솥 버튼만 눌러주면 끝이다. 그러기에 딸에게 햇반으로 무시당한 자존심을 전기밥솥으로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딸에게 인정받을 미션이 필요했다. 그러자 아내가 '냄비밥'을 추천했다. '냄비밥'이라... 현대 문명의 기기와는 거리가 느껴지는 '냄비'.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달리는 것 같은 '냄비'. 그 냄비로 '밥을 한다'는 것은 좀 더 '요리'의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용기 내어 아내에게 '냄비밥'을 배웠다. 아내의 놀림 소리를 들으며... "웬일이셔? 귀공자께서~"


냄비밥은 전기밥솥 밥과 비교하면 번거롭다. 전기밥솥 밥은 물의 양만 잘 맞추면 나머지는 기계가 알아서 해준다. 냄비밥은 물의 양은 기본이고 불의 세기도 적절한 타이밍에 직접 조절해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 위에 놓인 냄비 앞에 지키고 서있어야 한다. 오로지 내 앞에 있는 밥만을 생각하고 쌀이 밥이 되어가는 과정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물의 양은 전기밥솥 밥 보다 비율을 높여야 한다. 1:1 정도 넣어야 한다.(이에 따른 과학적 지식은 모르겠다. 그렇게 하라니까 한다.) 좀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불린 쌀의 물기를 채로 빼고 물과의 비율을 맞춘다. 우리 집 인덕션 기준으로 9단계 센 불로 끓이다가 냄비 뚜껑이 들썩거리고 밥물이 넘실거리려고 할 때 불의 세기를 3단계로 재빨리 줄인다. 이때 딴청은 금물이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밥물이 넘쳐 혼난다. 그리고 20분가량 뜸을 들인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뚜껑을 열고 끓이다가 밥물이 바글바글 올라오면 바닥까지 두 세 차례 휘저어주고 뚜껑을 닫고 약한 불로 뜸을 들인다고 하는데, 아내에게 전수받은 방법은 뚜껑을 닫고 사이에 키친타월을 살짝 껴둬 넘치지 않게 한다. 아내의 가르침을 존중한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냄비 뚜껑을 여는 순간 밥 연기와 밥 향기가 얼굴을 감싼다. 주걱으로 밥을 뒤적뒤적거릴 때 느낌은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마저 들게 한다. 성공한 냄비밥의 밥알은 수분을 적당히 머금고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밥알끼리 적당히 엉기고 흩어지는 찰진 맛이 살아 있다. 느낌적인 방부제 향(햇반은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말 훌륭한 제품이다...)이나 눅눅함이 느껴지지 않는 깔끔하고 정갈한 맛이다. 딸아이도 말없이 엄지 척을 하며, 자기 딴에는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 표시를 해준다. 스승인 아내 또한 칭찬한다. "냄비밥은 꽤 하는데?" 집안일로 칭찬받기는 처음이다. 몇 번의 성공과 칭찬 이후, 이제 냄비밥은 내 담당이 되어버렸다. 역시 아내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여자다.


모든 도전은 아름답다. 어떤 일이든지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이 있고, 남들과 비교해서 잘하거나 못할 수는 있어도 누구나 도전은 할 수 있다. 도전하지 않는 이유는 내 마음이 가지 않았을 뿐이다. 그곳에 내 마음이 가고, 내 생각이 앉고, 내 시선에 들어올 때 비로소 도전할 수 있는 때. 도전할 수밖에 없는 때가 찾아오는 것이다. 도전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조금씩 바꿔간다. 딸아이가 무심히 던진 햇반표 핀잔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내 인생에서 냄비밥은 없었을 것이다. 냄비밥을 알게 되고, 냄비밥 덕분에 아내와 딸에게 칭찬을 받았으니 냄비밥을 모르던 과거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내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배워가고,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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