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초고

하루키를 꿈에서 만나다.

by 말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 <일인칭 단수>를 읽은 밤. 꿈에 하루키 씨가 나왔다. 야구복에 야구 모자까지 쓴 그가 한 손에는 흑맥주를 들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이 궁금하지 않아? 한번 찾아보지 그래? 자네가 그 책을 찾는다면 고맙게 생각할 텐데 말이지. 내가 고마워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마치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에서 하루키 씨 꿈에 나타난 "버드"처럼...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따라가며 읽는다는 것은 그 작가의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캐릭터와 서사 안에서 그의 문체로 옷을 입고, 그의 취향과 습관으로 살아가게 된다. 독자는 작가가 만든 세계의 거주민이며, 작가가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하는 페이스메이커이다. 나에게 그런 작가 중 한 명이 무라카미 하루키이며, 나도 어느새 하루키 월드의 오랜 거주민이 돼버렸다.


하루키 월드의 거주민으로서,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 만에 출간한 그의 신작 소설집 <일인칭 단수>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특히, 이 소설집은 제목부터 그가 작정한 각오가 느껴졌다. 그동안 하루키 월드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일인칭 시점이었고, 하루키 자신이 반투명으로 투영된 모습이 었지만, 이번 소설집은 제목부터 "일인칭 단수" 시점을 강조하며 하루키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설집에 담겨 있는 8편의 소설들이 모두 "일인칭" 시점인 "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읽는 내내 화자인 "나는"이 바로 "하루키"로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읽혔다.


논리의 다리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과 비현실의 계곡을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건널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루키 서사의 장점이다. 우연히 하룻밤을 함께 보낸 여인이 보낸 단가집에 담긴 그 밤의 여운이 생각나는 '돌베개에', 낯선 동네에서 낯선 노인과 낯선 이야기를 나눈 '크림', 찰리 파커가 보사노바를 연주했다면이라는 상상이 이끈 기묘한 조우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비틀즈 LP를 가슴에 품고 복도를 뛰어가는 소녀라는 진부한 장면이 오래 남는 '위드 더 비틀즈', 왠지 일본 어느 온천 여관에 있을 것만 같은 인간의 말을 하는 원숭이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등... 분명 허구의 길 위에 누워 있는데 현실의 온기가 등짝으로부터 전해지는 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들이다. 그중 소설집에서 가장 에세이스럽고, 가장 소설 같지 않은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이 기억에 남았다. 바로 이 소설을 때문에 하루키 씨가 내 꿈에 나타난 것이다.


하루키의 야구 사랑. 좀 더 특이하게는 야구장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의 작가 인생 시작도 어떻게 보면 야구장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스물아홉 살의 하루키가 진구 구장에서 야구를 보다가 불현듯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가의 길에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야구장에 얽힌 아버지와의 추억도(하루키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산문집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자세히 다룬다.) 담겨 있다. 과연 소설적 장치가 있긴 한 건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작품으로 '진실'과 '구라'가 야구공 실밥처럼 촘촘히 꼬여 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구단 홈페이지에 가면 그가 명예회원으로 등록되어 있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하루키 씨는 야구 구장에서 지은 시 같지 않은 시를 자가 출판 식으로 출판했는데 그 책이름이 바로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이다. 딱 500권 찍었고 중고시장에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자기는 두 권밖에 없다며 능청스럽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권 더 남길걸 그랬다며...

그가 말한 시집 맨 앞에 수록된 '우익수'라는 시를 소개하면 이렇다. 나중에 조금 손보았다고 한다.


우익수


그 5월의 오후, 너는

진구 구장의 우익 수비를 맡고 있다.

산케이 아톰스 우익수,

그것이 너의 직업이다.

나는 우익 외야석 뒤쪽에서

조금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고 있다.

으레 그러듯이.

상대 팀 타자가 우익수 플라이를 날린다.

단순한 팝 플라이.

높이 올라가고, 속도도 없다.

바람도 잠잠하다.

해도 눈부시지 않다.

별거 아니다.

너는 양손을 가볍게 올리고

3미터쯤 전진한다.

오케이.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볼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볼은

정확히 자로 잰 듯

너의 딱 3미터 뒤에 떨어진다.

우주의 한구석을 나무망치로 가볍게 때린 것처럼

콩, 하고 메마른 소리를 내면서.

나는 생각한다.

어째서 이런 팀을 나는 응원하게 됐을까.

그것이야말로 뭐랄까

우주 규모의 수수께끼다.


꿈속에서 하루키 씨를 만난 이상한 경험에 이끌려 까만 밤과 어스름 새벽이 몸을 섞는 시간에 뜬금없이 구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이 현실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일본어로 바꾼 'ヤクルトスワローズ詩集' 단어로 검색해 보니, 바로 밑에 'ヤクルトスワローズ詩集 実在' 검색어가 바로 추천되었다. 나만 하루키 씨를 꿈에서 만난 게 아닌가 보다. 경매 사이트도 뒤져보고 일본 독자들의 <일인칭 단수> 리뷰 글들도 뒤져 봤지만,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의 궁금증은 결국 허구임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약간의 바람이 사라져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위드뉴스'라는 독자의 궁금증을 직접 취재해서 풀어주는 아사히신문의 인터넷 매체에 이 궁금증을 추적한 기사까지 실려 있었다.

https://withnews.jp/article/f0170526000qq000000000000000W03610101qq000015239A

이 추적(?) 기사의 결론은 (자동 번역의 꺼끌 거림은 무시하자...) 다음과 같다.


"이번 야쿠르트 시집」를 둘러싼 취재를 통해 다시 무라카미 씨의 세계관에 접할 수 있었습니다. 1982 년에 간행된 환상의 시집 (라고 이야기). 그것은 참신한 소설을 낳아 온 무라카미 씨 특유의 '음모'의 산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하루키 월드의 '음모'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음모'에 빠져 속았다는 기분이 이상하게 좋았다. 그 '음모' 속에 내가 들어갈 한자리를 찜해 놓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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