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많이 좋아하고 의지하는 K선배가 얼마 전에 회사를 나오게 됐다. 권고사직을 당한 것이다. 생각지 못한 소식을 접한 나는 많이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선배는 합리적이고, 배려심이 깊고, 동료들과 선후배 사이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조직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말에 회사에서 주는 우수상을 받고, 승진도 하셨다기에 축하를 하며 함께 기뻐했던 기억이 겹쳐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10년 넘게 다닌 회사를 하루아침에 나와야 하는 이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되짚어가는 과정 자체가 선배에겐 고통이 될 것 같았다. 그저 선배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대한 원망이던지, 세상에 대한 탄식이던지 간에... 난 선배가 쏟아낼 억울함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K선배가 꺼낸 것은 뜻밖의 이야기 었다. 선배의 권고사직만큼이나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선배가 꺼낸 단어는 '고마움'이었다. 선배는 회사를 나올 때 함께 슬픔을 공감해주고, 앞 날을 격려해준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부족함을 이들이 채워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다고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미소 속에 내가 예상했던 원망이나 미움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를 나온 이후 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었다.
어느 날 K선배는 아쉬운 부탁을 하기 위해 15년 전에 함께 일했던 외주업체 직원을 찾아갔다. 그 외주업체 직원은 현재 독립해서 직원이 50여 명 정도 되는 규모의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선배가 회사를 나오고 이것저것 일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우연히 그 회사와 엮인 일이 생긴 것이다. 선배는 그 지인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것보다 더 걱정되었던 것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자신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15년 전 대기업에서 신규 사업을 담당하던 선배와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들어온 협력업체 말단 직원의 관계. 15년 전에 일 때문에 갑과 을로 만난 사이. 그 관계의 괴리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호출될지 불안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 불안은 기우었다. K선배의 지인은 반가워하며 손을 잡고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제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오셨던 거 기억하세요? 그때 전 깜짝 놀랐어요. 정말 오실 줄 몰랐거든요. 심지어 회사 사람들 중에 제일 먼저 와주셨잖아요."
그때 선배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고 한다.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 장면이 15년이 지난 후에도 상대방에게는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인은 덧붙였다고 한다.
"그때 찾아주신 고마움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어떤 일을 하시던지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꼭 돕겠습니다.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평소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던 선배이기에 가능한 그림이었다. 나는 선배가 은근히 자신의 인덕을 뿌듯해하며 자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선배는 뜻밖의 단어를 꺼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선배. 정말 다행이네요. 선배가 그동안 인간관계를 잘 가꿨기 때문이네요. 다 선배 인덕이에요."
하지만 선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잠깐 쉼을 두고 말을 이었다.
"물론, 다행이긴 하지. 근데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겁이 나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 내가 과거에 했던 말과 행동이 나도 모르는 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로 남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선배는 본인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과 의미 없이 했던 행동들이 누군가에는 오랜 시간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고 한다. 이렇게 자기 계발서의 정석 같은 양반이 어쩌다 회사에서 내몰림을 당했나 싶었다. 하긴 회사라는 곳이 남을 배려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긴 하다. 오로지 목적 달성을 위해 주변을 무시해야 살아남는 곳이니, 선배 같은 사람이 생존하기엔 척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에게 과한 생각 좀 그만하라며 허튼 웃음으로 분위기를 얼버무렸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의 부끄러움이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의 말을 던졌던가? 사회가 만들어 낸 수많은 갑과 을 관계에 기대어 타인을 정의 내리진 않았던가? 나에게 당장 이익을 주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행동이 몸에 배어 있지는 않았던가? 자꾸 돌아볼수록 자책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짙어지고 있었다. K선배와 다르게 예전 나의 사수가 외주업체 담당자를 쥐 잡듯이 괴롭혔던 모습이 생각났다.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일정을 강요하고, 이를 못 지킬 시에는 폭언이 이어졌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쪼면 다 돼!"
그 당시 사수는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일을 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이 사람한테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을 많이 봤던 나로서는 그 사수에게 사람 냄새는 맡지 못했다. 어디선가 여전히 갑질을 하고 있을 그 사수의 모습과 K선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떤 모습이 성공한 삶의 모습일까? 돈과 명예로 평가되는 사회적인 성공의 길이 K선배와 멀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삶의 가치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선배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K선배에게는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다.
편혜영 작가의 <홀>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죄와 잘 어울린다는 것만큼 사십대를 제대로 정의 내리는 것은 없었다. 사십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즉 사십대는 권력이나 박탈감, 분노 때문에 쉽게 죄를 지었다.
죄를 지을 조건에 '사람에 대한 태도'를 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