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넷플릭스에서 다음 시즌이 기다려지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찾았다. 넷플릭스에 들어갈 때마다 볼 영화를 선택하지 못하고 썸네일과 예고편만 주야장천 구경하다 나오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 다큐의 제목과 소개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플레이 버튼을 클릭했다.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이 그것이다. 넷플릭스 소개를 보면 "영화 역사를 바꾸고, 우리의 인생을 바꾼 영화들.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배우와 감독, 제작진과 함께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 탄생한, 극적인 여정을 다시 조명한다." 되어 있다. 다루고 있는 영화는 <더티댄싱 Dirty Dancing, 1987>, <나 홀로 집에 Home Alone, 1990>, <고스트버스터즈 Ghostbusters, 1984>, <다이하드 Die Hard, 1988>이다. 모두 '응답하라' 시리즈에 배경으로 나올만한 영화들이다. 넷플릭스의 소개 문구처럼 인생을 바꾼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그 당시 우리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흰 토끼처럼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했던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도 이 영화들의 제목만 봐도 그때 시간들과 그때 사람들이 떠올라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립고 애틋한 감정이 배어 나온다.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좌충우돌 제작 뒷이야기를 그 당시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인터뷰이로 등장하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외치듯이 솔직하게 들려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스타일다운 빠른 교차 편집과 '풋' 하게 만드는 능청스러운 유머 코드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거기에 각 편에 등장하는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들은 적지 않은 감동까지 선사한다. 추억과 호기심과 즐거움과 유쾌함과 엉뚱함 그리고 감동까지... 80년대 '할리우드 키드'라면 보는 내내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는 다큐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이다.
<더티댄싱 Dirty Dancing, 1987> 제작 초기 주연배우인 패트릭 스웨이지와 제니퍼 그레이가 전작 <젊은 용사들 Red Dawn, 1984> 때 갖고 있던 안 좋았던 감정으로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포옹하는 모습은 또 다른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이제는 패트릭 스웨이지의 모습을 새로운 작품에서 만나 볼 수 없다는 허전함이 자료 화면 속 그의 얼굴을 더욱 아련하게 만든다.
<나 홀로 집에 Home Alone, 1990> 저예산을 약속하고 제작을 진행하던 워너브라더스가 예산을 초과하게 되자 제작을 포기하게 되고, 그 틈을 20세기 폭스사가 치고 들어와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방영되는 이 영화의 오프닝을 갖게 된다. 제작 중단과 재개를 알리는 과정은 시트콤 그 자체다.
<고스트버스터즈 Ghostbusters, 1984> 우리는 이 영화를 '고스트브레이커스'로 기억할 뻔했다. '고스버스터즈'라는 이름은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필메이션'이라는 회사가 그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협상 결렬로 '고스트버스터즈'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못할 사태를 대비해서 '고스트버스터즈'와 '고스트브레이커스' 두 가지 버전으로 촬영을 하기까지 했다. 촬영 중간에 이렇게는 못해 먹겠다며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고스트버스터즈' 버전으로만 촬영을 했고, 촬영 종료 시점까지도 지지부진했던 제목 협상은 실로 기가 막힌 우연으로 해결되게 된다.
<다이하드 Die Hard, 1988> 우리는 어쩌면 '코만도'와 '람보'가 나카토미 빌딩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는 '다이하드'를 볼 뻔했다. 맥클레인이라는 배역을 그 당시 잘 나갔던 액션 배우들에게 제안했고, 그 리스트에는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도 있었다. 그들은 주인공 캐릭터가 '졸보'라는 이유로 거절을 했다고 한다. 그 '졸보'를 브루스 윌리스가 맡으면서 액션 영화 역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형사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다.
이밖에도 다큐에는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만큼 재미있는 뒷이야기와 수다들로 가득하다. 자칫 이 영화들을 못 볼 수도 혹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날 뻔한 이야기는 가슴을 조리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영화들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우여곡절은 사람 사는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하는 일이라는 것이 어딜 가나 똑같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할리우드라는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에서도 항상 돈에 쪼들리고, 일정에 쫓기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다투고, 어떻게든 일을 완성해 가는 모습이 여느 사무실 공간 우리들 모습이다.
이 다큐가 재미뿐만 아니라 애틋한 감정까지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마도 80년대 당시 이 영화들을 봤던 것이 단순히 영화 감상 그 이상의 경험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보고 싶은 영화를 네이버에서 검색하거나, CGV나 메가박스 앱을 켜고 근방의 상영관 한 곳을 정해서 온라인으로 예매를 하고 시간 맞춰 영화를 보고 오면 끝이다. (불행하게도 이제는 이것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마음 단단히 먹고 해야 하는 일이 되고 있긴 하지만.) 90년대 후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대부분 영화관이 단관극장이었다. 단관극장이라고 하면 하나의 영화가 하나의 개봉관에서 상영되는 구조 었다. 개봉관에서 놓친 영화들은 재개봉관과 동시상영관을 찾아가며 봐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그 영화를 상영하는 개봉관을 찾아서 당일에 줄을 서서 현장에서 표를 사야 했다. 그 당시에 매표소 앞 리어카에서 파는 오징어와 쥐포의 찐듯한 냄새는 캐러멜 팝콘의 달콤한 향기를 대신했고, 은밀히 다가와 암표로 유혹하는 아주머니의 속삭임은 상냥한 영화관 크루의 미소를 대신했다.
대한극장에서 <백 투 더 퓨쳐 Back To The Future, 1985>를 개봉날 보기 위해서는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거나, 아예 전날 밤부터 텐트를 치고 밤을 새야 했다. <람보 2 Rambo: First Blood Part II, 1985> 같은 경우에는 선착순으로 티셔츠를 주는 이벤트 덕분에 피카디리 앞에 밤샘 노숙하는 진풍경이 연출됐고, 언론의 질타 후 당국의 단속 공문을 받고 이벤트를 중지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하고 단성사로 달려가 <다이하드 Die Hard, 1988> 봤던 기억, 친구에게 빌려줬던 <고스트버스터즈 Ghostbusters, 1984> OST 테이프가 늘어져 레이 파커 주니어의 "Who you gonna call?" 이 안 들린다고 싸웠던 기억.
이 영화들은 우리들의 청춘이었다.
그나저나 <나 홀로 집에 Home Alone, 1990>는 애들 영화라며 '씨네하우스' 앞에서 바람 맞혔던 그녀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Fifty Shades of Grey, 2015>는 봤을까? 문득 궁금하다.